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 전 독일총리가 22일 경기도의회에서 한국과 독일의 오랜 관계와 통일과 연정의 의미를 주제로 연설을 하고 있다. ⓒ 김유정 기자
지난 22일 경기도의회에서는 독일 총리를 역임한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oder)의 연설이 있었다. 이번 연설은 평소 독일의 정치형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초대로 이뤄졌다.
이날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은 방청객들로 만원을 이뤘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과 독일의 오랜 관계와 통일과 연정의 의미를 주제로 연설을 진행했다.
단상에 오른 슈뢰더 전 총리는 먼저 자신을 초대해 준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경기도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독일과 한국 관계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130년 전, 양국 간의 외교를 시작으로 독일과 한국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1960년대에는 광부와 간호사들이 파견되어 독일에서 일했고 독일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연설은 단순히 독일과 한국 사이의 정치적 관계뿐만 아니라 1833년 독일과 조선의 통상수교조약 이후 오늘날까지 사회, 문화, 경제적 사건들로 확장됐다.
“빠른 속도로 이뤄진 두 나라의 경제발전은 각각 라인강의 기적, 한강의 기적이라 불립니다. 특히 저는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단기간에 산업대국으로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봤습니다.”
그는 ‘한강의 기적’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과 비교하며 한국에 대한 경이로움을 드러냈다. 단 몇 분간의 설명이었지만 오늘날 젊은이들이 겪지 못한 과거의 대한민국을 타국의 시선으로 훑어나가자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한 현재의 우리나라가 놀라운 변화와 발전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어서 그는 한국과 독일 양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해나갔다.
“한국과 독일은 사회와 역사 전반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국가 모두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먼저 말한 공통점은 분단이었다. 독일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 40년 동안 서로를 등지고 살아야했다. 이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과 연결됐다.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도 분단의 아픔을 느꼈고 따라서 한국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차이점도 있습니다. 독일은 나치라는 독재정권 아래 많은 과오를 저질렀으며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야기했지만 한국은 독재와 2차 세계대전에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고통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차이점조차도 공통점으로 느껴졌다. 독일이 전범국가로 지목되면서 세력이 약화되고 강대국들에 의해 분단되었던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일본에 의해 식민지배의 아픔을 겪었다. 이 모든 일은 약하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분단국이지만 독일은 통일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이 이룩한 통일의 핵심으로 긴장완화 정책을 들었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광범위한 긴장완화 정책을 통해 동·서독 간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긴장완화 정책의 기본 슬로건은 접근을 통한 변화입니다.”
그는 동독과 서독 사이에서 끊이지 않았던 교류를 이야기했다. 교류를 통해 관계를 지속해 나간 것이 통일의 물꼬를 튼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자의 역할을 우리나라와 경기도에 부탁했다.
“경기도가 통일로 가는 길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하길 바라며 경기도가 통일의 교두보 역할을 잘 해낼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분단선을 품고 있는 경기도가 소통의 창구 역할을 포기하지 않아야하고 이러한 역할을 위해 도내에서도 의견을 통일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하는 한마디였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러한 점에서 경기도가 실시하고 있는 연정을 강조했다.
“경기도는 한국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연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속하기 위해선 차이를 인정하고 상생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취임 이후 야당의 추천을 받아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를 임명하는 등 연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다수 정당의 의견이 향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 같은 경기도의 행보는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이러한 연정 속에 녹아있는 상호협력의 의미에 주목하길 바랐다.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눈앞에 놓인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또 자신이 총리 재임 시절 연정을 통해 이루었던 성공적인 정책을 들며 연정의 효과를 강조했다.
“총리 재임시절에는 녹색당(타당)과의 협력을 통해 현재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인 아젠다 2010의 기틀을 만들었으며 이것은 아직도 성공적인 협력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는 이 의미를 확장, 지속시켰을 때 양극간의 갈등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상생과 협력이라는 연정의 의미를 우리나라에 대입하기엔 솔직히 아직 이른 것처럼 보인다. 서로 대립하는 우리나라 여야의 모습과 더 나아가 분단되어 있는 남북한의 모습을 겹쳐보면 팽팽히 맞서는 양극이 과연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더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슈뢰더 전 총리의 연설은 화합의 기회는 서로의 차이를 알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첫걸음이 경기도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앞으로 변화할 대한민국의 희망 열쇠를 경기도가 쥐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