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팀 ‘리드 몬스터’가 다양한 국가의 국기를 가지고 공연을 펼치고 있다. ⓒ 허필은 기자
언어는 흔히 일상에서의 수단으로 치부되기 쉽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대화의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듯 언어는 통상 가벼운 개념으로 다가오지만 사실 그저 ‘수단’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언어가 가진 힘은 무궁무진하다.
언어는 대화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에 침투해 사고 체계의 구성을 결정하는 기능도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화의 수단보다는 사고 체계 구성의 역할이 언어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한 집단의 언어는 그 집단의 문화를 표현하고 사상을 내포하며 사회적 특질을 담고 있다. 하나의 언어를 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대화를 위한 것이 아닌,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문화 및 사상과의 접촉을 시도한다는 거대한 일이다.
이러한 거대한 일이 지난 9일 경기도여성비전센터에서 일어났다. 바로 ‘2014 전국 다문화가정 말하기 대회’가 열린 것. 이번 대회에서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한국어와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 국내거주 결혼이민자들의 한국어 말하기 대회로 구성되어 다양한 언어의 장이 펼쳐졌다. 대회 전 펼쳐진 퍼포먼스 팀 ‘리드 몬스터’의 국기 퍼포먼스 또한 이러한 다양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선진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선진문화, 포용
포용 문화를 언급하며 축사를 전하는 김광철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장. ⓒ 허필은 기자
‘2014 전국 다문화가정 말하기 대회’는 김광철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장, 박옥분 경기도의원, 이을죽 경기도 여성가족국장과 더불어 각 지역의 다문화가정센터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는 박가영 어린이를 포함한 7명이 참가했고,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는 베트남에서 온 이지영 씨를 포함한 7명이 참가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과 다양한 나라에서 온 결혼이민자들이 한 데 모인 자리인 만큼 무엇보다도 포용이 강조됐다.
김 위원장은 축사에서 “이제 우리나라도 단일민족국가에서 다문화국가로 변하고 있다”고 말하며 최근의 거시적인 경향을 언급한 뒤, “다문화가정은 특히 언어의 소통과 습득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하면서 다문화가정의 어려운 상황을 대변했다. 이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행복한 정착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 습득이 필수적”이라고 언어의 정신적인 측면에 대해 언급한 김 위원장은 “내년 우리나라가 3만 불 시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진정한 선진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포용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라는 경제적인 조건과 더불어 실질적인 국민의식 또한 선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
욕심쟁이 동생과의 에피소드를 중국어로 이야기한 이수연 어린이. ⓒ 허필은 기자
‘포용의 전제는 소통이다’라는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듯이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이 다문화가정 자녀, 혹은 결혼이민자로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발표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에서부터 다문화가정 자녀로서 겪었던 어려움을 통해 발견한 꿈 등 다양한 주제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또 결혼이민자 참가자들은 주로 남편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관객의 흥미를 끌었다.
특히 일본에서 10살까지 살다가 한국으로 전학을 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황영연 어린이와 네팔과는 다른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구룽 엄리타 씨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두 참가자 모두 적응이 어려웠던 대표적인 원인을 언어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황 어린이는 언어 적응이 힘들어 전학 온 학교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경험을 이야기했고, 엄리타 씨는 시골에서 쓰는 사투리 때문에 더더욱 적응하기 힘들었던 경험을 유쾌하게 이야기해 웃음을 자아냈다.
심사는 표현력, 내용, 발음 및 억양, 관객 호응도 및 시간 등 다양한 기준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아주대 교수인 권주연 심사위원장을 중심으로 엄격한 심사를 진행한 결과,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는 임하늘 어린이가,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는 베트남에서 온 누엔티 뚜엣란 씨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언어는 마음의 문을 여는 소통의 열쇠
‘2014 전국 다문화가정 말하기 대회’ 수상자들이 이을죽 경기도 여성가족국장 및 내빈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허필은 기자
비록 최우수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몽골에서 온 바트델게르 벗드갈 씨의 한 마디는 대회 참가자들은 물론 참석자들에게도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바트델게르 씨는 재미있는 한국 문화에 대한 발표를 한 후 “문화 차이는 그냥 흡수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한국어가 서툴러서 제대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바트델게르 씨의 말은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 소통임을 암시한다.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즉 소통은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이해하고 서로 포용하는 자리인 ‘2014 다문화가정 말하기 대회’는 다양한 언어와의 접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기회를 제공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언어를 통해 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언어는 마음의 문을 여는 소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2014 다문화가정 말하기 대회’에서는 소통의 열쇠인 다양한 언어들이 모이면서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의 소통이 이루어졌다. ‘무지개빛 언어에 날개를 달자’라는 대회의 슬로건도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소통과 그 소통을 통한 포용이 이루어질 때 실현될 것이다. ‘2014 다문화가정 말하기 대회’를 계기로 진정한 사람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