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삭초등학교 6학년 1반 학생들 ⓒ 이중훈/꿈나무기자단
산책하듯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의 흔적들과 마주하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남한산성이다.
이곳은 치욕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천혜의 요새이기도 하다.
화창한 가을 하늘의 배웅을 받으며, 2014년 11월 5일 동삭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와 함께 남한산성을 찾았다.
남한산성은 2014년 6월, 인류가 함께 보호, 보전하고 관리하여 후세에 물려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에서 11번째로 등재된 남한산성은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모두의 문화재로 사랑받게 됐다.
남한산성에 대한 안내 문구 ⓒ 이중훈/꿈나무기자단
남한산성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행궁을 둘러보았다. 행궁은 왕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능행, 휴양 목적으로 도성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이다.
이곳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 발생했을 때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인조 4년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가 결국은 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에 항복한 수난의 역사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행궁을 지나 본격적인 남한산성 탐방에 나섰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이런 어마어마한 산성을 어떻게 만들었을지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성곽길은 마치 한 마리의 용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능선과 산세의 지형을 그대로 활용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이어진 굴곡이 무척 아름다웠다. 남한산성을 걷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성곽길성곽 ⓒ 이중훈/꿈나무기자단
성곽에는 정식으로 만들어진 문 말고 다니기 쉽도록 곳곳에 암문이 있었다. 이 문은 적들 눈에 띄면 안 되므로 조그맣게 만들어졌고, 유사시에는 큰 돌 따위로 입구를 막을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조금 더 지나면 서쪽을 지키는 장수의 지휘대인 서장대에 ‘수어장대’라는 현판을 볼 수 있다.
남한산성에는 총 5개의 장대가 있는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수어장대라고 한다.
적을 막아서 나라를 지킨다는 뜻의 현판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치열했을 전투가 떠올랐다.
그리고 수어장대에 올라가 보니, 군사를 호령하던 장군이 어디선가에서 우리를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수어장대의 모습과 안내문 ⓒ 이중훈/꿈나무기자단
수어장대 앞에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의 무망루가 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결코 잊지 말고, 우리나라의 힘을 기르는데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남한산성의 남문이 나온다. 남한산성의 남문은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하여 ‘지화문’으로 칭하였다. 또,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이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는 곳이다. 성곽 담을 따라 남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이 참 아름답다.
남문의 모습 ⓒ 이중훈/꿈나무기자단
이번 기회에 남한산성이 중요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산성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남한산성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병자호란 때는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신했다가 청나라에 항복하는 삼전도의 치욕을 겪은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산성에 굴욕의 역사만 있었던 건 아니다.
초기 백제 400년 역사의 중심 무대였으며, 고려 시대에는 몽골군에게 승전한 곳이기도 했다.
또, 명성황후 시해 이후 의병들의 항쟁이 펼쳐진 곳이기도 하다.
이 모든 역사를 고스란히 가슴에 담고 지금까지 이어온 남한산성! 걷다 보면 생생한 역사의 깊이와 마주하게 되어 뜻깊었다.
이번 현장 취재를 통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스스로 힘을 길러 소중한 문화를 보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많은 학생이 이곳을 찾아 우리의 역사와 조상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