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우리의 삶에서 주인공을 꿈꾼다. 운동선수는 멋진 결승 득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끄는 꿈,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멋지게 해결하는 꿈, 연예인들은 무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때로는 레드카펫을 밟으며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이 필요하다. 운동선수의 결승 득점에는 어시스트 해주는 선수가 필요하고, 회사의 프로젝트 수행에도 업무를 도와줄 동료가 필요하다. 연예인이 무대에서 인기를 누리기 위해서도 무대나 조명을 책임지는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화려한 무대 뒤에 숨은 도우미들의 활약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경기도립예술단 페스티벌에서 진행한 ‘오픈하우스’에서다.
무대 위의 빛을 책임지는 조명조정장비. ⓒ 성지훈 기자
16일 열린 오픈하우스에서 참가자들이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조명이다. 조명은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빛의 밝고 어두움에 따라 무대에 선 배우들의 연기와 감정선이 달라지고, 공연을 향한 관객들의 몰입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조명조정실은 무대에 관련된 모든 조명을 담당하는 곳으로 두 대의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이 카메라를 통해 조명이 켜졌을 때와 꺼졌을 때의 무대 상황을 살피며 공연을 준비한다. 무대 위 공연자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도록 밝게, 때론 어둡게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며 빛을 조정하는 조명감독에게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소리의 높고 낮음을 통해 온기까지 표현할 수 있는 음향조정장비. ⓒ 성지훈 기자
조명과 더불어 무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음향이다. 오케스트라의 음색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배우의 대사를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 모두 음향의 몫이다. 음향감독의 손끝에서 때로는 전쟁터에서 마주친 장수의 검처럼 날카롭고 냉철함이, 때로는 한 겨울 추위에 벌벌 떨다가 마시는 따뜻한 차의 온기처럼 한없이 따뜻한 음색이 피어났다.
무대의 모든 상황을 보여주는 모니터. ⓒ 성지훈 기자
음향조정실 너머 마주한 무대는 기대 이상의 허름함으로 놀라게 했다. 네 대의 카메라는 화려한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이 카메라들은 무대에서 진행되는 모든 순서를 체크하고, 소품과 조명, 음향을 관리하는 일종의 감시카메라라고 했다. 그 카메라를 통해 바라본 무대는 더욱 빛나보였다.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숨은 조력자들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이리라.
어정훈 무대감독이 무대 뒤편을 소개하고 있다. ⓒ 성지훈 기자
무대 바닥에는 커다란 원이 새겨져있다. 이 원은 틈이 벌어져있는데, 무대 전환 시 무대를 쉽게 바꿀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높은 천장 위로는 여러 조명이 마치 포도 줄기처럼 얽혀있었다. 길고 검은 커튼은 연극이나 무용 공연 시 옆 라인을 가리는 용도다.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우리나라의 38선 철책처럼 무대와 무대 뒤쪽은 벽과 커튼으로 인해 더욱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벽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 있다는 소외감이나 안타까움 대신 열정이 느껴졌다.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연주해보는 어린이들. ⓒ 성지훈 기자
이날 오픈하우스에서는 세계 3대 피아노 중 하나인 스타인웨이 피아노도 볼 수 있었다. 한 대당 2억원이라는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이 피아노는 피아노 한 대를 만들기 위해 수백 명의 장인이 매달려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오픈하우스 참가자들은 명품 피아노를 연주해보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이날 무대 뒤편을 돌아보며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1등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무대 앞쪽에 선 자만이 삶에서 승리한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무대 뒤편의 조력자들이 없다면 1등도, 화려한 무대도 없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보다 무대 뒤편에서 일하는 조력자들이 더 많다. 앞으로 공연을 관람하게 된다면 화려한 무대 위 풍경도 중요하지만 그 무대를 위해 헌신하는 무대 뒤편 사람들의 노고를 떠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