“경기도를 알리고 외국손님들의 한국체험을 돕는 한편, 그동안 갈고닦은 중국어 실력도 발휘합니다.”
지난 6월 경기도를 찾은 중국랴오닝성 성(省)정부 소속공무원 한국연수단이 연수기간 중 휴일을 이용해 한국문화 체험에 나섰다. 보통 때라면 여행사에서 나온 전문가이드가 따라붙었겠지만, 이날만은 경기도청 공무원들이 직접 가이드를 자처했다. 일부 ‘가이드’들은 유창한 중국어로 연수단을 감탄시켰지만, 더듬거리는 말투에 손짓발짓으로 소통하는 ‘가이드’들도 있었다. 이들은 경기도청 내 중국 알기 모임인 ‘니하오(?好)’소속회원들이었다.
중국 공무원 20여 명은 휴일 활동에 앞서 “정해진 코스가 아니라 각자 관심분야에 따라 자유롭게 돌아보고 싶다”고 말했고, 차량과 안내, 통역을 제공한 ‘니하오’회원들 덕분에 5개 팀으로 나뉘어 서울국립중앙박물관에서부터 인사동, 서울대, 영릉, 명성황후생가 등 서울과 수도권 곳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양국 공무원들은 때론 웃음을 터뜨려가며 허물없이 소통했다.

지난 9~10월 경기도인재개발원을 방문한 중국 광둥성 공무원 한국 연수단. ⓒ G-Life 제공.
도청 내 가장 글로벌한 경쟁력 갖춘 동호회
30여개에 달하는 경기도청 내 동호회 중 가장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춘 동호회를 꼽으라면 아마도 중국알기 모임인 ‘니하오’일 것이다. ‘니하오’는 중국어도 배우고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인적네트워크도 형성하는 일석이조·일거양득을 노리는 동호회다.
지난해 1월 결성돼 현재 회원은 24명. 이들은 분기별로 한 번씩 만나 친목을 다지면서 평상시 습득한 중국어 실력과 중국에 대한 지식을 자신의 업무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서로의 아이디어와 경험을 나눈다. ‘니하오’는 중국말로 ‘안녕하세요’를 뜻한다. 중국에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이 말을 주고받는다. 경기도청 직원 누구에게나 열린 중국배우기모임이라는 동호회 취지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다.
“중국어를 못하는 사람들도 동호회 활동이 가능합니다. 회원 대다수는 어느 정도 중국어를 합니다만 중국어학습보다는 회원 간의 돈독한 친목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중국어에 관심이 있지만 시간이 없어 혹은 어려워서 망설이던 사람들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함께 배워 나가다 보면 어느새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되죠.”
‘니하오’총무를 맡고 있는 심영린(투자진흥과)씨는 꼭 중국어를 잘해야만 모임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중국관련 동호회다보니 어학은 동호회 활동에서 여전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해 초급과정을 끝냈고 현재는 잠시 중국어강좌가 없는 상태지만 전담 중국어 강사도 있다. 바로 도청중국어전문위원 안진경(투자진흥과)씨다. 안씨는 “회원 중에는 중국에서 유학했거나 유학준비중인 분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중국어 초보자분도 계시다보니 지난해 하반기에 가장 기초적인 발음연습부터 시작했지요. 앞으로는 중급과정으로 가기 위해 잠시 기초과정을 복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는 외국과의 원활한 업무 협력을 위해 영어, 중국어, 일어 등 외국어전문가를 전문위원으로 두고 있다. 안씨는 투자 진흥과에서 중국어권 국가들을 대상으로 해외투자유치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중국어 강좌는 ‘니하오’회원뿐 아니라 도청 직원누구에게나 개방돼있다. 지난해 신청접수를 시작하자 교류통상과에서 교통정책과, 노인복지과까지 중국관련업무가 많은 부서뿐만 아니라 중국과는 별 인연이 없어 보이는 부서에서도 수강신청이 들어왔다.
그렇게 10여명이 모여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매주 월·수·금요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취업이나 시험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만큼 실생활에 필요한 회화중심으로 교육이 진행됐다. 처음에는 발음기호 읽는 것 마저 서툴던 수강생들은 점차 중국어로 간단한 회화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중국 알기 모임인‘니하오’의 중국어 학습 현장. 회원들은 분기별로 모임을 갖는다. ⓒ G-Life 제공.
‘니하오’의 또 다른 중요한 활동 목적은 중국과의 인적네트워크형성이다. 경기도는 1993년 중국 랴오닝성과 자매결연을 하고 각종 교류협력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또 광둥성, 산둥성과도 인적, 물적교류를 활발히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랴오닝성과 광둥성에서 각기 한 차례씩 엘리트 공무원들을 경기도 인재개발원으로 보내 한국어와 한국행정에 대한 연수를 실시했다.
이 기간에 ‘니하오’회원들의 실력이 빛을 발했다. 중국공무원연 수단과 휴일일정을 함께하며 그 동안 익힌 중국어도 활용하고, 인적네트워크도 구축한 것이다. 물론 중국어 달인의 경지에 이른 일부회원들의 역할이 컸지만, 중국어 실력 이전에 휴일을 반납하고 운전기사를 자처하는 등 회원들의 진심 어린 손님맞이가 중국공무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게 양국관계자들의 평가다. 앞서 올해 6월 있었던 랴오닝성 공무원들과의 교류 외에 지난해에도 광둥성 공무원들과 국경을 초월하는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심영린 총무는 “지난해 8월 한국으로 연수 온 광둥성 공무원들은 각자 담당분야 별로 다양한 곳을 방문하고 싶어 했습니다. 몇몇은 동대문시장과 이화여대 앞 등 쇼핑명소를 둘러봤고,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광화문이나 롯데백화점을 찾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미용실에 들러 한국의 이미용을 경험한 여성 공무원도 있었고, 한국농업기술에 대해 알고 싶다며 농촌과 농촌진흥청에 데려가 달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휴일 활동에 참가했던 회원들도 재미난 경험을 털어놨다. 이용태(건설재난과)씨는 “우리가 점심을 내면, 저녁은 중국인들이 사는 식으로 우정이 오고 갔다”고 기억했다. 이정자(산림환경연구소)씨는 “다른 팀과 달리 보통사람들이 사는 모습, 농촌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한 중국공무원도 있었어요. 그날 갑자기 비가 내려 흠뻑 젖기도 했지만, 유익한 경험이었어요. 막상가이드를 해보니 준비할 게 많더라고요. 다음에는 준비를 철저히 해서 더 잘해 보고싶네요”라고 말했다. 이밖에 서울시내 유명백화점에서 ‘큰 씀씀이’로 주변을 놀라게 한 중국인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사석에서의 만남은 경기도 공무원들에게 중국 공무원들의 문화와 생리를 체험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게다가 연수에 참가하는 중국공무원들은 경제관련부서의 핵심실무자들이다. 얼굴만 익혀둬도 이모저모로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심영린 총무는 교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양국간 문화적 차이를 음식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중국에서는 여러 가지 요리를 시켜놓고 자기 입 맛대로 골라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국에서는 한 가지를 주 메뉴로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잘 대접한다고 하는 것이지만, 중국인 중에서 그 주메뉴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을 것이 없다’고생각합니다. 중국인들은특히나 먹을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렇게 대접하면 소홀하게 대접받는다고 여기게 돼죠.”
흔히 중국에 진출했다가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소한 부분을 소홀히 여겼다가 낭패를 봤다는 사례가 심심치 않다.
“동호회 활동 자체가 중국과의 가교 역할”
전(前) 주홍콩한국총영사로 ‘니하오’고문을 맡고 있는 석동연 경기도 국제관계자문대사는 이러한 회원들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석 대사는 한중관계에 대한 각종 기고와 특강으로 유명한 중국통이다.
석 대사는 “광둥성에서는 국유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자비를 들여 한국에 옵니다. 올해까지 벌써 일곱 차례 CEO 연수단이 다녀갔어요. 그만큼 한국에 대해 배우겠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이처럼 중국이 한국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우리도 중국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취미활동을 하는 동호회도 좋지만, 동호회를 통해 중국을 공부하고 중국 공무원들과 교유하면 담당업무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니하오’의 활동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중국을 배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중국공무원들에게 공식서류나 문자가 아닌 ‘사람의 얼굴을 지닌’한국을 알리는 것도 ‘니하오’회원들의 몫이다.

지난 6월‘니하오’회원들의 도움으로 에버랜드를 찾은 중국 랴오닝성 공무원들이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 G-Life 제공.
심영린 총무는 “기브 앤 테이크(givetake)식으로는 단기적 이익은 얻을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합니다. 중국 사람들도 주말에 한국공무원들이 쉬는걸 알지요. 하지만 쉬는 날에도 나와서 성심성의껏 그들의 연수를 돕는 모습에서 좋은 느낌을 받고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장기적으로 경기도와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니하오’의 손수익(경제정책과) 회장 역시 “(회원들은) 우리의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열심히 활동함으로써 중국과 좀 더 가까워지는데 일익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간적 면모뿐 아니라 경기도 공무원들의 업무능력을 알림으로써 국위선양을 하는 측면도 있다. 손수익 회장은 세계적인 명문으로 손꼽히는 중국베이징과 기대에서 수학한 실력파 공무원이다. 지난해11월 중국 랴오닝성에서 정치경제 분야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방한했을 때 한국과 중국의 중소기업 정책을 비교분석하는 강연에 직접 강사로도 나섰다. 시장경제에서 앞서는 한국의 중소기업정책을 알기 쉽게 설명한 손 회장의 강연에 감명을 받은 중국공무원들은 손 회장이 작성한 관련연구논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니하오’는 앞으로 회원들의 어학실력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릴 계획이다. 또한 향상된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도내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몇몇 회원은 이미 도내 다문화 가정을 위한 언어지원 자원봉사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중국어가 필요한 곳이라면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에서는 발 벗고 나서겠다는 생각에서다.
심영린 총무는 “최근 도내에 중국출신 이주민들도 많아졌고, 각종사업과 유학 등으로 중국과의 왕래가 잦아졌습니다. 앞으로 중국분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한 부분을 해소해줄 수 있는 활동도 기획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은 김문수 도지사도 평소 강조하는 부분이다. 아시안 시대를 맞아 향후 중국과의 교류협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손님 응대 같은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그들의 문화와 역사, 사회까지 하나하나 중국을 배워나가는 ‘니하오’회원들의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