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립예술단 페스티벌이 지난 8일 막을 올렸다. 경기도문화의전당 재단법인 출범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페스티벌의 첫 시작을 알린 작품은 경기도립극단의 ‘매화리 극장’이었다. 90년대 이후 꾸준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 속에 비춰온 경기도립극단은 이번 연극에서도 같은 기조를 유지했다. ‘연극과 현실의 경계가 오늘, 허물어진다’라는 키워드로 개연된 매화리 극장은 시대의 아픔과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오늘날 우리의 치부를 드러낸다.
로비토크를 진행하는 매화리 극장의 이양구 작가. ⓒ 유재민 기자
특히 이번 경기도립예술단 페스티벌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제작자와 관객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로비토크’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왔을 뿐 아니라 제작자가 관객들과 함께 상호작용하고자 하는 이슈, 그 자체에 대한 본질을 함께 탐구하고 발전시켜나갔다.
매화리 극장의 극본을 쓴 이양구 작가는 “연극인들이 무대에서 뿜어내는 에너지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여주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굳이 연극을 관람할 때 목적성을 가지고 관람하기 보다는 관객과 연극인들이 하나의 시공간에서 같은 것을 공유하며 호흡했다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자”고 제안했다. 이 작가는 또 관객들과 상호작용하고자 하는 이야기 즉, 우리가 잊어버린 사회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며 “모든 예술에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로비토크를 진행하는 동안 관객들은 극작가의 메시지를 은근히 엿보았고, 그의 의도를 다시금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편, 본격적인 연극의 시작은 임팩트가 없다 못해 시작인지도 몰랐다. 그게 모든 관객들이 처음 경험하는 매화리 극장의 아이러니였다. 무대 위에서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조명을 매만지기에 공연 전 으레 진행되는 무대 장치 점검인 줄 알았다. 그 때문에 관객들은 소란스러웠고 연극이 이미 시작됐으리라고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무대 밑 중앙에서 군복을 차려입은 남성이 등장하고, 조명을 매만지던 작업자를 향해 씩씩하게 휴가 나왔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며 그제야 관객들은 이미 극이 시작됐음을 깨달았다. 시작부터 이것이 연극인지, 아니면 현실인지를 혼동케 하는 아이러니한 극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관객들에게 혼란스러움을 제공했다.
연극은 작은 도시에 강제철거가 이루어지고, 그곳에 들어선 아파트에 산사태가 일어나 아파트가 매몰되는 사고를 다루고 있다. 이권다툼으로 타인을 짓밟는 사람들, 결국 피해를 보게 되는 약자는 우리 삶에 비일비재한 비극이다. 다시 말해, 매화리 극장의 스토리라인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지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매화리 극장은 이러한 사회적 현실만을 던져주고 관객들에게 판단을 유보하는 상투적인 형식을 탈피했다. 극의 초반부터 극이 진행되는 내내, 연극과 현실의 합일을 끊임없이 시도하기 때문이다.
연극 안에 또 하나의 연극이 자리하는 극의 구조는 극과 현실의 합일을 뒷받침하는 매력적인 액자형 구성이다. 이곳이 현실인지, 아니면 연극 속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연출가 역의 서창호는 말한다. 이게 연극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어디든 연극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삶의 터전을 무대로 본다면 현실이 연극일 테고, 무대가 현실이라면 그것이 곧 연극이자 현실이 된다는 아이러니를 발현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극장=매화리’ 구도는 극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연출의 궁극적인 효과는 무엇일까? 바로, 작품의 메시지와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사회적인 우리들의 치부를 관객들이 픽션 즉, 연극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로 받아들임으로써 더 큰 임팩트와 생각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관객들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인다. 무대 마지막에 떠오르는 희생자의 옷들 그리고 유품에서 관객들은 현실의 희생자를 떠올렸고 그것은 곧 우리가 당면한 현실 자체,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현주소라는 사실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차별화 된 구성을 취하고 있는 매화리 극장은 관객들이 더 넓은 생각의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도록 묵직한 의미를 되뇌고 있다. 마지막 커튼콜이 올라가고 나서도 극 속 희생자들의 유품이 무대 위에 계속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아픈 현실을 그리고 거울처럼 담아낸 삶의 집약체인 연극을 잊지 말아달라는 은은한 잔상 같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