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환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 ⓒ 경기도 아카이브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개념이지만, 서유럽 일부 국가들에서 연정(聯政)은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정치 현상이다. 서유럽에서의 연정은 대개 연립정부(coalition government)를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다수당 체제를 기반으로 한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나타난다. 즉, 하나의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 할 수 없는 구조에서 불가피하게 2개 이상의 정당이 연립하여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연립정부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의 연정은 대개는 선거연립(election coalition)의 형태로 나타난다. 결선투표제가 있는 국가에서 하나의 정당이 과반을 확보하기 힘들 때, 선거연립은 더욱 쉽게 이루어진다. 다수제 민주주의 하에서 선거연립이 아닌 형태의 연정은 연립정치(coalition politics)이다. 이는 의회에서 정책이나 의안별로 정당끼리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하여 넓은 의미에서 연정을 정의하자면 사실상 일상적인 정치교섭은 모두 연정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정의 본질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연정, 즉 연립정부 제도가 가장 잘 발달한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연방제 전통이 강한 국가이며, 정당 간의 연합이 일상화된 국가이다. 그렇다고 독일의 연정 제도가 기본법이나 기타 법률에 명시된 제도는 아니다. 다만 선거 결과, 하나의 정당이 과반을 차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당들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결과가 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지방정부가 아닌 독일 연방정부 구성에 있어서는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1개 정당이 권력을 독점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항상 2개 이상의 정당이 연합하여 국정을 담당해왔다.
연정이 일반화된 독일에서는 독자적으로 권력을 잡기 어려운 소정당들도 연합의 형태로 국정에 참여하여 소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기민당 소속 총리 아데나워(K. Adenauer) 내각, 1969년 다시 사민당과 연합한 자민당은 보통 9~10% 정도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었지만, 독일 경제·외교 분야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1998년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한 녹색당(Die Grünen)도 당시 6% 지지율에 불과했으나, 외교 및 환경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독일연방의회 의사당 전경 ⓒ G-Life 편집팀
대정당과 소정당의 연정 이외에도 경제위기 등 특별한 경우에는 거대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연정을 구성하기도 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보수연합인 기민-사민당과 중도좌파 정당인 사민당은 1966년에 이어 2005년과 2013년에도 연정을 구성하였다. 이러한 거대 정당들 간의 연합을 대연정(Große Koalition)이라고 부른다. 현 메르켈(A. Merkel) 총리는 기민당 출신으로 독일 대연정을 이끌고 있다.
연정은 다수 정파가 참여하기 때문에 특정 정파의 독선적 정부운영을 방지할 수 있는 반면, 정파 간 갈등으로 국정이 중간에 중단될 수 있다. 결국 성공적 연정을 위해서는 연정에 참여하는 정파(정당)들 간의 신뢰와 소통, 양보 그리고 합의가 필수적이다.
경기도에서 시도하는 연정은 기본적으로 연립정치(coalition politics)이지만 독일의 연립정부(coalition government)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 이는 연립정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없는 다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도되는 최초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정치 실험이다. 따라서 경기도 연정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연립정치든 연립정부든 정당들 간의 신뢰와 소통, 양보와 합의라는 정신이 연정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