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기업 입사 3년차 경대기 대리는 오늘도 남들보다 1시간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두 딸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입혀 어린이집으로 데려간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아이들을 부탁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어깨 너머로 “엄마, 안녕~ 잘 다녀와”하는 아이들의 인사가 들린다. 그러나 눈을 마주보며 제대로 인사 나눌 시간이 없다.
부랴부랴 차를 몰고 막히는 도로를 지나 회사에 도착하니 아뿔싸 지각! 부장님이 주재하는 회의가 한창이다.
“경 대리, 지금 몇 시야? 애 본다고 유세 떨어?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그렇게 아침부터 부장님의 질펀한 욕을 들으며 수명 연장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경 대리이다.
올 한 해 진행했던 사업을 정리하고, 새해 새롭게 시작할 사업 계획과 예산안을 제출해야하는 시기라 부서 전체가 예민하다.
“경 대리, 이걸 PPT라고 만들었어? 지금 바빠 죽겠는데 뭐하자는 거야?”
가뜩이나 까칠한 김 과장은 평소 이상으로 날카롭게 공격해오고 옆 부서 동기 박 대리는 은근슬쩍 자신의 업무를 경 대리에게 떠넘긴다. 동기가 아니라 ‘웬수’다.
오늘도 경 대리는 야근을 피하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회식이다. 회식도 야근의 일종이라는 부장님의 명령 하에 억지로 술자리에 끌려가 시간을 보내는 동안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린다.
“여기 어린이집인데 언제쯤 오시나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부탁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쯤 부랴부랴 어린이집으로 달려간다. 엄마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은 벌써 잠이 들었다. 오늘 미술 시간에 아이들이 그렸다는 그림 한 장을 선생님이 건넨다. 엄마의 모습이라는데 눈, 코, 입도 없이 뒷모습뿐이다. 출근 시간에 늦을까봐 인사도 받지 않고 서둘러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아이들은 늘 이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그날 밤, 경 대리는 꿈을 꿨다.
“경 대리, 요즘 바쁘지? 미안한데 이 일 좀 도와줄 수 있을까?”
“프로젝트 실력은 경 대리가 최고야!”
독설대마왕 김 과장과 능구렁이 박 대리가 평소답지 않게 칭찬 세례를 퍼붓는다.
“에이 뭘요, 과장님만큼 되려만 아직 멀었죠. 앞으로 많이 가르쳐주세요!”
김 과장과 주고받는 대화 속에 웃음이 끊이질 않고, 팀 동료들과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
점심식사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회사 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살짝 보고 왔다. 창문 밖 엄마를 알아본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아이들의 미소에 에너지를 얻고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하던 경 대리는 시계가 오후 3시를 가리키자 퇴근 준비를 한다. ‘시간선택제’ 근무 중인 경 대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고 이후에는 집안일과 육아에 전념한다. 야근과 회식의 강요도 없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경 대리는 잠에서 깼다. 오전 6시, 또 다시 전쟁과도 같은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아, 꿈이었구나. 진짜 이런 직장 다니고 싶다.’
여러분도 경 대리의 상황에 공감하는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정작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없고 살얼음판 같은 조직 문화 속에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지는 않은가.
‘2014 경기도 일하기 좋은 기업’에 선정된 기업들에게 수여될 현판. ⓒ 성지훈 기자
경기도는 ‘경 대리의 꿈’과 같은 따뜻한 조직문화의 기업들을 격려하고 꿈이 아닌 현실 속 행복한 직장의 확대를 위해 25일 ‘2014 경기도 일하기 좋은 기업 인증식’을 열었다. 이번 인증에서는 기업의 가족친화제도 실행사항, 최고경영자 관심, 기업 대내외 신임도, 안정성, 근로자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도내 사기업 35개, 공공기업 9개 등 총 44개 기업이 ‘2014 경기도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됐다. 선정된 기업에는 중소기업육성자금 지원 시 우선금리, 가산점 부여 등 8개 기관에서 26개 항목의 혜택이 주어지며 ‘2014 경기도 일하기 좋은 기업’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도 수여된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 성지훈 기자
이 날 축사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독일 헤르티에재단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일하기 좋은 기업이란, 급여가 많은 기업보다는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기업, 가족친화적인 기업이다. 경기도는 앞으로 ‘굿모닝 경기도’를 위해 가족친화적인 기업 육성과 지원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날 선정된 44개 기업들의 가족친화적인 경영 우수 사례가 발표됐다.
엄마나 아빠가 무슨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자녀들이 볼 수 있도록 가족들을 회사로 초청하는 ‘가족 커밍데이’를 여는 회사, 타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가족같이 대하며 적응을 도와주는 회사,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벽을 허물고 티타임을 통해 진솔하게 소통하며 일하는 회사 등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기업들은 더욱 가족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행복한 기업문화를 선도할 것을 약속했다.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된 ‘대웅제약’ 관계자와 남 지사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성지훈 기자
우리 사회는 ‘대기업 지상주의’에 빠져있다. 급여가 높고 명성 있는 회사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많은 구직자들이 대기업으로 몰린다. 오로지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심각한 실업난을 초래했다. 하지만 남 지사의 말처럼 돈을 많이 번다고 좋은 직장이라고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노사가 서로 행복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 침체된 국가 경기를 살리고,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핵심카드인 것이다.
참석자들이 파이팅일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성지훈 기자
기업이 직원들을 위해 가족친화적인 분위기와 따뜻한 기업문화를 보장한다면 직원들의 업무 효율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업무 효율의 증가는 기업 매출과 직결돼 노사 상생의 최고의 방안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행사는 우리 사회가 잊고 있었던 일하기 좋은 기업의 가치를 재 상기시키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