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은 본래 사회보장제도 수혜자들의 범위를 한정하는 격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격언을 ‘배움’이라는 범주에 적용해도 전혀 어색함 없이 잘 어울린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품을 배우고, 성장기를 거쳐 많은 정보를 머리에 담는다. 이러한 학습은 이 세상을 뒤로하고 다른 세상으로 소풍을 떠나는 그 날까지 계속된다. 그래서 우리는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배움이란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하는, 헌법에도 명시된 권리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을 들여다보면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또는 먹고 사는 생계의 어려움에 밀려 배움의 길에서 멀어진 이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우리 사회는 그들을 기꺼이 배움의 장으로 이끌어야 하며 사회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도 그러한 기회는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이에 경기도와 수원시는 경기대학교,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와 연계해 노숙인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하고 재사회화를 거쳐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과 이웃을 생각하는 삶’이라는 주제의 노숙인 인문학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약 6개월간의 교육 끝에 지난 3일, 경기대학교에서 인문학 교육 수료식이 열렸다.
이번 교육에는 총 25명이 입교했으며, 80%에 달하는 20명이 인문학 교육을 수료했다. 이들은 6개월간 글쓰기 등 인문학 교육을 이수하고 1박2일 캠프 등의 체험학습을 수료하며 여러 가지 지식과 깨달음을 얻었다. 더불어 어두운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도 가졌다.
김기언 경기대학교 총장이 교육의 목적과 교육생에 대한 당부의 말을 건네고 있다. ⓒ 박경환 기자
세부 교육과정을 담당한 경기대학교 김기언 총장은 “대학은 경쟁력 있는 사람을 골라 교육을 통해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지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점수로 계산하기 어려운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내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며 “삶 자체가 돈의 많고 적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고통의 연속이다. 이 고통은 대응하는 자세에 따라 달라진다. 힘든 시간과 인생을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내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이번 교육의 목적을 밝혔다.
김주호 수원시 복지여성국장은 교육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 박경환 기자
김주호 수원시 복지여성국장도 “교육생들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든 인문학 교육이었다”며 “이번 수료식은 힘들었던 절망으로부터 졸업하는 날이다. 이번 교육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이날 수료식에서는 교육생들이 직접 쓴 수필과 시 등이 전시됐다. 수료식 후에는 작품을 직접 낭독하는 작품발표회를 통해 교육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미리 써보는 자신의 묘비명’, ‘자신이 가지고 있던 희망과 꿈’, ‘내가 만일 시인이었다면’ 등 다양한 주제 아래 담담한 문체로 써내려간 그들의 작품에는 그간 겪어왔던 과거와 현재의 슬픔, 암울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모든 문장에는 희망이 어려 있었으며 다시금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충분한 준비를 마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배움의 끝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배움과 학습의 끝은 오로지 학습자가 그에 대한 의지를 비로소 접었을 때뿐이며,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나이와 상황에 관계없이 계속될 수 있다. 당장 무더위와 칼바람을 막아줄 거처가 없어도 교육 참여자들은 배움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고 어느덧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결실을 맺게 됐다.
이번 인문학 교육의 수료생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담긴 수필작품을 전시했다. ⓒ 박경환 기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걸림돌이 없이 욕심 없이. 마음 느끼는 대로 늦으면 늦는 대로 마음 편하게 소통이 되고 친구가 되고, 때로는 사랑이 되어 변치 않는 내가 되었으면. 처음과 끝이 변치 않고 좋은 삶이 되었으면.’
어느 교육생의 작품이다. 이 교육생은 ‘무엇이, 어떻게 되었으면’ 하는 미래를 꿈꿀 수조차 없었던 불안정한 삶에서 이제는 미래를 설계하고 이를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 줄 기회를 잡았다. 이번 인문학 교육을 통해 그들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습득한 것을 넘어 현실을 깨고 앞으로 나아갈 한 걸음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암담한 현실 속에서 어디로 발길을 옮겨야 할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 때 경기도와 수원시 그리고 경기대학교의 관계자들이 어깨동무를 해주었다. 함께 내딛는 희망의 한 걸음 덕분에 더 이상 그들의 주변은 어둡지 않을 것이며 점점 밝은 빛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