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공정한 경기를 다짐하는 취지의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 신형준 기자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총 3일간 경기도 연천 공설운동장에서 제1회 국제유소년(U-15) 축구대회가 열렸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가 주최하고 (사)남북체육교류협회와 연천군체육회가 주관하며 통일부, 경기도, 연천군, 경인일보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성공리에 막을 올렸다.
대회가 열린 3일간 한국, 북한, 중국, 우즈베키스탄 총 4개국 6개팀 173명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연천 공설운동장 주경기장과 보조구장에서 경기를 치렀다. A조에는 한국 경기도 유소년팀과 인천유나이티드 유소년팀, 북한의 4.25 축구 유소년팀이 속했고, B조에는 한국 강원 FC 유소년팀, 중국 광저우 제5중학교 유소년팀, 우즈베키스탄 FC 분요도코르가 속했다.
개회를 선언함과 동시에 흰 풍선과 하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 신형준 기자
7일 낮 12시 30분경 김경성 (사)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의 개회 선포와 함께 흰색 풍선이 하늘을 뒤덮었다. 개회식에 참석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축사를 하면서 선수단에 대한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한 뒤 대회의 성공적 개최와 정착, 발전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곡중학교 학생 560명의 ‘밀양아리랑’ 플래시몹이 뒤따랐다. 기존에 예정돼 있던 민화협의회장, 경기도지사, 연천군수의 시축은 시간 관계상 생략됐다.
전곡중학교 560명의 학생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플래시몹을 선보이고 있다. ⓒ 신형준 기자
개회식이 끝나고 경기도의 풍생중과 북한의 4.25 축구단이 개막 경기를 치렀다. 이 날 전반에 2점, 후반에 1점을 득점해 3대 0으로 경기도 풍생중을 이긴 북한 4.25 축구 유소년팀은 이 기세를 몰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4.25 북한 유소년 축구팀의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신형준 기자
남북 화해 및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고 참가국 축구 꿈나무들의 스포츠·문화 교류 확대를 목표로 한 이번 대회는 2007년 이후 남북 간 처음 열린 민간교류 차원의 대회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날 경기장을 찾은 김민국(56·경기도 연천군) 씨는 “이번 대회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서 연천군의 연례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차츰 기간도 늘리고 대회 참가국도 늘려나가길 바란다”고 대회의 발전을 기원했다.
초청 인사들이 이 날 개막경기를 치르는 풍생중, 4.25 북한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신형준 기자
북한 축구팀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연천을 찾았다는 김민식(19·경기도 안산시) 씨는 “나중에 남북교류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데, 이번에 남북 유소년 축구팀 간 경기를 벌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짬 내서 관람을 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봤다. 승패를 떠나서 굉장히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KBS 한준희 축구해설위원이 이 날 개막경기의 해설을 맡았다. ⓒ 신형준 기자
이 날 개막경기를 해설한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은 북한 유소년 축구팀에 대해 “상대 진영부터 들어오는 조직적 압박이 전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측면 공간을 빠르게 먼저 무너뜨리면서 중간으로 볼을 연결시켜 득점을 이뤄냈다. 이러한 점들이 지속된다면 북한이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점쳐진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북한은 기본적으로 항상 우리에게 만만치 않은 팀이긴 했지만 향후에 아시안컵, 월드컵 지역 예산과 같은 무대에서 만나게 되면 북한의 전력은 지금보다 커질 확률이 높아 보인다”며 북한 축구를 전망했다.
4.25 북한 유소년 축구팀은 지난 3일부터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 숙소를 마련하고 머무르다 11일 북한으로 돌아갔다.
개막 경기를 치르는 중 경기장 한편에서는 풍생중의 다른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 신형준 기자
개막식이 열렸던 7일, 관중은 남한과 북한으로 편을 가르지 않고 한 목소리로 응원했다. 양측 선수들도 넘어진 상대측 선수들을 서로 일으켜 세워주는 등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남북 축구는 남북 간 갈등과 화해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1950~60년대, 한국전쟁 후 이념과 체제경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남과 북은 축구장에서도 서로를 외면하기 급급했다.
남북 축구팀이 처음 만난 것은 1976년 방콕 아시아 청소년대회 준결승전에서였다. 당시 북한이 1대 0으로 승리했지만 남한 골키퍼의 부상에도 경기를 속행했다는 이유로 여론이 날카로웠다. 또 당시 홍덕영 아시아 축구심판위원장이 북한 청소년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온 형을 만났다는 이유로 심판 부정 판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그런가 하면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승부차기가 없었기 때문에 0대 0으로 비긴 남북이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시상대 위에서 북한 선수들이 함께 선 남측 선수를 밀쳐내면서 분란이 일었다.
1988년부터는 노태우 대통령의 7.7 선언 이후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남북은 단일팀을 이뤄 1991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에 출전했다. 공격수는 북한이, 수비수는 남한이 맡았다. 그리고 지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36년 만에 남과 북이 결승에서 격돌했고 남한이 1대 0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남북 간 화해의 물꼬를 트고, 관계를 진척하는 데 대표적인 스포츠로 거론되는 축구. 7년 만에 이뤄진 민간 차원의 교류라는 점에서 이번 대회에 북한 축구팀의 참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벌어질 남북 축구의 향방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