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정도로 코와 손을 빨갛게 만들었던 3월 초 꽃샘추위가 물러가면서 조금씩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좀 더 따스해진 봄 햇살과 이를 즐기며 느긋하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그리고 삶의 터전 곳곳이 봄 빛깔로 슬며시 물들며 봄 기운을 전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3월의 휴일, 화훼단지와 재래시장에서 만난 경기도의 봄 이야기.
매장 한 켠을 소담스럽게 장식한 수국이 눈길을 끈다. 매장 안에는 봄꽃을 비롯해 다른 계절에 볼 수 있는 꽃도 많다. ⓒ 김상근 기자
작은 꽃송이가 가득한 프리뮬러 말라코이데스. 꽃을 모아 꽃바구니에 담으면 운치 있게 즐길 수 있다. ⓒ 김상근 기자
고운 빛깔과 꽃향기로 찾아온 봄
화사한 봄기운을 만나기 위해 찾은 곳은 경기도에서 꽃의 도시로 유명한 고양시의 대표 꽃시장 ‘고양꽃도매시장’이다. 3호선 원당역 3번 출구에서 100m 정도 거리에 조성된 화훼단지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꽃을 비롯해 야생화, 허브, 다육식물, 묘목, 원예 재료를 판매하는 업체 약 50여 동이 모여 있다. 설 이후 봄꽃이 대거 출하되어 웬만한 봄 식물은 거의 다 만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큰 꽃잎에 여러 색을 품고 있는 팬지와 커다란 꽃송이에 특이한 향을 지닌 시클라멘이다. 겹겹의 꽃잎으로 풍성한 라넌큐러스나 달콤한 향기의 히아신스와 꽃송이가 왕관을 닮은 튤립도 봄철 인기 상품. 비닐하우스로 된 화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치 지역 봄꽃 축제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홍매화와 붉은 동백꽃이 계절의 매력을 전한다.
파주에 거주하는 김정형(67)·박열희(72) 부부는 봄에 거실에 놓을 작은 꽃 화분을 사러 나왔단다.
“아내가 좋아하는 야생화는 가격이 비싸서 이곳을 주로 찾고 있어요. 온 김에 밭에 심을 모종도 몇 개 사려고 해요.”
지인과 함께 방문한 이수진(48) 씨는 한 달에 한두 번씩 꽃을 구입하러 단지를 찾는다.
“몇천원으로 꽃이나 화분을 충분히 살 수 있어요. 집 안 분위기가 확 달라지니 부담이 없이 봄을 즐기기 좋아요.”
대지의 영양이 듬뿍 담긴 향긋한 봄나물. ⓒ 김상근 기자
비타민이 풍부한 딸기와 봄나물. ⓒ 김상근 기자
영양과 향으로 무장한 봄나물의 향연
‘안양중앙시장’ 안에도 봄은 시나브로 찾아와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냉이, 쑥, 취나물, 달래 등 향긋한 봄나물이 곳곳에서 손님을 반기고 있는 것. 커다란 비닐이나 대야에 수북이 담긴 봄나물, 그 옆에는 상인의 개성만점 손 글씨로 정성껏 쓴 이름표가 놓여 있다. 봄에 새로 캔 쑥인 ‘햇쑥’부터 향과 맛을 강조한 ‘맛있어요 취나물’, 효능을 강조한 ‘중풍예방 방풍나물’ 등 이름도 제각각.
시장 식구가 된 지 9개월 된 강영숙(47) 씨도 손님에게 제법 능숙하게 상품의 차이를 설명한다.
“이거는 하우스에서 재배한 일반 달래랑 달라요. ‘흙’달래거든요. 봄이 돼서 노천에서 자란 것을 캔 거라 향이나 맛이 훨씬 좋아요.”
제철을 맞은 봄나물은 그 어느 때보다 맛과 영양이 풍부한 상태. 시장에서 제일 북적이는 중앙 골목 한쪽에서 딸기 판매 노점을 하는 김광식(64) 씨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싱싱하고 맛있는 딸기 보고 가세요!”
상인의 말처럼 소쿠리에 한가득 담긴 딸기는 싱싱함 그 자체. 커다란 알맹이에 탱탱한 육질, 달콤한 향으로 무장한 제철 딸기에 입안 군침이 꿀꺽 넘어간다.
“식구들이 딸기를 정말 좋아해요. 작년 봄에는 비싸서 한 번도 못 사 먹었는데, 올해는 일주일에 3번은 먹는 거 같아요.”
5살, 2살 아이를 키우는 김주영(36) 씨는 비타민이 풍부한 딸기를 싸게 구입하는 덕분에 아이들 간식비 부담을 많이 덜었다고.
쫀득쫀득한 꿀호떡과 콩가루를 듬뿍 묻힌 구수한 인절미까지 시장 안에는 다양한 간식거리가 넘쳐난다. ⓒ 김상근 기자
시장 활성화로 상인 마음까지 따스하게 보듬어줄 봄 기대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 골목은 사람들로 빠르게 채워졌다. 다음 주 장거리를 미리 준비하러 나온 주부부터, 봄철 이사를 하며 필요한 살림살이를 고르는 부부, 시장 안에 있는 안양명물 순대곱창골목을 찾아 맛집 데이트에 나선 젊은이들까지 사람들로 북적이며 재래시장 특유의 활기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런 풍경과는 달리 상인들의 마음은 아직 겨울이었다. 설 대목 이후 사람들의 씀씀이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30년째 시장에서 나물을 판매하는 신맹순 씨는 요즘이 제일 힘든 시기라고 귀띔한다.
“원래 설 지나고 매출이 뚝 떨어져. 이사다, 신학기다 해서 돈 나갈 일이 많아 쓰지를 않으니까. 3월 말이나 돼야 좀 나아지지. 그런데 올해는 더 심해. 작년보다 30% 정도 매출이 줄었어.”
강영숙 씨는 온누리 상품권과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재래시장의 편리성이 많이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정책인데, 특히 카드를 쓰면 연말정산 받을 때 더 유리하다고 해요. 이런 좋은 제도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시장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어요.”
김광식 씨는 근처의 공영주차장이 확충되면 보다 이용객들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37년 전 이 시장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보다 정말 많이 좋아졌죠. 아케이드가 생기고, 안에 길도 정비돼서 날씨에 구애를 받지 않게 됐으니까. 또 근처 공영주차장에서 1시간 무료 주차도 가능하고요. 더 바란다면 시장 나올 때도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주차장이 더 확보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아직은 어두운 색상의 두터운 외투를 입고 시장을 찾는 사람들. 그 옷차림에 봄이 묻어날 때쯤이면 상인들의 얼굴에도 봄꽃같이 밝은 미소가 깃들기를 바라본다.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순대집 간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안양명물 순대곱창골목. ⓒ 김상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