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경기’人]은 기억에 남을 사연의 주인공이거나 이색적인 경력을 가진 경기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기획시리즈입니다. 네 번째로, 최근 갈색거저리와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의 간 기능 개선 효과를 밝혀내 관심을 끈 경기도농업기술원 소호섭 박사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주>
최근 경기도농업기술원 소호섭 박사가 갈색거저리와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의 간 기능 개선 효과를 밝혀내 관심을 끌었다. ⓒ 경기G뉴스
식용 곤충 갈색거저리를 처음 먹어보는 맛은 어떨까? ‘밀웜’으로도 불리는 이 노란 곤충은 처음 보는 순간 누구나 움찔하게 마련이다. 언뜻 보면 오글거리는 모양이 마치 구더기로 연상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식용이라는 데 용기를 내 갈색거저리 한 마리를 조심스럽게 먹어 본다. 무슨 맛일까? 한참 동안 음미해 보니 강냉이 튀밥 중 튀겨지지 않은 옥수수의 뒷맛이 느껴진다. 이 맛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씹고 나니 약간 꺼칠한 큐티클 찌꺼기의 지방 성분이 남는다.
갈색거저리 곤충은 40대 이상의 남자들은 그런 대로 쉽게 먹지만 어린이나 여성들은 거의 다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이런 혐오감을 주지 않기 위해 분말과 환으로 만드니 의외로 거부감이 적었다고 한다.
최근 경기도농업기술원이 갈색거저리(밀웜)와 흰점박이꽃무지 유충(굼벵이)의 간 기능 개선 효과를 밝혀내 관심을 끌었다. 이들 식용곤충을 연구하고 분말·환 등의 제조 방법도 개발한 화제의 주인공인 소호섭 박사를 만났다.
“그간 국산 갈색거저리와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은 항균효과와 일반성분, 식품 원료화를 위한 살균조건과 세포독성만 보고돼 왔었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 두 식용곤충의 기능성이 밝혀져 곤충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공품이 많이 개발되면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도농기원 환경농업연구과 소호섭 박사는 향후 식용곤충산업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고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
실로 외국에는 곤충을 식품원료로 활발히 사용하고 있다. 멕시코는 60여 종의 곤충을 식품원료로 쓰고,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도 곤충 통조림이 인기다. 벨기에는 10여종의 곤충을 판매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에서 식품원료로 인정한 곤충은 메뚜기 등 총 5종이다. 메뚜기와 식용 누에번데기, 백강잠(말린 누에고치) 3종은 국민들이 오래 전부터 먹어온 식경험이 인정돼 이미 식품원료가 돼 있다. 여기에 지난 7·9월 갈색거저리·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이 한시적 식용 곤충으로 인정돼 5종으로 늘어났다.
소호섭 박사가 도농기원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경기G뉴스 박관식
갈색거저리와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은 풍부한 영양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갈색거저리 유충에는 단백질이 50%, 지방이 33% 함유돼 있으며 간 기능 회복에 효과적인 ‘알라닌’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은 단백질이 55%, 지방이 17%로 칼슘과 칼륨도 다량 포함돼 있다.
이들 식용곤충은 동물실험 결과 간 기능회복에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됐다. 간이 손상된 래트에게 갈색거저리 유충을 먹이고 다른 쪽은 그냥 둔 채 3주간 실험했다. 그 결과 유충을 공급한 래트는 활성산소 제거 성분이 33.1%, 간을 해독하는 총 글루타치온 함량이 51.2%로 높게 나타났다. 간 손상 때 발생하는 효소 함량은 36~44.1%, 중성지방 23.4%, 총 콜레스테롤 18.4%, 동맥경화지수 58.7% 정도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방식으로 흰점박이꽃무지 유충을 실험한 결과 활성산소 제거 성분이 23%, 총 글루타치온이 34%로 높은 반면 간 손상 발생 효소는 35~38% 낮았다. 중성지방은 9%, 총 콜레스테롤은 10%, 동맥경화지수는 34%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 박사는 “현재는 이들 곤충이 민간요법으로 쓰이기 위해 거래되고 있지만 실제 의약품으로 인정해 판매되려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거쳐야 한다”며 “식용곤충으로서의 한시적 인가도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당국으로서는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는지, 다른 문제점이 없는지 시장 반응을 한 번 더 볼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도농기원에서 이들 곤충의 간 기능 회복 효과 발표가 있은 이후 소 박사를 찾는 간 관련 환자들의 전화가 부쩍 늘었다. 이런 관심이 성가실 수도 있지만 그는 당사자들의 애절함을 십분 이해해 최대한 성심껏 응해준다.
소호섭 박사는 굼벵이와 연관된 어린 시절의 경험을 들려준다. 시골집이 초가였는데 추수가 끝난 후 이엉을 바꿀 때마다 고급 승용차들이 집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결국 그 이유는 굼벵이를 얻기 위한 방문이었던 셈이다. 소 박사는 과거와 현재의 묘한 인연을 이야기하며 “그때부터 호기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소호섭 박사가 현미경으로 확대한 밀웜을 관찰하고 있다. ⓒ 경기G뉴스
도농기원은 두 곤충을 활용한 분말·환 등 다양한 제조 형태를 개발하고 제조법도 공개했다. 분말·환·강정·초콜릿코팅·튀김 등을 만들어 기호도를 평가한 결과 콩·현미 가루 등을 섞은 갈색거저리 분말은 9점 만점에 6.7점을 기록했다. 이는 외관·색·식감·향기 등에서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을 만한 수준이다.
제조 방법은 경기도농업기술원 홈페이지
(nongup.gg.go.kr) 자료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연구 내용과 제조 방법은 내년 1월 제작되는 ‘농업과학 실용화 응용기술’에 게재되며, 시·군 농업기술센터 등에 배부돼 누구나 보고 활용할 수 있다.
갈색거저리(Tenebrio molitor)는 딱정벌레목 거저리과 곤충으로 밀웜(mealworm)이라고도 불리며 한국 등 전 세계에 분포한다. 번식률이 높아 새나 애완동물의 먹이 곤충으로 이용되고 있다.
흰점박이꽃무지(Protaetia brevitarsis)는 딱정벌레목 풍뎅이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한국을 비롯해 시베리아 동부지역에 서식한다. 유충인 굼벵이는 제조(蠐螬)라는 한약재로 쓰이며 천연항생 단백질인 프로테신(protaecin) 등 유용한 생체활성 물질이 함유돼 있다.
경기도는 앞으로 곤충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내년에 도농기원 내 곤충자원산업화지원센터를 개설할 계획이다. 도는 해충을 퇴치하는 천적 곤충 연구 위주로 펼쳐 나갈 예정이다.
이에 대해 소호섭 박사는 “무당벌레는 응에, 진딧물 등 해충을 잡아먹는 착한 곤충이다”며 “앞으로 그런 점을 집중 연구해 농약을 안 쳐도 되는 곤충 4~5종을 찾아 개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소 박사는 “전남 함평의 나비 축제도시처럼 경기도도 곤충 축제도시를 만들면 좋지 않겠냐”는 뜻밖의 질문에 “연구하는 사람들은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끔씩 숲을 못 보는 경향이 있다. 숲을 보는 게 필요한데 넓게 보면 흐트러지니까 크게 못 봐 아직 부족하다”며 겸손해했다.
소 박사는 식용곤충에 이어 해충을 잡는 착한 곤충에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경기G뉴스
소호섭 박사는 지난 2009년 세계 최초로 가축설사병 예방백신 벼를 특허출원해 국제적인 관심을 끈 인물이다. 그가 벼를 연구한 동기는 세계 각국의 항생제 사용 제한 추세에 따라 이를 대신할 가축설사병 예방백신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보자는 데서 비롯됐다.
소 박사는 먼저 사료작물인 알파파·오차드글라스 등 콩과 식물과 옥수수를 2004년부터 2년간 연구해 설사병 백신 유전자를 형질 전환하는 운반체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오염물질로 형질전환에 실패했음에도 그의 오기는 계속됐다. ‘기능성 벼’의 다양한 가능성에 주목한 그는 드디어 2006년 볍씨에서 백신유전자와 게놈(유전자 집합체)을 확인했다.
이어 DNA·RNA·단백질 발현을 검정하고, 게놈분석으로 염색체내의 유전자 삽입 위치를 확인한 결과 볍씨에 다량의 백신이 함유된 것을 발견했다. 또한 장내 세포의 세포막 수용체와 결합능력 반응조사도 순탄해 마침내 가축설사병 예방백신 벼 개발에 성공했다.
도농기원은 소 박사가 개발한 백신생산 형질전환 벼의 환경위해성 평가 및 품종등록을 하고 국제특허(출원번호: 10-2009-0125389. 2009.12.16)를 획득, 학술논문(SCI)에도 게재해 국제적으로도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 당시 형질전환 기술은 생각만 했을 뿐 실체가 없어 그의 특허기술은 거의 국내 최초라고 해도 무방하다.
소 박사는 “2012년까지 생명공학 분야 연구를 많이 했지만 농업 분야에서는 어려워 실용화 위주로 바꿨다”며 “백신 벼를 당분간 보류한 이유는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한 문제 등 여러 변수 탓이다. 이를 품종화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릴 적 꿈이 ‘쌀 나무’를 만드는 것이었다는 소 박사는 나무에서 쌀이 열리길 바란 착한 마음으로 가축과 농가를 살리는 ‘효자 벼’ 백신을 만든 셈이다.
갈색거저리(밀웜) 성체 모습. ⓒ 경기G뉴스
소호섭 박사는 잔디에 대한 연구도 곁들여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초중고의 학교 운동장이 2262개이며 그중 천연 잔디 구장이 40개로 1.8%밖에 안 된다는 수치까지 훤히 꿰뚫고 있을 정도이다. 그는 잔디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 버지니아공대, 일본 등 해외출장도 다녀왔다.
소 박사는 “잔디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이 잘못돼 있다. 잔디는 밟으면 산다고 어이없게 잘못 아는 이들도 많다”며 “물을 1주일에 한 번 정도 줘야 한다. 잡풀도 안 뽑고, 객토와 비료도 안 준다. 초기 관리만 잘하면 되는데 매뉴얼을 몰라 잔디를 망친다”고 귀띔했다.
소호섭 박사는 경희대 유전공학과 학·석사 출신으로 1993년 농촌진흥청 근무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2010년 서울시립대 환경원예과에서 ‘백신 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또 다른 꿈은 구제역과 AI 치료제 개발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고 싶지만 국제적인 허가 문제, 국가의 허락, 저항성 유전자 발견 등 난제가 많아 쉽지 않다고….
소 박사는 “구제역이 왜 걸리는지 그걸 찾아내고 그걸 죽일 수 있는 단백질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연구에 들어갈 수 있다”며 “아직 구제역 균주가 일정한지 그 메커니즘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또한 구제역의 전염성이 강해 언제 죽는지 그걸 실험하는 게 위험하다”고 전문용어까지 썼다.
한편, 그는 ‘봉사 박사’로도 통한다. 170여명의 도 농기원 직원들 중 소 박사로 인해 봉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다수라는 데 그 진실이 가늠된다. 지금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소외가정, 농촌, 고아원, 양로원 등지를 다니며 봉사활동을 한다.
소 박사는 “봉사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안다면 마음이 움직일 것”이라며 “유전공학을 이용한 신소재 개발을 할 때 연구 실적이 단기간에 나오지 않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때 친척들이 가족 봉사를 권유해 시작했는데 우울증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활동을 통한 정신 건강 외에도 가끔 바다낚시로 스트레스를 푼다. 대어를 낚아 지인과 이웃들에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또 다른 봉사를 하는 격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출퇴근하며, 중학교 3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를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 오늘도 활기찬 미래를 설계하며 정진하고 있다.
갈색거저리를 먹기 좋게 만든 갖가지 제형. ⓒ 경기G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