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논에서 일하던 중 쓰러졌다. 농약 중독 때문이었다. 응급실에 실려 간 남편은 다행히도 건강을 회복했지만 그날 이후 농약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농약 없이 친환경방식으로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선언했다. 2004년의 일이었다.
친환경농업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던 시기라 농약 없이 농사를 짓겠다는 남편 김민제(61) 씨의 선언에 마을 사람들은 미쳤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아내 유순복(56) 씨도 극구 말렸지만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마지못해 남편을 따라 농약 없이 농사를 짓고 첫 수확을 거두던 날, 결과는 처참했다. 상품성 있는 작물이 거의 없었다. “얼갈이를 4kg씩 포장해 1톤 트럭에 실어 보냈는데 한 상자에 500원 쳐주겠대요. 포장 값이 480원인데.”
경기도 농어민대상/환경농업·신기술 부문 유순복 씨 ⓒ 김상근 기자
유 씨는 첫 수확물을 시장에 내보냈더니 쓰레기 취급을 하더라고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더 열심히 매달렸다. 논농사 위주로 진행되던 친환경농업 교육을 찾아다니며 듣고 부부가 밤낮으로 공부했다. 쌀겨와 깻묵을 EM(유효미생물)균으로 발효시켜 땅 힘을 기르고 산도 조절을 통해 토양 구조를 개선했다. 농한기에는 녹비작물로 호밀을 심고 갈아 엎어 거름으로 썼다. 더디지만 조금씩 땅이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땅은 비옥해졌지만 또 하나의 과제가 있었다. 바로 벌레와 풀이다.
유 씨는 지금도 친환경농업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한마디로 말한다. 친환경 농업은 벌레와 풀과의 싸움이라고. 유 씨의 늘봄농장은 해충 퇴치를 위해 매일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농장에 그린음악을 튼다. 시냇물 소리, 새소리, 클래식, 왈츠 등으로 이뤄진 그린음악에는 해충들이 싫어하는 음파가 담겨 있어 해충들이 서서히 줄었다.
그래도 잡히지 않은 해충에는 목초액, 효소 등 친환경제제를 만들어 살포하고 일일이 손으로 잡기도 한다. 그렇게 애지중지 농장을 가꾼 결과 점점 상품성 작물들을 수확할 수 있었다. 2009년부터는 여주시농업기술센터 사이버연구회에서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방법을 배워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홈페이지 운영 초기에는 한 달에 주문이 서 너 건에 불과했어요. 그래도 주문이 들어오면 얼마나 반갑던지 결제 여부를 확인도 안 하고 그저 물건부터 보냈다니까요.”
그렇게 상품 대금을 떼이기도 여러 번, 현재는 2만6000㎡ 농장에서 재배되는 브로콜리를 비롯한 48종의 농작물 중 80%를 인터넷을 통해 판매할 만큼 여유와 노하우가 생겼다. 나머지 20%는 친환경급식으로 공급된다.
늘봄농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바로 텃밭세트이다. 경기사이버장터에 ‘스마일 친환경 꾸러미’라는 이름으로 입점해 있기도 한 이 세트는 농업인이기 이전에 주부인 유 씨 가 주부의 마음으로 구성한 상품이다. 회원제로 운영하며 월 4회 계절별로 생산한 품목 10~13가지를 아이스박스에 담아 발송한다. 그때그때 수확한 신선한 채소들을 보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다.
유 씨는 “시장 갈 일이 없다고 하신다. 매번 보내는 채소가 달라지기 때문에 받을 때마다 뭐가 들어 있을지 선물 받는 기분으로 열어본다는 고객들이 많다”며 “일본으로 이민을 가서도 국제특송으로 주문하는 단골까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친환경농업 벤치마킹을 위해 늘봄농장으로 견학 오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환경농업·신기술 부문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지만 여전히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늘봄농장 주인 부부의 요즘 관심사는 우리 농산물을 이용한 가공식품 개발이다. 머지않아 늘봄농장 홈페이지(www.kimsfarm.kr)를 통해 공개한다니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