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경기人]은 기억에 남을 사연의 주인공이거나 이색적인 경력을 가진 경기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기획시리즈입니다. 여섯 번째로, 구조업무 중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으나 이를 극복하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이도재 소방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경기재난안전본부 재난예방팀 이도재 소방장. ⓒ 경기G뉴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재난예방팀에서 근무하는 이도재(44) 소방장은 올해 17년 차 소방공무원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가 담당하는 업무는 초고층 건물(50층 이상) 재난관리법, 소방시설공사업법, 민원처리 등이다. 이 소방장은 사고 이후, 일선에서 뛴 경험을 바탕으로 예방부문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제2의 인생은 어떤 것일까. 이 소방장은 지난 2007년 부천시 소사동에서 구조활동 중 무면허 음주차량에 치여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전치 48개월이었다고 한다. 현직에 복귀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사고를 당한) 2007년 7월 15일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그동안 참 빠르고 활동적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구조현장에서 남을 구조하기 위해 체력이 그들보다 위에 있어야 했지요.”
이 소방장은 “(사고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오른쪽 다리도 잘 못 쓴다. 오래 걷지 못한다”며 절단한 왼쪽 다리의 의족과 사고 상처가 남은 오른쪽 다리를 내보였다.
지금도 사고 후유증 치료를 하고 있다. 그는 “우울증 약도 많이 먹었다. 지금은 전담의사가 있으니 가서 약도 먹곤 한다. 사고 난 뒤 1년 만에 다리 절단수술을 했다”며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상응하는 대가가 온다는 의사의 말에 잡았던 (희망의) 끈을 놓았다”고 덧붙였다.
이도재 소방장이 재난예방 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 ⓒ 경기G뉴스
3년 정도의 치료 기간을 끝낸 이 소방장은 근무지인 부천소방서로 복귀했다. 이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재난예방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직으로 돌아와 그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한다.
“많이 힘들었어요. 다리가 없는 내가 돌아갈 때가 있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남을 구조하고 육체·정신적으로 강해야 하니까요. 꿈속에서 많이 헤맸어요. 직원들이 돌아오지 말라는 꿈을 꾸곤 했지요.”
이 소방장에게 자신을 지탱하는 원동력을 물었다. 대답은 ‘가족’이었다. “자신이 무너지면 가족들이 무너지니까”라고 그는 담담히 말했다. 물론 동료들의 애정 어린 격려의 말도 이 소방장이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됐다.
그는 예방부문 업무를 맡으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후배들을 위해 소방예방 등의 내용을 담은 실무서도 저술하고, 국내외 소방박람회를 찾아다니며 소방법을 공부했다. 지난해에는 휴가를 내고 자비 400만 원을 들여 미국 소방박람회를 참관했다.
이어 일본 도쿄 ‘국제소방방재전’, 대구 ‘대한민국 국제소방안전박람회’도 찾아 소방법을 공부했다. 현재 경기대학교에서 소방방재 석사과정도 마무리 중이다.
그는 “현장활동 경험도 있고, 더욱이 장애인으로서 아픔까지 플러스가 돼 예방업무를 해왔다”며 “장애인에 대한 자력 피난, 재해 약자(어린이, 임산부, 노인)들의 부분까지 눈이 떠졌다. 세심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도재 소방장이 길영관 재난예방팀장(소방령·사진 가운데)을 비롯한 직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경기G뉴스
지난 2012년 10월부터 이 소방장은 매월 1~2회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경기도 공무원을 대상으로 120분짜리 강의도 하고 있다. 주제는 ‘아픔을 딛고 일어난 공무원’.
“소방관들은 출근하면서 내가 (재난구호 현장에서) 죽을 수도 있고 장애도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창의적 업무에 대한 고통도 있겠지만 행정이 우선돼야 업무가 진행되는 거잖아요. 행정 일선에서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공직생활을 하기 바란다고 이야기하죠.”
이 소방장은 “강의를 들으신 분들로부터 ‘자신이 평화롭게 살았고, 삶이 힘들거나 어렵지 않았구나’는 피드백을 받을 때가 제일 기쁘다”며 “신입 공무원들이 공직생활의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는 강의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구조대원과 화재진압대원을 했던 터라 현장보다 행정업무가 부족하다”며 “장애인이다 보니 쉬어야 할 때도 있는데 이런 저를 받아준 재난안전본부장님께 무척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저 자신 부족한 게 너무 많다.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여갈수록 한마디 한마디가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주변을 보면서 낮게 살아야겠다”는 이 소방장의 오늘은 그의 가슴만큼이나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