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2월, 한강의 밤섬은 폭파됐고 거기서 나온 돌과 흙은 여의도 개발에 사용되었다. 아름답던 밤섬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개발’, ‘이익’, ‘돈’… 과연 이런 단어들이 환경의 소중함, 그리고 건강한 생태계가 주는 이로움을 대신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흉물스럽게 변한 밤섬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잊혀져 갔다.
1968년 밤섬폭파 장면 ⓒ 출처/영등포구 포토소셜 역사관
다행히 서울시가 1999년 환경보전지역으로 정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면서 밤섬은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한강의 물결에 쓸려 온 모래가 쌓이고, 풀씨가 날아와 푸른 숲을 일구며 밤섬은 마침내 140종의 식물종과 50종의 조류가 살고 있는 생명력 넘치는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더불어, 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와 쉬었다 간다. 이러한 ‘도심 속 철새 서식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밤섬은 2012년 7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카약을 타고 가면서 찍은 밤섬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지난 4월 25일, 꿈기자는 환경재단과 함께하는 <코카콜라 어린이 그린리더십 1차 과정>에 참가했다. 2011년부터 진행해 온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곳곳의 습지 탐사를 통해 생태계의 중요성과 물의 소중함을 배우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이다.
1년에 총 네 차례의 탐사가 진행되는데, 밤섬탐사는 그중 1차 과정으로 40명의 어린이들이 탐사단으로 선발됐다. 2차 두웅 습지, 3차 송도 갯벌, 4차 보성 벌교갯벌 과정까지 총 160명의 그린리더 중 최우수 리더로 뽑힌 8명에게는 해외습지를 탐방하는 기회도 주어진다.
밤섬탐사를 위한 사전교육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사전 교육을 마친 탐사대는 먼저, 습지에 사는 다양한 생물을 알아보기 위해 난지생태습지원으로 향했다. 습지원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을 직접 채집하고, 관찰하면서 먹이사슬을 그림으로 그려 보기도 했다. 각 조별 친구들과 함께 협동심을 발휘해 ‘맹꽁이를 살려라’ 게임을 하면서 도시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생태계의 신비로움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난지생태습지원에서 생물을 채집하는 탐사대원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난지생태습지원에서의 생물 관찰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난지생태습지원에서의 활동이 끝나고, 우리 탐사대는 본격적으로 밤섬을 탐사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향했다. 더운 날씨에 짧지 않은 거리였지만, 밤섬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힘든 줄도 모르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강변에 도착하자 저 멀리 밤섬의 푸른 모습이 보였다. 탐사대는 카약을 타고 노를 저어 마침내 밤섬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선착장으로 이동 중인 탐사대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카약을 타고 밤섬으로 향하는 탐사대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삭막한 카약 선착장 쪽과는 달리 밤섬 쪽 강변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갈대가 제멋대로 자란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웠고 동식물들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이 느껴졌다.
순간, 밤섬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놀라운 자연의 복원력을 보여준 밤섬은 상처낸 인간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치유하여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품에 철새들을 쉬게 하고, 물고기를 살게 하였다. 가녀린 야생풀들이 섬 깊이 뿌리내리게 도왔으며 작은 곤충들이 앉을 푸른 잎들을 자라게 했다.
조류 77종을 비롯해 식물 46종, 어류 32종 등 다양한 생물이 살 수 있도록 보살폈다. 어머니가 자식을 보듬듯이 밤섬은 갖가지 생명체를 품어 안았고, 더불어 인간에게는 이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돌려주었다.
(사진 위부터)흰뺨검둥오리, 천연기념물 제 327호 원앙, 밤섬을 뒤덮고 있는 버드나무 ⓒ 출처/환경재단 자료집
람사르 협약이 정한 2015년 ‘습지의 날(매년 2월2일)’ 슬로건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습지(Wetlands for our future)’이다. 습지는 동식물이 살아가는 생명의 둥지일 뿐 아니라, 우리가 먹는 식량의 25%를 제공하고 홍수와 가뭄을 막아주며, 지구온도를 낮춰주는 자연의 보호막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습지는 더 이상 축축하고 내버려진 ‘노는 땅’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지키고 가꿔 나가야할 ‘생명의 땅’인 것이다. 자연이 없는 곳에는 우리의 미래도 없다는 사실,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공존의 삶’만이 우리를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 밤섬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었다.
탐사를 마치고 강변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을빛에 물든 밤섬이 다시 꿈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자, 봐. 내가 살아났어. 내가 멋지게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밤섬탐사를 마치고 수료증을 받은 꿈기자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밤섬탐사를 마친 어린이 그린리더 40명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 람사르협약 *
지난 1971년 이란의 람사르지역에서 채택된 ‘물새 서식처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의 보전에 관한 국제협약’. 우리나라는1997년 7월, 101번 째 가입국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