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는 무엇인가? 5명 중 한 두 명은 ZARA, 유니클로, H&M 등 외국계 스파 브랜드를 이야기할 것이다. 싼 가격과 좋은 품질로 외국계 패션 브랜드가 우리의 의식주(衣食住) 중 의(依)를 차지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 된 일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 토종 패션 브랜드의 자생력을 저하시켰고 젊은 독립 디자이너들의 설 자리를 앗아갔다.
지난 2일 경기도는 젊은 디자이너와 패션 업계 종사자를 위한 ‘K-패션 디자인 빌리지’(이하 K패션 빌리지) 조성에 관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경기북부에 조성될 예정인 K패션 빌리지는 디자이너를 한 공간에 모아 서로간의 활발한 콜라보레이션과 독창적 디자인을 독려하기 위한 복합 패션 단지다. K패션 빌리지의 조성 방향과 꿈에 대해 토론하는 정책토론회를 시작으로 한국 토종 패션의 발전이 본격적인 첫 발을 뗐다.
![K패션 디자인 빌리지 정책 토론회에서 경기북부의 섬유 산업을 설명하는 PPT 자료.](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12/20141206134423407537342.jpg)
K패션 디자인 빌리지 정책 토론회에서 경기북부의 섬유 산업을 설명하는 PPT 자료. ⓒ 백승지 기자
왜 경기북부인가?
한국의 패션은 곧 서울의 패션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는 한국 패션의 현 주소다. 패션산업은 유동인구와 주변 인프라, 지역 이미지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동대문, 명동, 가로수길 등 패션 거리는 한번 입소문을 타면 사람들의 발길이 저절로 향한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디자이너들의 선호도가 높았던 신사동 가로수길의 경우, 대자본의 침투로 인해 더 이상 디자이너 패션산업의 주요상권으로 매력적이지 못하다. 이태원과 한남동이 최근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점차 대기업의 진출이 늘어나고 있어 가로수길과 유사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서울시는 동대문을 중심으로 창의패션(디자이너패션) 산업 육성을 계획하고 있으나 저가패션·카피패션 등 기존 동대문이 가진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 역량 있는 디자이너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경기북부는 패션산업의 기본이 되는 우수한 기술력 바탕의 원단생산 시설과 의정부의 봉제 시설, 데님가공 시설, 가죽 관련 생산시설 등이 모여 있어 패션산업을 위한 최적의 장소다. 한국 디자이너 패션과 경기섬유의 만남은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제공하여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디자이너와 원단업체, 섬유소재연구소의 유기적 협력 관계 구축을 통해 한 곳에서 모두 해결되는 토털 패션 공간이 경기북부에 탄생하는 것이다.
또한 경기북부는 북한과 인접해 있는 불리한 위치 조건 때문에 군사시설에 관한 각종 규제에 묶여 발전이 더뎠다. 지역개발이 뒤쳐짐에 따라 주민들의 박탈감 또한 높아 이번 K패션 빌리지가 경기북부의 발전과 재조명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재우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이사가 K패션 디자인 빌리지 조성방향을 설명하고 있다.](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12/20141206134423405554977.jpg)
정재우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이사가 K패션 디자인 빌리지 조성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 백승지 기자
K패션 빌리지, 그래서 뭐하는 곳이라고?
패션은 우리가 아는 의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K패션 빌리지는 건축, 가구, 텍스타일, 전통공예 등 디자인적 감성이 필요한 모든 분야를 아우르며 패션문화 융·복합 인프라를 구축한다. 패션 디자이너, 텍스타일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공연 전문가 등이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며 만들어내는 시너지를 담은 창조공간을 완성하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장기 주거공간과 작업 스튜디오를 제공한다. 다양한 디자이너가 서로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 자유로운 브레인스토밍과 젊은 문화를 형성한다. 패션 아카데미를 설립해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가 진행하는 철저한 현장 중심 교육도 제공할 예정이다.
K패션 빌리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시아 패션문화 플랫폼을 형성하는 것이다. 패션은 스타일이고 문화를 만들어내는 트렌드이자 라이프 스타일이다. K패션 빌리지에서 패션은 다양한 문화로 결합하는 중간 고리, 즉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패션은 창조적 융합을 위한 기폭제다. K패션 빌리지는 한국을 넘어 세계의 문화와 패션을 결합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이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정책 토론회에 참여한 8명의 패널들이 K패션 디자인 빌리지 추진 방향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다.](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412/20141206134423409111860.jpg)
정책 토론회에 참여한 8명의 패널들이 K패션 디자인 빌리지 추진 방향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다. ⓒ 백승지 기자
아직은 걸음마 단계, 앞으로가 중요하다
강우현 경기도 혁신위원은 “K패션 빌리지는 앞으로 5~10년 이상 중·장기로 강력한 리더십 가지고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사업이다. 지금은 꿈을 꾸는 단계라 참 좋은데 과연 누가 주체적으로 이 사업을 끌고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연말 지나고 내년 돼서 잊어버릴 거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일침을 놓았다. “먼저 땅을 사고 건물을 지으면 망한다. 먼저 모을 건 사람과 콘텐츠다. 사람이 모이면 그분들이 모여 콘텐츠를 짜고 그 후에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 것이 맞는 순서”라며 사업진행에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서울의 패션 피플들이 모인다는 가로수길은 10년 전까지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자연적으로 재미있는 사람이 모이고 즐거운 볼거리가 모이면서 패션 중심지로 성장했다. K패션 빌리지라는 전체적인 틀 안에 사람들이 즐길 콘텐츠를 가득 채워주면 부수적인 것은 따라온다. 아직 첫 걸음마를 뗀 K패션 빌리지가 어떤 사람과 콘텐츠를 모을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