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가꾸는 돈가스 나눔터’를 의미하는 마돈나는 마을에 대한 관(官)의 예산 지원이 영원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됐다. ⓒ 강현욱 기자
수원이 효의 도시로 불리게 된 것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 때문이다. 정조대왕은 해마다 수원을 찾아 현륭원에 참배하고 사도 세자에 대한 제향을 올리곤 했다. 이 때문에 정조는 수원에 대추, 밤, 배, 감을 최고의 품질로 재배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하여 대추 재배지로 선택된 곳이 오늘날의 조원동(棗園洞), 대추나무골이다. 과거의 조원동은 단독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이웃 간의 정이 넘치는 마을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 대단지 아파트가 하나 둘 들어서면서 아파트 주민과 동네 주민들 간 소통 단절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통 단절은 갈등과 도시의 슬럼화로 이어졌다. ‘조원동’이라는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거주하는 형태가 아파트냐 아니냐에 따라 생활의 질이 달라지는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2010년 지역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던 몇몇 주민들이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보자며 주민과 조원시장 상인들도 의기투합했다.
그 결과 2011년 ‘대추동이 문화마을 만들기 추진단’이 꾸려졌다. 추진단은 먼저 한 달에 한 번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에 전달하는 ‘사랑의 밑반찬 나누기’를 시작했다. 주민과 소통하며 마을을 변화시키는 작은 일들을 하나씩 벌인 것이다. 대추동이 문화마을 만들기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수원시 마을르네상스 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부터다. 추진단은 1차 마을 르네상스 사업으로 마을지도 그리기를 실시했다. 3개월 동안 학생과 주민들이 마을 곳곳을 누비며 지도를 그렸다. 마을 지도 그리기를 하면서 우리 마을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은 물론, 마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등도 도출해냈다. 이듬해에는 조원동 중심에 위치한 낡은 다람쥐공원을 새롭게 단장했고, 공원 옆 오래된 건물에는 주민들까지 참여해 마을을 상징하는 타일벽화를 만들었다. 공원이 달라지자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자연스레 다람쥐공원은 마을 주민들의 쉼터이자 소통의 공간이 됐고, 타일벽화는 조원동을 찾는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이 동네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침체되고 어두웠던 마을에 서서히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조원시장도 북적이며 활력이 넘쳤다. 시장 상인들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 시장상인회 교육장으로 쓰던 지하공간을 리모델링해 대추동이 작은도서관도 열었다. 작은도서관은 책 대여뿐만 아니라 영화 상영, 경제체험, 각종 교육을 진행하며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사업 3년 차에 접어든 2013년에는 추진단의 야심작 ‘마돈나’가 탄생했다. ‘마을을 가꾸는 돈가스 나눔터’를 의미하는 마돈나는 마을에 대한 관(官)의 예산 지원이 영원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 마련됐다. 탕수육과 돈가스, 커피와 대추차. 취급하는 메뉴는 단출하지만 맛을 보면 제법 내공이 느껴진다. 탕수육과 돈가스에 사용되는 돼지고기는 추진단 위원장이 운영하는 정육점에서 원가로 공급받고 있다. 조원동 사랑이 각별한 위원장이 골라주는 돼지고기의 품질은 두말하면 입 아플 터. 또한 돈가스소스에 각종 약재와 조원동을 상징하는 대추를 넣어 깊은 풍미와 자연스러운 단맛이 일품이다. 마돈나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마을환경 개선과 복지, 주민교육 등 마을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쓰인다. 실제로 마돈나를 통해 마을주민 6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또한 매주 수요일 마돈나에서는 재능기부문화 프로그램인 ‘누구나 학습마을’이 운영 된다. 말 그대로 누구나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이다. 수세미, 비누, 압화, 천연 스크럽, 비즈공예 등 다양한 문화나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마돈나 공방을 통해 판매되는 물품의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마을 만들기 추진 5년 차에 접어든 지금,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사업과 그 결과물이 탄생했다. 하지만 대추동이 문화마을 만들기 추진단은 만족을 모른다. 관(官)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생력을 길러 장기적인 마을 발전을 꾀했던 것처럼, 대추동이 문화마을 만들기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대추동이 문화마을 지도
대추동이 문화마을 지도 ⓒ G-LIFE 편집팀
다람쥐공원 ⓒ 강현욱 기자
다람쥐공원
조원시장 내에 위치한 다람쥐공원은 시장 안에 위치해있다고 하여 ‘시장공원’이라는 별명이 있다. 낡은 다람쥐공원을 새단장 했더니 자연스레 찾는 이가 늘어 마을 주민들의 쉼터이자 소통의 공간이 됐다.
조원공원 ⓒ 강현욱 기자
조원공원
조원시장과 장안구청 사이에 위치한 조원공원. 맹꽁이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공원을 감싸고 있는 축대 위에는 마을 주민들이 벽돌과 기와 등으로 완성한 이색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 속에는 수원화성이 있고 조원동이 있으며 마돈나도 있다.
마돈나돈가스 ⓒ 강현욱 기자
마돈나돈가스
마돈나돈가스는 조원시장의 명물이자 조원동의 자랑이다. 대추로 맛과 영양을 살린 돈가스 맛이 궁금해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 식당 내 마돈나 공방에서는 솜씨 좋은 주민들이 직접 만든 각종 물품도 판매한다.
대추동이 작은도서관 ⓒ 강현욱 기자
대추동이 작은도서관
조원시장 상인회 교육장으로 쓰던 지하공간을 리모델링해 대추동이 작은도서관으로 운영중이다. 책 대여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프로그램과 교육이 이뤄지는 마을의 사랑방이다.
영화지하보도 ⓒ 강현욱 기자
영화지하보도
영화초등학교 앞 영화지하보도는 어둡고 침침해 어른들도 다니길 꺼려하던 곳이었으나 어린이와 마을주민들의 참여로 멋진 갤러리가 됐다. 계단 너머 장소의 특징을 잘 표현한 계단 벽화도 이색적이다.
임미임: 10년 넘게 조원동에 살면서도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이웃들과 별 소통이 없었는데 마을 만들기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좋은 이웃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조금씩 우리 동네가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아요.
이미숙: 비누 만들기를 하는 과정에서 뜨거운 비눗물이 얼굴에 튀어 화상을 입기도 했지만 비누가 완성되고 그 수익금을 소외계층과 나눌 때의 보람을 잊을 수가 없어요.
권미순: 벽화 앞에 서면, 집은 엉망인데도 벽화 그리는 사람들 더위 먹을까 걱정돼 온 동네 냉장고 얼음 다 가져다 냉커피 탔던 일, 한 솥 가득 콩나물밥을 지어 물감 범벅 주민들과 나눠 먹던 일 등 벽화 작업을 하던 때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히 떠올라요.
미니인터뷰
대추동이 문화마을 만들기 추진단 정순옥 부위원장
대추동이 문화마을 만들기 추진단 정순옥 부위원장 ⓒ 강현욱 기자
정순옥 부위원장은 마돈나돈가스의 kt wiz 파크 입점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미팅과 출장으로 인터뷰가 어렵겠다는 그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마주할 수 있었다. 시간을 많이 빼앗지 않겠다며 잡은 약속이었지만 정 부위원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친절하게 마을에 대한 설명과 자랑을 늘어놓았다. “일단 우리 마을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신 분들인데 어떻게 대충 설명하고 보내드려요.” 대추동이 문화마을이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그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하루에 두세 번씩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해야 할 때도 있지만 전혀 지친 기색 없는 그이다. 정 부위원장은 “우리 마을을 주민들의 힘으로 아름답게, 살기 좋게 바꿔 보자는 취지에서 추진단이 만들어졌다. 많은 일이 있었고 현재도 많은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힘든 일도 많고 때론 뜻하지 않게 오해를 살 때도 있었지만 소통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부위원장에게 그가 생각하는 대추동이 문화마을의 이상향을 물었다.
“옛정을 회복해 이웃 간에 웃음이 넘치고 서로 왕래하는 따뜻한 마을이요. 이건 모든 주민들의 공통된 바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