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인명피해를 줄이고 신속하게 현장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훈련을 위해 일부러 재난상황을 연출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경기도재난안전본부는 실제상황을 방불케 하는 가상현실 속에서 인명을 구조하고 화재를 진압하는 최첨단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활용해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3D 시뮬레이션 재난훈련 시스템 ⓒ 신승희 기자
"저 멀리 사람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소방관은 쓰러진 사람을 들쳐 업고 구급차가 있는 바깥으로 향한다. 성인 한 명의 무게가 고스란히 더해진 탓인지 소방관의 발걸음이 종전과 달리 묵직해졌다. 그러나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소방관은 힘겨운 달리기를 이어간다."
3D 시뮬레이션 재난훈련 시스템 ⓒ 신승희 기자
“허억~ 허억~” 산소마스크 너머로 고통과 힘겨움이 느껴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소방관이 건물 유리창을 부수고 화재 현장으로 들어선다. 불길이 빠르게 번지고 있는 가운데 현장 상황을 스캔한 소방관은 발걸음을 재촉해 인명구조에 나섰다.
저 멀리 사람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소방관은 쓰러진 사람을 들쳐 업고 구급차가 있는 바깥으로 향한다. 성인 한 명의 무게가 고스란히 더해진 탓인지 소방관의 발걸음이 종전과 달리 묵직해졌다. 그러나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소방관은 힘겨운 달리기를 이어간다. 그렇게 무사히 인명구조를 마쳤지만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화재 현장으로 들어선 소방관은 옥내소화전을 찾아 관창으로 화재 진압을 시작한다. 불길이 잡힌 후에야 비로소 임무가 완료됐다.
다양한 화재 상황 연출을 통한 반복 훈련
실제 상황처럼 긴박감이 넘치는 현장 분위기지만 사실 이곳은 실제 화재현장이 아니다. 화재 상황을 가정한 모니터 속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건물을 그대로 구현해 낸 디테일과 소방장비, 구조 과정 등의 세밀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놀라는 기자에게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안전교육훈련담당관 안전문화팀 권오덕 소방위가 “이건 맛보기에 불과하다”며 “더 굉장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방금 시연해 보인 것은 일반인들이 소방관의 업무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교적 간단하게 구성한 체험판이고 실제 소방관들이 화재진압 훈련에 사용하는 본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
잠시 후 모니터에 ‘Go Fire’(고파이어)라는 타이틀이 떠올랐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Go Fire’라는 이름은 늘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소방관의 숙명적인 삶을 의미하는 동시에 불 속 훈련을 상징한다. 또 한글 ‘고파’와 발음이 비슷해 재난훈련은 언제나 해도 해도 고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잠시 후 모니터에 ‘Go Fire’(고파이어)라는 타이틀이 떠올랐다. ⓒ 신승희 기자
"잠시 후 모니터에 ‘Go Fire’(고파이어)라는 타이틀이 떠올랐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Go Fire’라는 이름은 늘 불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소방관의 숙명적인 삶을 의미하는 동시에 불 속 훈련을 상징한다. 또 한글 ‘고파’와 발음이 비슷해 재난훈련은 언제나 해도 해도 고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미도 좋고 재미까지 있어 기억하기 쉬울 것 같았다. 재난훈련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과정은 롤플레잉(Role Playing) 게임을 연상케 했다. 자신의 캐릭터에 이름을 지어주고 머리 스타일, 얼굴 형태, 헬멧과 방화복, 장갑과 신발과 같은 아이템을 취향에 맞춰 고를 수 있었다.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튜토리얼(Tutorial)을 통해 앉기, 산소마스크 탈착, 랜턴 켜기, 무전기 사용법을 익히는 코너도 제공됐다. 캐릭터 세팅부터 튜토리얼까지 마스터하자 또 하나의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출동할 화재 현장의 위치와 화재 규모, 인명 피해 규모는 물론 화재발생 시간대, 풍향과 풍속, 습도, 기온 등 아주 상세한 부분까지 직접 설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권 소방위는 “화재가 언제, 어느 때, 어떤 규모로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설정 범위를 넓혔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세밀한 부분까지 설정할 수 있는 재난훈련 시뮬레이션으로 한 현장에 2백 명까지 투입돼 훈련을 받을 수 있으며 동시접속은 1천 명까지 가능하다.
HMD, 헤드셋 등 최첨단 장비로 더욱 실감나게
영화관, 찜질방, 공장, 전통시장, 주유소, 터널, 종합병원 등 다양한 현장 가운데 전통시장 화재상황을 설정하고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의정부 제일시장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현장은 시장 간판, 노점 등 작은 디테일까지도 그대로였다.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 탑재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본 화면은 시선이 향하는 대로 현장이 바뀌어 생동감을 배가시켰다.
화재 발생 출동 명령이 떨어지고 미리 준비한 출동차량에 탑승하는 과정부터 훈련이 시작됐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은 사고발생 현황판에 사고현황을 기재하고 현장안전관리 상황판에 본인이 투입될 장소를 알리는 인식표를 부착했다. 또 무전기를 통해 지휘대장에게 현장 진입을 보고하는 등 가상훈련이라고 대충하거나 소홀한 법 없이 실제 현장과 동일하게 모든 과정이 이뤄졌다. 권 소방위는 “착용한 헤드셋 마이크를 통해 음성명령까지 인식한다”고 부연했다.
HMD, 헤드셋 등 최첨단 장비로 더욱 실감나게 ⓒ 신승희 기자
불길이 외부에서 눈에 띄지 않는 이상 소방관이 직접 현장 이곳저곳을 발로 뛰며 화재 현장을 발견해야 하는 것은 가상현실이나 실제나 마찬가지. 여기저기 둘러 본 끝에 화재현장을 발견했다. 곧바로 헤드셋 마이크를 통해 화재현장 발견 사실과 지점을 알린 뒤 가까운 소화전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소화전이 있어 관창으로 물을 뿌리며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 기자에게 시연을 해보이기 위한 것일 뿐인데도 권 소방위의 표정에서는 비장함과 사명감이 묻어났다.
창조비타민 프로젝트로 선정돼 다양한 콘텐츠 개발
“지금은 혼자 화재 진압에 나섰지만 실제 경기도소방학교에서는 교육생들이 팀을 이뤄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며 팀워크를 기른답니다.” 진행된 훈련을 녹화해 다시보기를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고, 훈련이 종료된 뒤에는 훈련에 대한 평가도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의 3D 시뮬레이션 재난훈련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장소에 모이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만 있으면 온라인 접속을 통해 훈련이 가능하다. 한편 최근에는 이를 바탕으로 한 ‘재난 시뮬레이션 응용 모의훈련장 운영사업’이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조비타민 프로젝트’ 1차 과제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도재난안전본부는 여러 유형의 재난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이를 체험할 수 있는 가상현실 헤드셋을 보급해 도민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