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인이여, 서로 포옹하라!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형제여! 별의 저편에는 사랑하는 아버지 주님께서 계신다.
백만인이여,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전 세계의 환희여!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신의 광채여!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중>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의 갈라쇼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운 몸짓과 연기 그리고 음악은 소치 동계올림픽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꼽히며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고 우리 가슴 속에도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당시 갈라쇼에 쓰인 곡은 바로 ‘이매진’이다. 이매진은 1971년 전설적인 브리티쉬 팝 그룹 비틀즈의 존 레논이 부른 노래다. 당시 베트남 전쟁으로 시름에 잠긴 전 세계를 위해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고 평화 그리고 인류애를 주제로 노래했다. 이 곡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명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 보다 먼저 세계 평화와 인류애를 주제로 만들어진 곡이 있다. 인류 최고의 노래라는 평가를 받으며 유럽 연합의 공식 상징가로도 사용되고 있다. 바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다.
경기도민의 문화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경기도문화의전당 전경. ⓒ 한현규 기자
유독 연말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울려 퍼진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환희와 인류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4악장에서 독일의 시인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합창이 나오는 까닭에 ‘합창’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작품은 작곡가 베토벤이 완성해낸 마지막 교향곡이자 오랜 세월에 걸쳐 작곡된 역작이기도 하다.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완성해낸 것은 53세이던 1824년 2월의 일이지만 이 교향곡은 이미 1812년경부터 구상되었고, 실러의 ‘환희에 붙여’의 송가에 곡을 붙이려 생각한 것은 그가 고향 본을 떠나 빈으로 가기 이전부터였으니 베토벤은 교향곡 9번을 30년 이상이나 구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교향곡 9번이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우선 인류애를 담고 있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4악장 합창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비록 갈라져 있더라도, 우리는 평화를 이룩한다’라는 노랫말로 세계평화와 인류가 함께 환희함을 전달한다. 또한 교향곡 9번을 작곡하던 당시 베토벤은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여서 그의 천재성을 대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당시에는 없던 합창 교향곡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냈다. 교향곡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통의 틀을 벗어나 있다.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를 도입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2,3악장의 템포를 바꿔 2악장을 빠른 스케르초로, 3악장을 느리고 가요적인 악장으로 설정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피날레 악장이 전통적인 음악 형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역시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그 어떤 악기보다도 인간의 목소리라고 여겼던 베토벤의 믿음이 교향곡 9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악장 중간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 옆에는 TV 화면을 통해 공연 실황이 중계되고 있었다. ⓒ 한현규 기자
27일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에서도 연말을 맞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연주가 있었다. 올해 1월부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은 성시연 예술단장과 100여 명의 단원은 환상적인 호흡을 통해 완성도 높은 연주를 연출했고, 소프라노 박현주,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테너 김충희, 바리톤 이승왕 등은 아름답고 웅장한 목소리의 솔리스트로서 연주를 빛냈다.
특히 도내 입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는 고양시립합창단과 의정부시립합창단이 대합창을 맡아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화룡정점이 되었다. 경기도민들은 웅장한 관현악 선율과 환상적인 하모니 안에서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인류애와 환희의 메시지로 한 해를 회상하게 만드는 웅장한 선율은 80분간 1500여 청중을 압도했다. 마지막 무대인 제4악장 ‘환희의 송가’가 끝나자 청중 대부분은 기립했다. 10여 분간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커튼콜이 네 차례나 반복되는 이색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재훈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은 이번 송년음악회에 대해 “올 한 해 경기도와 도문화의전당을 아껴주고 응원해주신 도민 여러분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며 “한 해의 아쉬움을 버리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공연이 끝나고 행복한대극장 로비가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 한현규 기자
2014년,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라 전체가 슬픔에 잠기기도 하고, 안타까움에 빠지기도 했다. 이러한 2014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 도문화의전당에서 울려 퍼진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우리가 함께 나아갈 수 있고 한 곳으로 집결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우리가 위기를 앞에 두고 좌절한다 할지라도 인류는 항상 늘 그랬듯이 답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2015년의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이 담고 있는 메시지처럼, 평화와 사랑, 배려가 넘치는 환희에 찬 한 해로 채워나갈 수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