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지루하다’, ‘딱딱하다’, ‘나랑은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처럼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이나 대형 전투신은 없다. 그렇다고 코미디 영화처럼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실존하는 이야기들을 전달함으로써 자칫 삶에 지쳐 잊고 지낼 수 있는 사랑, 환경, 복지와 같은 가치들을 깨닫게 한다.
MBC에서 방영된 ‘아마존의 눈물’, ‘북극의 눈물’, ‘남극의 눈물’ 등 눈물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과학과 기술 발달 그리고 개발이라는 욕심에 잠시 잊었던 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제6회 DMZ국제다큐영화제가 열린 고양아람누리 전경. ⓒ 성지훈 기자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순기능을 이용한 아시아 최대 다큐멘터리 축제가 경기도에서 개최됐다. 바로 제6회 DMZ국제다큐영화제이다.
소통과 평화, 생명을 주제로 한 이번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는 총 30개국 111편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특히 지난해까지는 파주 DMZ 인근에서 개최되다 올해는 고양시로 장소를 옮겨 보다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는 자리가 됐다.
평소 접할 기회가 드문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과 더불어 ‘DMZ 평화 자전거 행진’ 등 행사의 기본 취지를 상기시키는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마련됐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조재현, 안재모 등 배우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성지훈 기자
지난 17일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조재현 영화제 집행위원장, 이번 영화제의 홍보대사를 맡은 배우 안재모, 고나은과 배우 김재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개막식이 열렸다.
배우 임호와 이일화 씨의 진행으로 막을 올린 행사는 가수 강산에의 축하공연으로 분위기가 고조됐다.
‘...라구요’를 열창 중인 가수 강산에. ⓒ 성지훈 기자
화려한 조명이 무대 중앙을 밝힌 가운데 잔잔한 기타소리가 아람극장 안을 가득 채웠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볼수는 없었지만…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이념의 대립으로 아직까지 분단과 대치 중인 비극적인 대한민국, 그 역사적 현실 속에 가족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실향민의 애끓는 그리움이 울려 펴졌다. ‘...라구요’의 절절한 가사는 DMZ의 상징적 의미, 영화제가 추구하는 평화, 소통, 생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축하공연 후 이어진 개막선언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영화가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DMZ영화제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우리 영화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재현 집행위원장이 개막작을 소개하고 있다. ⓒ 성지훈 기자
개막작 ‘울보 권투부’의 이일하 감독. ⓒ 성지훈 기자
이어 조재현 집행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개막작을 소개하고 작품이 상영됐다.
이번 영화제 개막작은 이일하 감독이 제작한 ‘울보 권투부’라는 작품으로, 재일교포 권투부 학생들이 권투를 통해 우정을 쌓고 재일교포라는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는 줄거리이다. 영화 제목이 ‘울보 권투부’인 이유는 극 중 등장하는 권투부 학생들이 이겨도 울고, 져도 운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극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영화들이 근사한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와 같다면 ‘울보 권투부’는 투박하지만 담백한 어머니의 된장찌개와 같은 매력이 있었다.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다큐멘터리는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이 자연스레 사라지고 가슴 속에는 다큐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소통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자리매김 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울보 권투부’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 대형교회의 문제를 다룬 ‘4월 16일 그 후’, ‘니가 필요해’, ‘쿼바디스’ 등과 더불어 유대인 강제수용소 추모행사를 방해하는 10대 극우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리고 우리에게 오늘은 없다’ 등 국내외 어둡고 아픈 내면을 다룬 영화들이 다수 상영됐다.
현대인들은 나와 관련 없는 주제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으며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 그저 현재의 즐거움을 우선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이렇게 외면한 사회 현상과 문제들이 머지않아 부메랑이 되어 나의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
거칠고 딱딱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 우리가 누리고 알아야 할 평화와 소통이 있고 생명이 있다. 어렵고 아프더라도 지금 우리는 상처가 곪고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 해법이 바로 다큐멘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