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정신건강음악축제가 열린 경기도문화의전당 전경. ⓒ 김대호 기자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1968년부터 매년 4월 4일을 ‘정신건강의 날’로 지정, 정신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으로 인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고 정신병 또한 치료가 필요한 질병 중 하나임을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왜 하필 4월 4일일까? 일반적으로 숫자 4는 죽을 사(死)와 독음이 같아 금기시되어 왔다. 하지만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 또한 단순한 편견이며,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선입견을 깨야 한다’는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숫자 4를 두 번 사용한 것이다.
정신건강의 날을 사흘 앞둔 4월 1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함께 사는 세상, 따뜻하게 도우며 살자’라는 슬로건으로 제9회 정신건강음악축제가 열렸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도내 31개 시군 정신건강증진센터, 경기사회복귀시설협회가 공동주관한 이날 행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공모를 통해 슬로건을 선정했다.
정신병 치료의 첫 걸음은 자기 자신의 모습과 처지를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 어려운 걸음을 내디딘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소통과 화합의 장인 이날 행사에는 도내 정신장애인 당사자, 가족, 실무자 등 1500여 명이 함께했다.
행사 1부에서는 △벤츠탄풍경(고운누리) △배터으리8090(안산시정신건강증진센터) △골드보이 실버걸(김포시정신건강증진센터) △피닉스(하남시정신건강증진센터) △한마음합창단(용인시정신건강증진센터) 등 5팀이 무대에 올라 ‘나가수’ 출연 가수 못지않은 실력과 무대 매너로 좌중을 압도하는 한편 노래와 춤 속에 지난 역경들을 담아내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안산시정신건강증진센터의 ‘배터으리8090’팀의 무대. ⓒ 김대호 기자
특히 안산에서 온 배터으리8090팀은 우리가 함께 느끼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며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뮤지컬 ‘Rent’의 수록곡 ‘Season of Love’라는 곡으로 ‘하루하루를 1년같이 열심히 살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배터으리8090팀의 한 참가자는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 곧 1년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아픔을 잘 견뎌준 동생과 동생 친구들에게 고맙고 앞으로도 서로 힘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신장애인의 가족 자격으로 무대에 선 또 다른 참가자는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합창을 하며 다른 아픔과 동시에 희망을 가진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고 큰 힘이 됐다”고 밝힌 뒤 “이 같은 희망을 나누고 싶어 무대에 섰다”고 전했다.
2부에서는 △‘정신장애인의 삶’ 동영상 상영 △경기도지사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플래시몹 △G-mind 정신장애인 10대 권리장전 선포가 이어졌다.
남 지사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가 진행 중이다. ⓒ 김대호 기자
특히 ‘경기도지사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는 도지사와 실무자, 전문가, 정신장애인 대표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정신장애인의 회복과 정책에 관해 현실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정신장애인 대표 이성은 씨는 “나는 그들(정신장애인)을 ‘마음의 감기’에 걸린 사람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사고능력이 떨어지며 마치 불치병 환자처럼 불편하게 대한다. 경기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재활프로그램을 통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감기는 충분히 나을 수 있다고 본다. 보다 적극적인 직업재활프로그램이 병행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남 지사는 “예산을 책정할 때, 관심 있게 눈여겨 볼 것”이라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경기사회복귀시설협회 가족회장을 맡고 있는 이항규 씨는 “지난해 정신보건 관련 예산이 삭감됐다. 담당 공무원이 우리 모임에 나와 현장을 본 적도 없다. 실제 현장을 봤다면 결코 예산을 삭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정신보건 전문가 서동우 씨는 “정신보건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신보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12만명에 달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1명의 사례관리자가 정신장애인 50~60명을 관리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남 지사는 “경기도 차원의 지속적 지원과 관심을 약속한다”며 “경기도는 앞으로도 서로의 이해 차이 즉, 여야를 막론하고 서로간의 협업을 통해 추후 예산 편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 정책, 일자리 추가확보를 위해 관련 지자체 간 다양하고 긴밀한 협의에도 힘쓰겠다”고 덧붙이며 정신장애인들의 소통과 사회 진출 지원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을 약속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감기를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한 지원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정신장애인의 부모는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을 꼽았다. 정신장애인이나 그 가족들은 지원과 관리에 앞서 정신장애인을 일반인과 같이 대하고 바라봐주는 인식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가벼운 감기 환자를 냉소적인 사회 분위기가 독감으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