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평택 고덕산단 현장에서 진행된 경기도의 13번 째 ‘찾아가는 실국장 회의’에서 삼성전자의 고덕산단 투자유치 결정과 관련해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숨겨진 노력이 공개됐다.
이날 실국장 회의는 1차로 평택 고덕산단 현장에서 경기도시공사의 브리핑으로 시작됐으며, 이후 고덕면사무소로 자리를 옮겨 진행됐다. 김문수 지사는 고덕면사무소에서 고덕산업단지 조성 관련 향후 지원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이곳에 입주하게 된 삼성전자와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김문수 지사는 “대한민국 모든 신도시에는 집을 지을 수 있는 택지만 있는데 경기도는 이렇게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며 “국토해양부에 고덕 지구의 절반인 250만 평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땅으로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밝혔다. 신도시 땅의 절반은 잠자리, 절반은 일자리를 만들어 일자리와 주거가 한곳에 있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김 지사는 “비록 처음 요구한 것의 절반인 120만 평을 산업단지용 토지로 받았지만 이는 신도시 개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피력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신도시 역사상 최초의 직주일체형 도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국토부는 이 같은 김문수 지사의 의견에 “그렇게 큰 산업단지를 만들면 들어올 기업이 있느냐”며 의구심을 표했지만, 김 지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가 해내겠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맨’ 김문수 지사는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도 공무원들과 함께 경기도 지도를 들고 직접 삼성 LG 현대 기아 SK 등 국내 대기업을 찾아다니며 세일즈를 벌이던 참이었다. 대기업에게 내건 경기도의 장점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교통 여건도 좋고, 유능한 인재도 많다는 점. 무엇보다 산단 조성을 위한 각종 행정 절차와 관련해 경기도는 언제든 즉시 해결해줄 수 있는 자세를 갖고 있었다. 그러한 노력 끝에 드디어 2006년, 비밀리에 한 음식점에서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과 만나 산단 입주를 결정지었다.
김문수 지사는 그 때를 회상하며 “정말 애간장을 태웠다. 국토부에선 어떤 기업이 입주할지 말해줘야 지원한다는데 삼성전자가 비밀리에 진행하길 원해 밝힐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음식점에서 우리끼리 협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해도 법적인 효력이 없던 터라 마음을 졸일 수 밖에 없었다”며 “그 비밀 협약이 이제야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김 지사는 “삼성전자는 평택에서 더 발전해 좋은 제품을 싼 가격에 공급하는 세계적인 일류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경기도 평택이 전 세계의 기술과 인재가 모여드는 상징적인 기업도시가 됐으면 좋겠다"고 큰 기대를 나타냈다.
한편 실국장 회의에 참석한 원유철 국회의원과 이재영 국회의원도 삼성전자의 고덕산단 투자와 관련해 국비 지원에 힘쓰고 있음을 밝혔다.
원유철 국회의원은 “국비 지원을 위해 기획재정부, 환경부, 국토해양부와 수차례 협의해왔다”며 “우선 내년도 반영된 예산에 진입도로 공사와 폐수종말처리시설 설치 관련 국비가 확보됐고, 용수공급시설은 막판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재영 국회의원은 “고덕산단을 지원하고자 ‘산업입지 및 개발법 개정안’과 ‘지방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이주민 대책 지원도 차질 없이 진행해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9월 11일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고덕산단 현장에서 진행된 찾아가는 실국장 회의에 참석하고자 전망대로 향하고 있다. 전망대에서는 경기도시공사 담당자가 삼성전자 고덕산단 투자와 관련해 브리핑을 진행했다. ⓒ 전민규기자
경기도의 전폭적인 지원이 삼성의 투자 결정으로
단군 이래 단일 기업의 최대 투자로 손꼽히는 이번 고덕산단 투자가 극적으로 성사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을까? 삼성과 고덕산단의 인연은 2006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선4기가 막 시작된 시점 김문수 지사는 당시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에게 평택 국제화계획지구 내 고덕지역을 첨단산업단지 후보지로 추천했다. 이후 매년 두 세차례씩 투자 관련 계획이 성과를 보이며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김문수 지사는 삼성 관계자와의 끊임없는 전화 및 간담을 통해 경기도의 비전을 제시했다.
삼성의 고덕산단 투자는 규모도 워낙 크고 민감한 사항이었다. 담당 부서인 경제투자실에서도 과장급이 실무를 맡았다. 조종화 경기도 북부청사 균형발전국장도 2009년 8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산업정책과장을 역임하며 도와 삼성 사이의 의사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 당시 이 일에 관여한 실무진은 이선종 삼성전자 부사장, 전승준 삼성전자 부장, 김문수 지사, 박수영 경제투자실장과 조종화 국장이었다.
조종화 국장은 “고덕산단 투자와 관련해 여러 대기업과 업무 협의를 진행했는데, 삼성은 굉장히 꼼꼼했다”며 “세계 최고의 기업답게 꼼꼼하게 따지고 신중히 결정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애를 태웠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삼성이 고덕산단에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처음 시작 때부터 지사님의 노력이 굉장히 컸어요. 삼성전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 세계시장에 우뚝 선 기업이니만큼, 삼성전자가 살아야 우리나라가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셨죠.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젊은이의 일자리 창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만큼 경기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삼성의 투자는 절실했습니다.”
경기도는 삼성의 기업 애로사항 해결에도 팔을 걷어 부치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수원사업장 내 연구동 건립을 위한 교통영향평가 시간을 단축하는 일도 그 일환이었다. 교통영향평가는 특정 건축사업 시행으로 인해 발생할 교통상의 각종 문제점 또는 그 효과를 예측·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제도로 이 결과에 따라 주변도로와 주차장 확보, 용적률 등이 달라지는 등 규제를 받게 된다. 이 과정이 보통 6개월이 걸리는데, 경기도의 도움으로 그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조종화 국장은 “지자체의 행정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업의 투자 결정은 쉽지 않다”며 “‘삼성이 경기도에 오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고, 걸림돌이 되는 게 있다면 국회·정부부처를 찾아다니며 법을 개정해서라도 지원해준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셈”이라고 말했다.

고덕면사무소에서 진행된 실국장 회의 모습. 이날 회의에서는 삼성전자의 고덕산단 100조원 대 투자와 관련해 관계 부처의 보고와 함께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삼성전자 투자 유치 뒷배경과 관련된 일화를 밝혔다 ⓒ 전민규기자
‘규제의 벽’ 뛰어 넘는 기업 지원 정책
김문수 지사는 바쁜 스케줄을 쪼개며 삼성의 고덕산단 투자 유치를 위해 삼성전자 서울 사옥, 수원 사옥을 직접 찾아다녔다. 실무자와 만날 때는 오랜 시간 얘기할 수 있도록 되도록 저녁시간에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경기도의 적극적인 태도에 반해 삼성은 매번 ‘아직은 고려중’이라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문수 지사도 ‘삼성이 진짜 평택에 올까?’라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조종화 국장을 비롯한 실무자들은 ‘삼성이 차기 사업장으로 반드시 평택을 선택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삼성은 지금 당장 필요한 땅을 구하는 게 아니라 여유 있게 진행했죠. 그에 비해 우리는 마음이 급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산업단지에 어느 기업이 오느냐에 따라 하수종말처리량, 전력소비량, 용수공급량 등이 달라져 해당부처인 수자원공사, 한국전력, 환경부와 협의를 해야 하는데 삼성이 진행 과정 자체를 비밀로 하길 원했기에 부처를 설득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거든요. 하지만 삼성이 신규 사업 확장을 위해서는 부지가 필요했고, 그 부지로는 평택이 최적임을 알고 있었어요.”
투자여건으로 보면 경기도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규제를 받고 있지만, 평택은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특별법 지원으로 규제가 풀려있는 상태다. 평택항과 인천공항도 가까워 물류비도 절감할 수 있다. 특히 전자산업은 연구소가 중요해 우수인력 확보가 우선시된다. 그런 점에서 평택은 서울과 수도권의 우수 인재가 출퇴근하기에 용이하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할 만한 곳으로 평택만한 입지가 없었던 셈이다.
조종화 국장은 “삼성의 고덕산단 투자는 실무자와의 계속되는 접촉을 통해 어느 정도 확정됐지만 외부에 공표하는 시기를 결정하는 것도 큰 고민거리였다”고 말을 이었다.
“기업의 투자 계획은 극비 사항인지라 최대한 보안을 지키는 게 관례죠. 2010년 12월에 체결된 입주협약도 원래는 8월에 하기로 계획돼있었어요. 관계자들이 일정을 잡는 과정에서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2~3차례 연기돼 12월에 하게 됐죠.”
경기도가 삼성의 평택 투자에 사활을 건 이유는 삼성 하나만의 파급효과도 어마어마하지만 삼성의 결정에 따라 주변 대기업 및 외투기업의 투자결정이 달라지는 상황 때문이었다. 그 예로 평택의 한 일본투자기업은 차기 투자지역으로 전북 익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경기도 경제투자실 관계자가 방문했을 당시 경영진은 ‘삼성이 평택에 투자를 한다는데 정말이냐’고 물으며 ‘그게 사실이라면 일본 경영진에게 말해 평택에 추가 투자 계획을 세우겠다’는 말을 전했다. 도 관계자는 ‘아직 밝히지 못할 뿐 삼성이 반드시 온다’고 말했고, 해당 기업은 얼마 후 도와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삼성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기업인 만큼 사업장이 어디 위치하느냐에 따라 관련 사업 기관의 투자 계획도 바뀌는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삼성은 지난 7월말 드디어 평택 고덕산단에 분양계약 및 지원협약을 체결했다. 조종화 국장은 “지사님을 비롯해 해당 공무원이 열심히 일한 성과”라며 “오랜 시간 일관성 있는 자세로 지원해 온 경기도의 노력을 삼성이 알아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경기도를 규제로 꽁꽁 묶어 놓고 있는데, 타 시도에 비하면 손발을 묶어 놓은 상태다. 경기도에 투자하고 싶어도 규제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도는 이와 같은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 냈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규제의 벽’을 뛰어 넘는 경기도의 기업 지원 정책은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조종화 국장은 1년 조금 넘는 기간 산업정책과장으로 일하며 김문수 지사와 함께 찾아다닌 기업이 40개가 넘는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경기도에 투자하세요! 언제든 도움이 돼드리겠습니다!’를 외치며 투자 기업을 찾아다니고 있다. 조만간 삼성의 투자유치를 이을 제2, 제3의 소식이 기다려진다.

삼성전자 고덕산단 유치 성공에 이르기까지 여정 ⓒ G-Life
경기도, 삼성전자 고덕산단 입주 완료시까지 전폭 지원
삼성전자의 평택 고덕산업단지 입주가 확정된 가운데 경기도가 고덕산단 T/F팀 구성, 고덕 R&D 테크노밸리 조성, 광역교통개선대책 마련, 중화권 대학유치 등 삼성전자 고덕산단 입주가 완료될 때까지 전폭지원에 나설 뜻을 밝혔다.
경기도는 도와 평택시, 경기도시공사, 삼성 관계자 21명으로 구성된 고덕산단 T/F팀을 구성하고 총괄, 조성지원, 인허가지원, 신도시협력, 교통인프라, 교육지원팀 등 6개 팀으로 나눠 산업단지 조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T/F팀은 2015년 12월로 예정돼 있는 산업단지 부지조성공사가 기간 내 완료될 수 있도록 각종 행정편의를 제공하는 한편, 도로, 교육 등 주변 인프라 구축과 기반시설 조성에 필요한 국비가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경기도는 고덕국제화신도시가 도가 추진하는 일자리와 삶터가 함께하는 융·복합도시가 될 수 있도록 고덕산업단지와 연계한 주거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도는 먼저 약 8만 평 규모의 고덕 R&D 테크노밸리를 조성, 산업단지의 연구업무를 지원하고, 삼성전자 협력업체를 위한 지원시설 용지 규모를 27만5,000㎡에서 44만5,000㎡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고덕산업단지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지구 내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약 5,000호 규모의 공동택지 공급을 추진하는 한편 1~2인 가구를 위해 산단 인근에 1,607호의 도시형생활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도는 고덕산단 주변지역과 서정리역세권 103만 평을 대상으로 올해 말까지 1단계 실시계획을 승인해 착공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교통지원대책으로는 KTX 지제역 건설지원과 산업단지 인근 5개 도로에 대한 조기개설 사업이 제시됐다. 도는 2013년 예산으로 54억원을 편성해 지제역에 대한 기본 및 실시설계 완료를 추진하고 내년 8월부터 공사가 추진되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도는 9월 안으로 도와 평택시, 철도공사 간 사업추진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산업단지 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2015년에 대비해 도는 산업단지와 국도 38호선, 국도 1호선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평택-음성고속도로 IC를 설치, 산업단지 접근을 편리하게 하는 한편 산업단지와 지제역을 연결하는 도로와 국도 38호선을 4차선에서 6차선으로 확장해 산업단지와 주변 시가지 연계성을 확대하기로 했다.
고덕국제화신도시를 겨냥한 교육인프라 지원방안도 발표됐다. 도는 고덕국제화신도시 계획 내에 외국 대학유치를 위한 16만㎡ 규모의 부지가 반영된 만큼 IT와 BT등 산업단지 입지 기업 관련 세계 우수대학 분교, 환황해권 국제교류를 위한 중화권 대학, 산업단지 내 인력 지원이 가능한 국내 특성화 대학이나 전문대학원 등을 유치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언어권 자료를 서비스하는 (가칭)평택국제도서관, 글로벌인재 양성을 위한 국제평생학습관과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 고덕 분원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 7월 31일 삼성전자의 평택고덕지구 산업단지 분양계약 및 지원협약이 체결됐다(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김문수 경기도지사, 두번째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 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