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의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경기도 안산시에 희망의 몸짓이 피어났다. 큰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바로 그것. 5월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됐던 뜨거운 열기의 현장 속을 직접 찾아갔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무대는 이름 그대로 ‘거리’였다. 각 구역별로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다양한 관람객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특히 지난 1일은 뜨거운 초여름의 날씨를 보였지만 더위 따위가 관람객들의 열정을 막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축제가 진행되는 거리 구간이 길었던 만큼 축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편한 운동화가 필수였다.
액션 페인팅을 즐기는 관람객들. ⓒ 오명연 기자
축제장에 들어서면서 눈길을 끌었던 곳은 ‘누구나 경계를 넘어 하나 되는 액션’이라는 주제로 액션페인팅이 열렸던 A site였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거대한 액션페인팅 작품에 한 획을 긋고 있었다. 특히 어린이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보였다. 이날만큼은 엄마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물감으로 신나게 낙서를 하며 놀았고 엄마 역시 눈감아주었다.
소망이 담긴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학생들. ⓒ 오명연 기자
관람객들이 물감으로 예술혼을 불태우는(?) 바로 뒤편, ‘Art up action’이라는 벽에는 각자의 소망이 담긴 스티커를 붙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소원은 사랑하는 이의 건강이었다. 관람객들의 다양한 소망이 작품에 고스란히 남겨졌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분수대가 있었다. 더위를 잊기에 충분한 시원함에 관람객들은 분수대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거리 퍼레이드 형식의 <황금영혼> 공연. ⓒ 오명연 기자
어디선가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큰 물체가 거리를 걷고 있었다. <황금영혼>이라는 퍼레이드였다. 이 작품은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찾기 위해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을 담은 퍼레이드 공연으로, 전쟁에서 죽은 영혼을 거두는 황금영혼과의 만남을 통해 역설적 현실에 대한 깨달음을 그리고 있다.
<황금영혼>은 관람객들 사이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관람객들과 하나가 되었다. 거리에 선 관람객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 이 퍼레이드를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았다. 관람객들의 셔터소리에 맞추어 퍼레이드는 한걸음씩 이동했다.
메가폰을 통해 전달되는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엄마. ⓒ 오명연 기자
다음으로 향한 곳은 <메가폰 프로젝트>였다. 25개의 빨간 메가폰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관람객들은 어린 시절, 종이컵에 실을 연결해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놀던 종이컵 전화기를 떠올리며 메가폰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자신보다 훨씬 큰 몸집의 메가폰을 향해 옹알이를 하는 아기와 반대편에서 그 이야기에 집중하는 엄마의 모습이 참 다정해보였다. 아이는 메가폰을 향해 무슨 말을 던졌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러시아 전통 민요 공연. ⓒ 오명연 기자
다정한 모녀의 모습에 눈길을 떼지 못하던 그때, 이국적인 가락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러시아에서 온 극단의 연주였다. 전통춤까지 곁들인 공연에 지나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지켜보았다. 공연이 한창인 무대 너머엔 차들이 씽씽 달리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에 열중하는 러시아 극단의 모습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제릴다와 거인> 공연에 집중하고 있는 관람객들. ⓒ 오명연 기자
아이들은 물론 관람객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릴다와 거인>의 공연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거인이 요리천재 소녀를 만나 변화하는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다양한 크기의 종이컵이 인형으로 변신해 작은 테이블 위에서 커다란 상상의 세계를 선보였다. 공연자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생동감 있는 연출은 관람객들을 사로잡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만들었다.
<움직이는 도시> 작품을 옮기고 있는 관람객들. ⓒ 오명연 기자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니 박스로 된 큰 조형물이 관람객 사이를 비집고 이동 중이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습에 자연스레 관람객들의 발길이 향했다. 거대한 조형물의 정체는 <움직이는 도시>로, 종이상자를 이용해 특별한 장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사람들의 힘만으로 완성됐다. 축제 기간 동안 건축되고 축제가 끝나면 실종(?)되는 것이 특징으로, 공동창조를 통해 즐거운 순간을 공유하고 일상공간을 재발견하는 집단 퍼포먼스이다. <움직이는 도시>는 사람들의 힘으로 옮겨진 장소에서 다시 형태를 재정비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이동 준비를 마친 조형물은 조금 전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형태로 변신해 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구름관중을 이끈 <퍼니키토 쇼>는 마술사인 단 마르케스(Dan Marques)가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코미디 마술 쇼였다. 관람객들은 넋을 놓고 바라봤다. 관람객이 직접 쇼에 참여하기도 했다. 안대로 눈을 가린 관람객은 옆에서 채찍질 소리가 나니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전거 식당>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관람객. ⓒ 오명연 기자
축제장에서는 자전거에 식당을 연결한 이색적인 조합도 볼 수 있었다. <자전거 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독특한 모양새에 관람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작가를 응시했다. <자전거 식당>에서는 작가가 자전거로 여행하며 경험했던 4개국, 13개 도시의 소박한 요리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작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생생한 이야기들은 비록 가보지 못했지만 직접 다녀온 것처럼 느끼기에 충분했다.
예측 불가능한 <쿠쿠리쿠> 공연. ⓒ 오명연 기자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쿠쿠리쿠>가 열리는 A street였다. 펠트 꼭두각시 인형을 통해 마술을 선보이는 쇼였다. 기존 마술쇼에 등장하는 미녀 대신 닭 인형이나 관객들의 도움으로 쇼가 진행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에 관람객들은 폭소를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이번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총 3일에 걸쳐 진행됐다. 도심의 거리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만남은 매력적이었다. 시간대별로, 그리고 장소별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과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축제는 누군가의 작품을 그저 감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직접 참여해 함께 만들어나가며 그 의미를 배가 시킨다는 점이 더욱 특별했다. 특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으로, 가족 단위는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또한 슬픔에 잠긴 도시의 이미지에서 이제는 서서히 희망을 찾아가는 안산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안산시민을 비롯한 관람객들에게 휴식을 넘어 다양한 만남을 통한 새로운 활력소와 희망을 선사했던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초여름 더위보다 더 뜨거웠던 축제장의 열기는 내년 안산국제거리극축제를 키울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