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SNS에서 화제가 된 감동운동회 사진. ⓒ 용인 제일초등학교 제공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이름하여 ‘감동운동회’라고 알려진 이 사진은 5명의 아이들이 다함께 손을 잡고 뛰는 모습인데 그 중 또래보다 체구가 작은 한 아이가 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사진과 함께 소개된 사연에 따르면 경기도 용인시 제일초등학교 6학년 2반 김기국(12) 군은 선천적으로 뼈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연골무형성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연골무형성증으로 겉보기에도 또래 아이들과 다른 체형을 가진 기국이는 운동회 달리기 경주에서 항상 꼴등을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또래 친구들과의 격차는 커지고 꼴등이라는 등수에 상처받던 기국이는 운동회에 가기 싫다고 울기도 하고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런 기국이를 위해 작년에는 담임 선생님이 기국이의 손을 잡고 함께 뛰기도 했다. 그리고 올 해는 마지막 초등학교 운동회를 앞두고 ‘기국이를 배려해서 친구들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아이들이 스스로 일등도 꼴등도 없는 감동운동회를 계획하게 됐다.
운동회 이후 이 사진은 SNS와 인터넷으로 퍼져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기국이를 비롯한 4명의 친구들(심윤섭, 양세찬, 오승찬, 이재홍)도 화제가 됐다.
각종 매스컴 인터뷰에 최근 선행시민 표창까지 수여받으며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았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적힌 표시석. ⓒ 양연주 기자
감동운동회의 주인공인 기국이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위치한 제일초등학교. 입구에 위치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표시석이 인상적이었다. ‘나보나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학생들이 모인 곳이라 감동운동회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에 어떤 학생들일지 더욱 궁금해졌다.
기자단을 맞이한 제일초등학교 홍정표 교장은 “교육이라는 것의 목적 자체가 홍익인간”이라며 “제일초등학교는 꿈꾸고, 배우고, 함께 나눌 줄 아는 어린이를 양성하기 위해 또 행복한 제일 학교가 되기 위해 학생과 교사, 학교, 학부모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제일초등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 ⓒ 양연주 기자
타 학교보다 체험학습, 특별활동 등이 6~7배 이상 많은 제일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7~8명씩 의형제를 맺어 같이 밥을 먹고, 금박산 등반을 하고 서로를 챙기며 자치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어떠한 안건에 대해서는 다 같이 강당에 모여 의논하면서 광장식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최근에는 ‘선후배간에 인사가 없다’라는 주제로 토의가 있었고 ‘인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방안을 생각하고 제시하는 등 제일초등학교 학생들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홍 교장은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학교 홈페이지에 응원의 글과 관심을 보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하면서도 “학교에 자랑스러운 일이 생겼지만 걱정도 한 가지 있다. 학교 바로 앞에 자연환경을 훼손하면서까지 물류창고가 들어서는데 그 물류창고로 인해 학생들의 생태학습장이 사라질까 우려 된다”고 말했다.
용인교육지원청 차혜숙 교육장이 감동운동회 주인공들에게 시상을 하고 있다. ⓒ 양연주 기자
이날 제일초등학교를 방문한 용인교육지원청 차혜숙 교육장도 “교장과 교사들이 전교생과 학부모까지 다 아는 학교는 보기 드물다”며 “제일초등학교는 학생들에게 교육공동체, 주인의식을 갖는 교육을 하고 있어 미래형 학교이자 이상적 학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의 이번 감동운동회가 어른들의 이해관계나 잇속 챙기기에 의해 왜곡되거나 이용되지 않도록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 그 자체로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는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왼쪽부터 오승찬, 김기국, 심윤섭, 이재홍, 양세찬 군이다. ⓒ 양연주 기자
이어서 김기국 군을 포함한 심윤섭, 양세찬, 오승찬, 이재홍 군 등 총 5명의 주인공을 만나볼 수 있었다. 양세찬 군은 “예상치 못한 것이 화제가 돼서 얼떨떨하다”, “그냥 평소 기국이랑 놀듯이 행동했는데 이게 왜 칭찬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다”며 기국이를 배려해 함께 손잡고 뛴 것을 아주 특별하거나 감동적인 일이 아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승찬 군 또한 “기국이는 그냥 평범한 친구예요”, “기국이를 특별하게 생각한다거나 다르게 대하는 건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이번 운동회를 사람들이 감동운동회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 김기국 군은 “우리 사회에 배려가 없어서, 달리기는 순위가 중요한데 순위를 포기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감동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 군은 “어른들이 자기 생각만 하지 말고 상대방을 더욱 존중해줬으면 좋겠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6학년 2반 학생들의 단체사진. ⓒ 양연주 기자
한 친구에게 추억을 선물해 주고자 했던 친구들의 작은 배려가 네티즌과 어른들을 감동시켰다. 제일초등학교의 운동회 ‘제일한마당축제’가 단순한 운동회가 아닌 ‘감동운동회’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친구를 사랑하고 배려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도 있었지만 먼저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고 가르쳐준 교사와 학교 환경 덕분이었다.
제일초등학교는 학교 운영과 교육과정이 자율화되고 학급당 인원이 25명 내외의 소규모로 운영되는 ‘혁신학교’이다. 혁신학교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주도적이 학습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학교 형태로 성적 위주의 교육이 아닌 인성 중심의 교육을 한다.
어린아이다운 순수성을 잃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자라기 위해선 이와 같은 인성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성적보다 인성을 중요시여기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기르게 된다면 ‘감동운동회’는 제일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도 매년 볼 수 있는 가을풍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