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내빈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백승지 기자
안전 불감증 시대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대비하지 못한 곳에서 사건·사고가 연일 터지면서 올해 우리사회가 안전 불감증에 걸렸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성’에 관련된 사건에는 안전 불감증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큰 사건이 터지지 않더라도 성 문제는 ‘불감(不感)’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밤마다 여성들은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성폭력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연령대가 어려져 언제라도 누구라도 우리는 잠재적 피해자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성 문제에 관해 좀 더 ‘감(感)’해질 필요가 있다. 피해자의 마음을 열고 그들과 공감하고 아픈 곳을 쓰다듬어줄 수 있는 그런 말랑말랑한 감이 필요하다. 지난 19일 아주대학교병원에서는 이 ‘감’을 최대한 살려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이하 센터)를 열었다. 성폭력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성매매·학교폭력 등 폭력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 입구. ⓒ 백승지 기자
센터는 폭력 피해자에 대하여 365일 24시간 ONE-STOP 시스템에 의한 상담, 의료, 법률·수사지원을 제공한다. 피해자가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2차 피해를 예방한다.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는 조사과정과 법적 절차를 겪으면서 스트레스가 더욱 높아진다. 사고만으로도 충분히 상처 받은 피해자에게 병원에서 다방면의 지원을 원스톱으로 처리해 더 이상의 상처를 줄이는 것도 치료의 일부분이다.
만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및 지적장애인에 대하여 의학적 진단과 평가 및 치료, 사건조사, 법률지원 서비스, 지지체계로서의 가족기능 강화를 위한 상담서비스, 심리치료 서비스 등도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심리지원팀이 종합 심리평가를 실시해 피해여성·아동의 정서적 안정성과 적응력을 고려하여 개인치료 및 그룹치료를 실시하는 것. 특히 미술치료, 놀이치료, 음악치료 등 어린이에게 특화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았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이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 개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백승지 기자
이날 개회식에 참석한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직업상 항상 가정폭력·성폭력 관련 뉴스에 둘러싸여 있다.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고 이 일을 일선에서 매일 접하는 분들과 직접 당한 분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를 매일 느끼고 있다”며 “이미 일어난 일에 더 이상 피해를 막기 위해 특화된 기술과 연구 노하우가 필요하므로 거점센터로서 해바라기 센터의 역할이 더욱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신의진 국회의원은 “저는 이 자리가 국회보다 편하다. 의과대학 교수고 98년부터 꾸준히 이 분야를 연구해 오면서 가장 익숙한 자리인데 오늘은 더 뜻 깊다.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성폭력 센터는 전국적으로 많이 있다. 그러나 해바라기 센터처럼 연구를 병행하면서 치료의 질을 높이고 전문가를 훈련시키는 거점센터는 처음”이라며 센터의 의의를 밝혔다.
성폭력 피해 어린이는 학년마다 다른 발달을 보여 여러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한데 현재까지는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했고 연구도 미진했다. 그동안은 신의진 의원이 개인적으로 미국에 가서 얻어온 책을 배포해 정보를 얻는 수준에 그쳤다. 연구와 치료를 병행하는 거점기구의 개소는 우리나라 성폭력 연구에 박차를 가할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바라기 센터라는 이름도 이 분야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신의진 의원이 직접 지었다. ‘성폭력’이란 이름이 직접적으로 들어가면 방문객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기에 해바라기라는 이름으로 대신한 것. 사회가 복잡할수록 그늘이 많아지지만 피해자의 마음에 희망의 해바라기 하나가 꽃피길 기대하는 마음이 센터명에서 드러난다.
개소식 입구에 마련된 어린이 그림 전시회. ⓒ 백승지 기자
영화 <소원>에서 성폭행을 당한 소원이에 대한 위로는 가족과 친구들의 몫이었다. 사회는 오히려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얼굴사진을 들이밀며 진술을 요구하고 가해자에게 낮은 형량을 매기는 등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가중시켰다.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떠넘겨진 사회의 몫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설립되었다. 어린 아이들과 약한 여성을 범죄로부터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사회와 어른의 미안함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해바라기 센터의 활약과 노력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