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천 년의 역사가 한 눈에. 경기보물전 ⓒ 달콤한나의도시 경기도(블로그)
국보 1점에 보물 20점, 그리고 이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유물까지 총 80여점이 방 하나에 모여 있습니다. 마치 열려라 참깨! 하고 들어와 눈이 휘둥그래진 알리바바가 된 기분이에요. 대체 모두 다 값으로 매기면 얼마나 될까요.
지금, 어마어마한 보물전이 경기도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열린 특별전시 ‘경기보물’전은 지자체가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스무 곳이 넘는 기관에서 진귀한 보물들을 섭외하는 것 만해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시도하기 쉽지 않을 이번 전시, 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요.
경기도 천 년의 역사가 한 눈에. 경기보물전 ⓒ 달콤한나의도시 경기도(블로그)
■ 현대 첨단기술로도 복원못하는 ‘조선시대의 반도체’
전시실 한 가운데에 유리관으로 둘러싸인 이 도자기 앞에 서면 마치 추리물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요. 세기의 괴도가 보낸 예고장을 받고서 보물을 사수하려는 명탐정이 된 기분이죠. 굉장히 값나가는 보물일 거 같은데, 혹시 이것이 1점 나왔다는 국보?!
경기도 천 년의 역사가 한 눈에. 경기보물전 ⓒ 달콤한나의도시 경기도(블로그)
아, 보물이네요. 대한민국 보물 제659호 ‘매화,대나무,새를 그린 백자 청화 병’입니다. 안내를 도와주시는 학예사 분께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국보보다는 값어치가 떨어지겠네요.”
그러자 예상을 뛰어넘는 답변이 들려옵니다.
“글쎄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사기 힘들걸요? 시가로 치면 50억을 당장 지불한대도 손에 넣지 못해요.”
50억! 흔히 ‘국보보다 못한 보물’이라 다소 가벼이 보던 사람이라면 입이 떡 벌어질 가치입니다. 물론 실제 가치는 그 이상입니다. 돈 주고 살 수 없기에 보물이죠.
“근데 어떤 부분에서 50억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거예요?”
경기도 천 년의 역사가 한 눈에. 경기보물전 ⓒ 달콤한나의도시 경기도(블로그)
조선시대 15~16세기에 만들어진 이 청화백자는 그림으로 치자면 캔버스에 황금을 녹여 그린 것과 진배없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저 파란 안료는 금보다도 비쌌다고 합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경기도 천 년의 역사가 한 눈에. 경기보물전 ⓒ 달콤한나의도시 경기도(블로그)
이 청화항아리는 국보도 보물도 아니지만, 이래 보여도 왕실에 놓였던 명품 백자입니다. 언제 보물로 승격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섬세한 그림을 평면도 아닌 자기에 새겨 넣는 기술력은 지금에 와선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말하자면 조선시대의 반도체 기술이라 할까요. 당시 자기란 인간이 손수 빚어내는 최첨단기술이었습니다. 지금은 과학이 그렇게나 발달했음에도 재현이 불가능하죠. 즉, 이제는 다시 못 만든다는 겁니다.”
경기도 천 년의 역사가 한 눈에. 경기보물전 ⓒ 달콤한나의도시 경기도(블로그)
이번엔 여기 있는 보물 중에서도 최고봉인 ‘국보’를 볼까요. 제 256호 ‘초조대장경 화엄경 권제1’입니다.
이쯤에서 물어봤습니다. 이런 진귀한 보물들을 모으게 된 배경을요.
경기도 천 년의 역사가 한 눈에. 경기보물전 ⓒ 달콤한나의도시 경기도(블로그)
■ 경기도의 화려한 천년을 위하여
“오는 2018년이 되면 ‘경기’의 역사가 천년이 됩니다. 본래 경기란 뜻은 도읍지를 감싸고 보호하는 지역을 뜻하는 말로 처음엔 고려의 도읍인 개경 주위를 일컬었고, 조선시대 들어 비로소 지금의 경기도를 뜻하게 되었죠. 이번 전시는 앞으로의 경기 천년을 준비하면서 지나간 천년의 눈부신 족적을 살피는 자리입니다.”
경기도 천 년의 역사가 한 눈에. 경기보물전 ⓒ 달콤한나의도시 경기도(블로그)
그래서 여기 모인 보물들은 한 결 같이 경기 내지 경기도와 관련이 있답니다. ‘경기도 불교문화와 왕실사찰’ ‘경기도의 서화’ ‘고려자기의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왕실백자의 고향 경기’ 등 5부로 구성한 것 또한 모두 경기의 귀중한 자산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죠. 따라서 이 곳을 한번 돌게 되면 경기도가 고려청자의 산지이자 최대 소비지였고 조선백자의 성지였으며 왕실의 보물와 불교 문화재의 보고였고 서화의 신천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천 년의 역사가 한 눈에. 경기보물전 ⓒ 달콤한나의도시 경기도(블로그)
조금 더 흥미로운 보물들을 살펴보죠. 보물이란 단순히 금붙이라던가 모양새가 화려해서가 아니라 내면에 담겨진 스토리 하나하나가 귀한 것임을 느끼게 합니다.
한석봉의 글씨첩이 나와 관심을 끕니다. 보물 제 1078-3호인 이는 글자가 살아 꿈틀댄다던 전설의 석봉체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경기도 천 년의 역사가 한 눈에. 경기보물전 ⓒ 달콤한나의도시 경기도(블로그)
경기 지역에서 활동한 단원 김홍도의 글과 그림이 있습니다. ‘풍류를 즐기는 선비’ 등 서너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황량한 겨울경치’ 등 작품 몇 점도 함께 선보이고 있는데 경기 지역에 이렇게 조선 시대 서화의 거장들이 많은 줄 처음 알았네요.
정조 대왕의 파초 그림도 나왔습니다. 보물 제743호인 그림은 동국대학교박물관에 보관 중이다가 이 곳에 왔는데 정조가 문인화에도 일가견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 작품은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손꼽힙니다.
그리고,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중요 자산인 수월관음도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물 1426호로 지정되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보관 중이던 이 작품은 14세기의 것으로 고려시대 화려한 불교문화를 엿 볼 수 있습니다 7세기 전 것임에도 보존상태가 양호합니다. ‘화엄경’에서 관음보살을 찾아간 선재동자가 보살도와 보살행을 구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 파란 하늘빛 담아낸 고려 청자, 물 속에 수백년간 잠들다 다시 오늘날 등장
고려 시대의 청자는 중국에서도 탐내던 것이었죠. 고려청자는 경기도에서 만들어져 개경 상점에서 유통되던 것이 정석이었습니다. 쪽빛처럼 파란 하늘색을 자기에 담으려 했던 걸까요, 세월이 지나던 은은하게 아름다운 색을 빛냅니다. 사실 이 보물 제1784호 ‘연꽃을 음각한 청자매병’은 보존상태가 너무도 좋아서 놀랄 정도입니다. 사연이 있었습니다.
“근래 들어와 충남 태안군 옥도면 마도 해저에서 수중 발굴했어요. 대나무로 만든 화물표와 함께요. 내용을 보니 개경 쪽에 살던 하급무관에게 보내는 것이었는데, 배에 실어 나르던 도중 침몰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화물표에는 이를 ‘꿀단지’라고 하는데요, 지금은 단순한 단지가 아니라 예술성 뛰어난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이 밖에도 전시실 바깥엔 정도전 등 명인들의 시를 담아낸 병풍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이번 경기보물전은 6월21일까지 진행되며, 일부 작품은 그 전에 먼저 되돌아갈 수 있으므로 모든 전시물을 보고 싶으시다면 좀 더 서두르시길 권합니다. 수월관음도나 연꽃을 음각한 청자매병 등은 5월 20일까지만 전시됩니다.
주의사항이 있답니다. 전시실은 다소 어두운데 이유가 있습니다. 빛도 유물을 손상시키거든요. 때문에 카메라 플래시는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점당 수십억씩으로도 값을 매길수 없는 나라의 보물이므로 조심스럽게 관람하시길 권합니다. 천년의 경기, 소중한 만큼 조심스럽게 만나주세요.
[출처/달콤한 나의 도시, 경기도]
[글. 사진: 권근택 기자]
[편 집: 박해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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