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노숙인 인문교양교육’ 수료식이 열린 경기대학교 중앙세미나실.](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12/20141204154110221500080.jpg)
‘제2회 노숙인 인문교양교육’ 수료식이 열린 경기대학교 중앙세미나실. ⓒ 허필은 기자
기업에서 강조하는 인문학의 중요성은 사회로 확산되어 각종 대학은 물론 사교육 시장에서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문학에 대한 인식은 어렵고 딱딱한 인상으로 굳어있다. 이는 인문학을 씹지 않고 혀로 핥기만 하는 사회적 풍토에서 기인하는데, 같은 말로 인문학의 본질을 사회가 꿰뚫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지난 3일, 수원에 소재한 경기대학교 중앙세미나실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인문학 열풍이 노숙인들에게도 미친 것일까. 경기대학교는 올해로 2년째 ‘노숙인 인문교양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3일 진행된 ‘제2회 노숙인 인문교양교육’ 수료식은 ‘자신과 이웃을 생각하는 삶’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수료식엔 이한경 경기도 보건복지국장, 김주호 수원시 복지여성국장, 김기언 경기대학교 총장, 박연규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장,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장 김대술 신부 등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지원해준 관계자들과 더불어, 수료생 20명, 경기대학교 학생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올해 5월부터 25명의 노숙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한 ‘제2회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은 지난 11월을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수료인원은 남자 19명, 여자 1명으로 총 20명이 수료했으며 이는 입교한 인원 25명의 80%에 달하는 수치다. 20명의 노숙인들이 6개월의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것은 인문학의 사회적 확산이 그만큼 활발하다는 방증이다.
민간단체, 지방자치단체, 대학이 최초로 공동 운영하는 인문학 교육
![개회사와 경과보고를 하는 박연규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장.](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12/20141204154110228517715.jpg)
개회사와 경과보고를 하는 박연규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장. ⓒ 허필은 기자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은 노숙인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시켜 사회로 무사히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수업은 경기대학교에서 6개월 동안 총 32회에 걸쳐 진행됐고 철학, 역사, 문학, 논어, 글쓰기 등 총 다섯 과목과 더불어 집단 상담을 통한 심리 교육까지 이루어졌다. 교육과정은 노숙인들이 인문학의 다양한 영역을 폭넓게 배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은 학문과 실천이 병행됨으로써 교육 범주가 더욱 넓어졌다. 정기 교육과정 외에도 사회봉사, 1박2일 캠프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닌, 실천으로서의 인문학까지 배우도록 한 것. 게다가 경기대학교 원로교수 6명, 교양교육 교수 등이 교수진으로 참여하면서 교육의 질 측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교육 기간 중 노숙인들의 노숙생활 문제는 노숙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방지했다.
20명의 노숙인들이 수료한 인문학 교육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지만, 민간단체, 지방자치단체, 대학이 최초로 공동 운영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민·관·학이 공동으로 인문학 교육을 운영한 첫 번째 사례인 것인데, 세 기관이 협력해 교육생을 모집하고 교육과정을 기획했다. 경기도와 수원시, 경기대학교,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가 협력해 기획한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은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민간단체, 지방자치단체, 대학의 관심이 집중되어 질적인 보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숙인들의 마음의 변화”
![수료생들과 내빈들에게 환영사를 전하는 김기언 경기대학교 총장.](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12/20141204154110223074598.jpg)
수료생들과 내빈들에게 환영사를 전하는 김기언 경기대학교 총장. ⓒ 허필은 기자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이 다양한 단체의 노력의 산물인 만큼, 수료식에서는 다양한 단체의 환영사와 축사가 이어졌다. 김 총장은 환영사에서 “대학의 모토는 지역사회와의 협력이고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이다”라며 운을 뗐다. 이어 “기존에는 경쟁력 있는 학생을 교육해 사회로 진출시키는 기관의 역할만을 수행했다면 이제는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교육을 하게 됐다”고 말하며 노숙인들의 인문학 교육이 비가시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교육임을 강조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대신해 참석한 이 국장도 남 지사의 축사를 대독하며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은 미래를 설계하는 힘을 주고 자활의 꿈을 주는 교육”이라고 전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노숙인들의 마음의 변화”라고 말해 다양한 기관이 협력한 목적은 노숙인들의 변화임을 실감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이 국장은 “경기도는 앞으로도 ‘노숙인 인문교양교육’과 같은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염태영 수원시장을 대신해 참석한 김 국장 또한 염 시장의 축사를 대독하며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에 대해 “의욕 하나만으로도 교육의 목표를 달성한 뜻 깊은 교육”이라고 평했다. 노숙인들에게는 “인문학을 통해 찾은 꿈과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수료식은 김 신부의 ‘감사의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수료식 이후에는 수료생들의 연극 공연과 작품발표회가 이어졌다.
‘자’가 ‘인’으로, ‘노숙’이 ‘사회’로 바뀌는 기적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축사를 대독하는 이한경 경기도 보건복지국장.](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12/20141204154110221403948.jpg)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축사를 대독하는 이한경 경기도 보건복지국장. ⓒ 허필은 기자
사회가 꿰뚫지 못하는 인문학의 본질은 무엇일까. 인문학은 말 그대로 ‘인간을 위한 학문’이고 ‘인간에 대한 학문’이며 ‘인간이 인간답게 되기 위한 학문’이다. 학문은 학문이되 사람과 관련된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탐구의 대상이 되는 ‘인간’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자기에게로 확장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인문학의 힘이 격발된다. 사회는 이러한 본질을 꿰뚫지 못한 채 “누가 이러한 말을 했다”라는 식으로 인문학적 지식만을 강요한다.
달리 말하면, 인문학은 어려운 게 아니다. 본질은 그저 인간에 대한, 특히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탐구이지 어떤 철학자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예술가가 어떤 작품을 창작했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 탐구를 기본으로 이웃까지 포용했을 때 인문학 교육의 완성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의 주제인 ‘자신과 이웃을 생각하는 삶’은 인문학의 본질을 꿰뚫은 것이다. 자신에 대한 탐구, 또 이웃에 대한 실천은 노숙인들이 진정으로 인문학을 이해하는 방법이며, 확실하게 사회로 복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제로 수료생 대표는 연설에서 “인문학 교육을 통해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탈바꿈할 수 있는 힘과 의지를 얻었다”고 말하며 인문학의 본질적인 접근을 통한 교육이 효과가 있음을 알렸다. 또 “인문학적 소양 없이는 하루 이틀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되는데 한순간의 행복보다도 미래지향적인 삶이 중요하다”고 말해 사회로의 강한 복귀 의지를 드러냈다.
이렇듯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은 단순한 인문학 교육이 아니다. 수료생들은 교육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기적을 경험했다. ‘노숙자’였던 그들이 자신에 대한 탐구를 통해 ‘노숙인’으로 변화했으며, ‘노숙인’이었던 그들은 다시 ‘사회인’으로 바뀌었다. ‘자’가 ‘인’으로, ‘노숙’이 ‘사회’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노숙인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이 본질적인 접근을 통해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인문학 교육이 노숙인들을 사회인으로 변신시키는 기적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