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 ⓒ G-Life 편집팀
1963년 11월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총탄에 맞아 숨졌을 때 미국민들은 경악했다. 젊고 진보적인 대통령의 죽음에 민주당원뿐 아니라 공화당원들도 슬퍼했다. 그 이후 케네디만큼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미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은 나오지 않았다.
케네디의 비극적 죽음은 현대 정치사에서 상징적이다. 케네디 뒤를 이은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전 확전 결정을 내렸고, 미국사회는 분열됐다. 여기에 흑인 민권운동과 여성 평등권을 둘러싼 진보·보수 논쟁이 치열해졌다.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공화당과 진보적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민주당 주류의 간극이 벌어지면서, 1960년대 말 이후 미국 정당의 양극화가 표면화됐다. 극심한 정치적 대립과 갈등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이제 정파를 가리지 않고 존경받는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나오기란 매우 힘들다. 한쪽의 열광적 지지와 다른 한쪽의 조롱과 배척으로 ‘온 국민의 대통령’은 사라졌고, ‘우리의 대통령’과 ‘너희의 대통령’만 남았다. 과거의 선거가 갈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갈등을 해소하는 카타르시스의 장이었다면, 요즘 선거는 이기기 위한 전투일 뿐이다. 전투가 끝나면 양쪽 진영은 곧바로 다음 전투를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분열과 정치의 양극화는 대통령제의 필연적 속성처럼 보일 정도다. 갈수록 여야 정당은 지지기반의 좀 더 왼쪽 또는 오른쪽에 있는 소수의 열성 지지자를 격동시켜 투표장으로 불러내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거에 이기려면 ‘중간층’ 을 장악하는 게 필수라는 가설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은 진보진영 일부로부터 ‘야합’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아 50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미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을 분석한 데이비드 킹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중도로 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래야 표를 얻고 타협이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최근 경기도에서 구체화한 연정에 주목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지 표를 얻기 위한 도구로써가 아니라, 정치적 타협을 제도화할 수 있는 장치로 연정이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100% 대한민국’을 선거구호로 내세웠지만, 집권 이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중앙정치에서 여야 간 갈등과 분열만 훨씬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정부에서나마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타협과 협력을 통해 도정을 꾸려나가는 실험은 의미가 있다. 경기도 연정 실험이 성공하면 다른 시·도 또는 시·군·구로 비슷한 시도가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지방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협치 경험이 쌓이면 중앙정치에서 대타협을 이루고 권력을 공유하는 실험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흔히 대통령제 속성을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고 하는데, 이런 단점을 보완해줄 장치로 연정이 기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요즘 정치권에선 개헌론을 제기한다. 이원집정부제처럼 권력 분점을 제도화한 정치체제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국면처럼 국민 열망을 하나로 모으지 않는 이상, 헌법 개정은 어렵다. 대통령제 토대 위에서 협력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좀 더 현실적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국무총리를 주겠다며 연정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강산이 한 번쯤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경기도에서 비슷한 시도가 현실화된다. 새누리당 지사 밑에서 사회통합부지사를 새정치민주연합이 맡는다. 2005년과는 상황이 다르다. 정치의 양극화가 훨씬 심해졌기에, 경기도의 연정 실험을 관심있게 지켜볼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