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은 배우 임호와 이일화. ⓒ 백승지 기자
“남은 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 이렇게 얘기 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지난 17일 제6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식에 초대가수로 참가한 강산에의 노래 ‘라구요’ 중 한 구절이다. 한국전쟁 때 남편과 떨어져 피난 왔던 실향민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에서 어머니가 그토록 가봤으면 하는 그곳은 바로 고향, 북한이다. 그 사이를 가르는 비무장지대 DMZ는 가사에 담긴 모습 그대로 분단과 실향민의 아픔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DMZ국제다큐영화제’는 평화, 소통, 생명을 주제로 한 아시아의 대표 다큐영화제로서 지구촌의 모든 인생과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강산에의 노래에 담긴 이야기처럼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던 DMZ를 평화의 상징, 소통의 창구, 생명의 보고로 탈바꿈하고 의미를 재 부여하는 뜻 깊은 영화제다. 이제는 철새 흰 기러기가 매년 자유롭게 오고가는 평화지대 DMZ를 낭만적으로 해석하고 남북을 뛰어넘어 전 세계 지구촌의 평화를 담은 다큐가 모여들어 그 의미를 한층 깊게 한다.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홍보대사 안재모·고나은, 조직위원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집행위원장 조재현, 트레일러 출연배우. ⓒ 백승지 기자
올해로 6회를 맞은 DMZ국제다큐영화제는 1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24일까지 총 8일간 다큐 축제를 벌였다. 상영관인 메가박스 킨텍스를 비롯해 일산 호수공원 등지에서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됐다.
이번 영화제는 기본적으로 국제 비경쟁 영화제이지만 부분 경쟁 영화제를 가미한 독특한 성격을 띤다. 이에 따라 국내외 다큐멘터리(국제경쟁 534편, 국내경쟁 127편)의 치열한 경쟁 끝에 30개국 111편(해외작 78편, 국내작 33편)의 규모로 상영이 확정됐다.
개막식에서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DMZ국제다큐영화제가 가지는 힘이 있다. 바로 소통이다. 이 소통을 통해서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며 DMZ국제다큐영화제가 보여줄 평화의 메시지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이제 6회째가 되는데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평화와 생명, 소통을 전하는 DMZ국제영화제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발전해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식장을 찾은 관객들. ⓒ 백승지 기자
DMZ국제다큐영화제의 매력은 관객과 감독의 만남이 원활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다큐가 상영 후 강연이나 토크쇼 혹은 Q&A 시간을 따로 마련해 관객과 감독의 소통을 도왔다.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영화와 달리 다큐의 감성은 영화가 끝난 후 남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며 더욱 배가되는 특징이 있다. 다큐영화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러한 장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프로그램 적용이 돋보였다.
DMZ국제다큐영화제의 또 다른 매력은 영화제라고 끊임없이 영화만 상영하는 축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네마+콘서트’는 프로그래머 특별 추천 다큐멘터리 영화 감상과 오케스트라의 실황 연주를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공연 프로그램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상이 끝나면 명작영화의 OST를 영화 속 장면과 함께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의 실황 연주로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콘서트가 진행됐다.
또한 ‘다큐백일장’은 다큐를 보고 글도 쓸 수 있는 이색적인 백일장이었다.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이야기들을 만난 뒤 자유롭게 감상문을 쓸 수 있는 기회였다.
DMZ 일대에서는 평화 자전거 행진이 진행됐다. 경기관광공사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진은 대한민국 분단의 상징인 민통선 지역을 자전거 타고 달리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자전거를 타고 임진각에서 출발하여 15km를 달리며, 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 평화·소통·생명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개막식 무대 위로 DMZ 관련 다큐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 백승지 기자
한편 폐막식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국제경쟁부문 대상 ‘흰 기러기상’은 천혜자연의 보고를 이루고 있는 DMZ에 매년 찾아오는 흰 기러기에서 착안해 이름 지은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DMZ국제다큐영화제의 개최 목적과 지향점이 DMZ의 평화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남과 북을 가르는 그 곳은 물론 분단의 상징이지만 허허벌판 황무지가 아닌 온갖 동식물이 살아 숨 쉬는 평화로운 공간 그리고 그 평화가 남과 북 사이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영화제 곳곳에서 느껴진다.
축제는 재충전과 휴식, 위로의 기능을 한다. DMZ국제다큐영화제는 아픔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켜 향유하고 의미를 되짚어보는 가장 지혜로운 위로의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