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소극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노수정 기자
지난 18일 저녁, 코가 시큰해지는 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극장에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소극장 안은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온 학생들, 중년 부부, 가족 등으로 붐볐다. 모두 경기도립국악단에서 기획한 공연 <브루스니까 숲의 노래>를 보러 온 관람객들이다.
즐거운 사람과의 약속, 극장의 설렘, 경기도립국악단에 대한 기대로 들뜬 관람객들은 공연 전 팸플릿을 뒤척이며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궁금증 어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런데 ‘브루스니까’가 뭐야?”
브루스니까는 우리말로 월귤나무라는 식물로, 새끼 손톱만한 붉은 열매가 열리는 나무이다.
공연의 연출자는 사람 무릎만한 작은 크기, 차가운 눈과 거센 바람사이에서 빨간 열매를 맺는 브루스니까를 통해 사할린 동포들의 삶을 표현했다. 원작 연극 <브루스니까>에 국악과 성악의 요소를 가미한 음악극 <브루스니까 숲의 노래>는 절제하며 객관적으로 주인공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 속에는 사할린의 브루스니까로 이루어진 작은 숲, 60여 년 전 그곳에서 있었던 젊은 남녀의 사랑, 이별, 재회를 통해 바라보는 역사 그리고 잊혀져가는 현실이 담겨 있다.
사할린의 강제이주 된 한인 2세 따냐는 또래 이성인 세르게이와 따뜻한 봄을 기약하며 사랑의 약속을 한다. 하지만 고아인 세르게이는 사할린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고향을 찾아 떠난다. 사할린의 모진 추위와 무관심 속에 한인들은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견디고 반세기가 흐른 뒤에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떠나자는 남편의 제안에도 따냐는 고개를 젓는다.
“내 자식들과 손주들이 있는 곳에서 나는 살 거예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또다시 이산가족이 돼야하는 벽 앞에서 따냐는 가족이 있는 고향을 선택한다.
<브루스니까 숲의 노래>는 고향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따냐, 따냐의 아버지와 따냐의 남편, 세르게이, 마을 사람들 모두 같은 곳에 있지만 원하는 고향은 다르다. 과연 무엇이 이들의 길을 변하게 한 걸까.
“고국이 뭐라고 저리 좋아할까, 누가 반긴다고 저리 가려할까?”
“고국은 대체 누구를 위해 간단 말이오?”
따냐가 남편에게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래도 고국 대한민국에 가겠다는 말이었다.
사할린의 추위보다도 냉정한 소련사람들의 무시와 천대를 받은 그들에게 고향은 그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고향은 위로이자 사랑이며 따뜻한 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
“안산과 인천에 살고 계신 그 분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습니다. 우리에게 잊혀져간 역사이자 현실이죠. 경기도민의 애환, 사랑, 슬픔, 아픔을 우리는 공연으로 또 다른 경기도민들에게 알려줄 것입니다. 그것이 경기도립국악단의 목표입니다.”
경기도립국악단의 김재영 예술감독이 말했다. 덧붙여 그는 “국악이 젊은 관객들과도 소통할 수 있도록 성악의 요소를 추가하고, 연극과 같이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음악극으로 연출했다”고 부연했다.
공연이 끝난 뒤,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학생들. ⓒ 노수정 기자
무대 스크린 뒤 국악단의 연주, 흡입력 있는 나레이터, 배우들의 진정성 어린 연기로 <브루스니까 숲의 노래>는 어린이, 청년, 학생 등 다양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시간 반여동안의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들에게 따냐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과거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이며 이웃의 이야기로 큰 감동을 남겼다.
세찬 역사의 풍설(風雪)에도 울지 않고, 지치지 않으며 나아간 민족의 이야기 <브루스니까 숲의 노래>는 21일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