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 어르신들의 생활안정 돌봄 ⓒ 강현욱 기자
총 인구 중 65세 이상이 7% 이상을 차지하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일 경우 고령사회, 20% 이상일 땐 초고령사회라고 부른다. 2010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은 약 5백45만 명으로 11%를 차지해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노인복지 또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엄마~ 뭐해? 아이고~ 우리 엄마, 주무시네.”
“으응? 우리 창희 왔구나. 왜 그러고 서 있어? 어서 들어와~”
달콤한 낮잠에 빠져있던 유영분(94) 할머니가 금세 자리에서 일어나 꿀잠 훼방꾼(?) 김창희(60) 씨를 반긴다.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한 봄날 오후, 두 모녀의 다정한 대화가 조잘조잘 이어지고 ‘꺄르르’ 거리며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기도 한다.
살가운 딸과 이를 품어주는 인자한 어머니, 영락없는 친모녀 사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두 사람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다. 굳이 인연을 따지자면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한 마을의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사는 이웃사촌일 뿐.
김창희 씨와 유영분 할머니의 인연은 지난해 5월, 유 할머니가 김 씨의 골목 너머 이웃집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집 대문을 나서서 다섯 발자국만 걸으면 닿을 거리에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이사를 오셨어요. 청주에 계신 친정엄마 생각도 나고 해서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죠.”
홀몸 어르신들의 생활안정 돌봄 ⓒ 강현욱 기자
이웃사촌에서 돌봄 대상 어르신으로 더욱 살뜰히 보살펴
화통한 성격의 유 할머니는 그런 김 씨를 반갑게 맞이했고 둘은 절친한 이웃사촌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김 씨는 자신이 부회장으로 몸담고 있는 생활개선시흥시연합회에서 어르신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농촌이나 오지, 취약지역에 거주하는 고령 또는 홀몸 어르신들에게 가사, 안전, 정서, 활력 지원 등을 제공하는 ‘농촌 취약노인 생활안정 돌봄사업’이었다.
김 씨는 생활개선회 측에 고령인데다 홀로 생활하는 유 할머니의 사정을 전달했고, 유 할머니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됐다. 유 할머니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봉사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김 씨로 낙점됐다. 평범한 이웃사촌에서 돌봄 대상 노인과 돌봄 제공자로 서로의 역할이 달라졌지만 두 사람의 생활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제가 엄마한테 해드리는 거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제가 텃밭에서 직접 농사 지은 채소들 수확하면 나눠드리고,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부침개 지져먹고, 별다른 약속 없을 땐 같이 밥 해먹으면서 사는 이야기 나누고…. 아, 가끔은 10원짜리 고스톱이나 윷놀이도 해요. 치매 예방에 좋잖아요. 엄마가 나이에 비해 정정하시고 깔끔한 성격이라 청소라도 해드리려고 하면 손사래 치신다니까요. 못 미더우신가 봐요.(웃음)”
한 달에 몇 번 돌봄 활동을 실시하느냐는 질문도 김 씨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외출하면서 잠깐 들러 ‘엄마, 나 다녀올게’ 하고 얼굴 도장 찍고, 집에 들어올 때도 ‘엄마, 뭐하고 노셨어?’ 하면서 잠깐 얼굴 보고, 거의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가요. 부모에게 가장 큰 효도는 자주 찾아뵙는 거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 정도면 제대로 효도하고 있는 거 아녜요?”
김 씨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듯 ‘엄마는 내가 가장 보고 싶을 때가 언제야?’라고 묻는 김 씨의 질문에 유 할머니가 덤덤한 말투로 답한다.
"보고 싶을 새가 있긴 하나? 하루에도 몇 번 씩 들락거리는데."
"제가 엄마한테 해드리는 거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텃밭에서 직접 농사 지은 채소들 수확하면 나눠드리고,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부침개 지져먹고, 약속 없을 땐 같이 밥 해먹으면서 사는 이야기 나누고…. 아, 가끔은 10원짜리 고스톱이나 윷놀이도 해요."
“딸처럼 맨날 찾아와 외롭지 않아” ⓒ 강현욱 기자
1주민 1어르신 챙기기로 건강한 사회 만들기 소망
매일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살뜰히 보살폈지만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올해 초에 있었던 일이에요. 자고 있는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와 함께 ‘창희야! 창희야! 나 좀 살려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절규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눈이 번쩍 떠졌죠. 새벽 3시쯤 됐더라고요. 무슨 일이지? 집에 도둑이 들었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겁이 나서 남편을 앞세워 엄마 집으로 갔어요. 그런데 문이 잠겨있는 거예요. 얼른 비상키를 찾아 문을 열어보니 집안이 난장판이었어요. 온갖 살림살이들이 내팽개쳐져 있고 엄마는 무릎을 다친 상태였어요. 알고 보니 잠이 오지 않던 엄마가 수면제를 좀 많이 드셨는데 환각증세를 일으킨 거더라고요.”
“맞아, 맞아. 그때 여기 대문이 다 부서져있고 옆집 벽이 이만치 와 있는 것처럼 보였어. 막 울렁울렁 하더라니까.”
김 씨의 설명에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듯 유 할머니도 말을 보탠다.
그날 김 씨는 유 할머니가 진정을 되찾고 잠이 들 때까지 밤을 꼴딱 새며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다음날 유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았다. 다친 무릎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다는 의사 말에 김 씨는 겨우 놀란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고 했다.
‘농촌 취약노인 생활안정 돌봄사업’을 통해 돌봐야 할 어르신은 유 할머니뿐이지만 김 씨는 인근에 거주하는 다른 어르신들도 종종 찾아뵈며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요즘 홀몸 어르신들이 많잖아요. 이웃에서 챙기지 않으면 그 분들께 무슨 사고가 생겨도 아무도 모를 거예요. 주민 한 사람이 마을 어르신 한 분만 책임지고 안부를 챙겨도 우리 사회가 훨씬 살기 좋고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홀몸 어르신들의 생활안정 돌봄 ⓒ 강현욱 기자
경기도농업기술원 농촌자원과 031-229-5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