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경기도청을 방문한 슈뢰더 前 독일 총리와 경기도의회로 이동하고 있다. ⓒ 경기도 아카이브·경기G뉴스 허선량 기자
5월 22일 오전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슈뢰더 前 독일 총리가 연설을 하고 있다. ⓒ 경기도 아카이브·경기G뉴스 허선량 기자
민선 6기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취임 1주년을 앞두고 특별한 손님이 경기도를 찾았다. 게르하르트 프리츠 쿠르트 슈뢰더(Gerhard Fritz Kurt Schröder) 전 독일 총리가 그다. 그는 이번 방문을 통해 경기도에 통일과 연정의 원조국(元祖國) 선배 정치인으로서 지혜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짧지만 강렬했던 남 지사와 슈뢰더 전 총리의 만남, 그리고 특별연설에서 전한 주요 메시지를 살펴본다.
이번 슈뢰더 전 총리의 경기도 방문과 경기도의회에서의 특별연설은 지난해 10월 독일을 방문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슈뢰더 전 총리에게 독일의 통일 경험과 연정에 대해 고견을 들려줄 것을 부탁하면서 이뤄졌다. 남 지사는 방독 기간 중 슈뢰더 전 총리를 만나 연정, 통일 등 다방면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당시 슈뢰더 전 총리는 남 지사에게 “모든 경제적 성장은 정치적 안정이 전제돼야 가능하다”면서 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제7대 독일연방공화국 총리를 지낸 슈뢰더 전 총리는 재임기간(1998~2005) 동안 독일 통일 후 혼란스러운 정치·경제적 상황에서도 사민당·녹색당의 연정을 성사시켰으며, 안정화된 정치환경 속에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하르츠 개혁을 성공시켜 독일 제2의 경제부흥을 이끌었다.
지난 5월 22일 슈뢰더 전 총리는 먼저 도지사 집무실을 찾아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와 연정과 통일을 주제로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슈뢰더 전 총리는 “경기연정이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남 지사는 경기연정의 상징으로 집무실에 설치한 ‘연리지 나무’를 슈뢰더 전 총리에게 소개하면서 “여야가 연애하는 마음으로 늘 대화하고 소통하고 있다”며 “약속을 잊지 않고 경기도를 방문해 감사하다”고 환영의 인사말을 전했다. 남지사는 이어 “서양 격언에 보통의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는 말이 있다”며 “슈뢰더 전 총리는 다음 세대를 준비한 정치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남 지사는 특히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당리당략이나 자신의 선거결과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혁과 통합,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슈뢰더 전 총리가 미래와 국익을 생각하는 점을 우리나라 정치인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 지사 초대로 경기연정 직접 보고 싶어 방문”
이에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해 남 지사께서 베를린에 왔을 때 만나 경기도 연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기연정을 직접 보고 싶어서 경기도를 방문했다”며 “두 개의 뿌리가 만나서 하나의 나무를 형상화한 연리지의 콘셉트가 정말 보기 좋다. 대립보다는 소통이 우선이라는 점을 알았다”고 화답했다.
슈뢰더 전 총리와의 환담을 통해 남 지사와 이 부지사는 연정과 통일이라는 주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경기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슈뢰더 전 총리 역시 경기연정 성공을 희망적으로 평가했다.
남 지사는 “연정이 법에 제도화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인 타협으로 끌고 가고 있어 어려운 점이 있는데, 앞으로는 법제화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라며 “통일을 이뤄내야 하는데 양당제와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북한주민이 통일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라도 연정이 가능한 정치체제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우 부지사는 “대한민국 최초의 연정이라 조심스럽게 제도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도민과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서로 다른 점이 없다”고 말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두 분을 보니 경기연정이 잘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특히 연정은 노동시장 및 연금 등 대한민국을 개혁하는 데 좋은 이슈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통일과 관련해서는 “북한주민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 통일 시에도 사회 간의 교류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소개하고, 경기도가 시도하고 있는 지방정부 차원의 외교에 대해서도 “아주 좋은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엄청난 비용과 고통스러운 개혁이 필요한 게 통일이다. 그러나 비용은 중요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분단으로 강제로 헤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나야 하는 것이다.”
“남 지사는 독일과 한국과의 관계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분”
환담을 마친 슈뢰더 전 총리는 경기도의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해 오전 11시부터 ‘독일통일 및 연정경험과 한국에의 조언’이라는 주제로 40분간 연설했다. 이 자리에는 환담을 나눴던 남 지사와 이 부지사뿐만 아니라 강득구 도의회 의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경기도의원, 오피니언 리더 및 공무원 등 3백여 명이 참석해 슈뢰더 전 총리의 연설을 경청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과 독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1960~70년대 수많은 간호사와 광부가 독일에 파견돼 독일경제에 많은 도움을 줬다. 현재는 4만 명의 교민이 살고 있어 유럽에서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 독일”이라며 한·독 우호를 강조하고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독일에서 친구로 알려져 있다. 독일 경제·정치·사회까지 잘 알고 있어 독일과 한국과의 관계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분”이라며 연설을 시작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한국과 독일 양국이 분단과 전쟁을 겪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통일에 대해서는 양국의 차이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국가이고, 한국은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이다. 동독과 서독은 다른 체제였지만 서로 전쟁을 한 적이 없고 늘 대화의 정치를 해왔다”고 설명하고 “체제의 경계를 넘어 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긴장을 완화하는 정책이 통일과 화해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경기도에서 한국 역사 최초로 정당을 초월한 연정을 한다고 들었다. 연정은 두 개의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서로 자라서 하나의 성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기도 아카이브·경기G뉴스 허선량 기자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는 “북한은 남한과 주변지역 국가들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타국에게 경제원조를 요청하는 두 가지를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면서도 “한반도 신뢰형성 프로세스를 위해 북한이 당장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민 손을 거둬들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경기도가 한반도 통일을 이루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해야 하고 또한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슈뢰더 전 총리는 통일의 과정에서 수반돼야 할 비용과 고통스러운 구조개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독일은 통일 후 시장경제 도입, 동독 기업 민영화, 낙후된 동독지역 인프라 구축 등 3가지를 추진해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고,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아 성장이 둔화됐다”며 “엄청난 비용과 고통스러운 개혁이 필요한 게 통일이다. 그러나 비용은 중요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분단으로 강제로 헤어진 가족들이 다시 만나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슈뢰더 전 총리는 사람을 어떤 통일정책보다 우위에 놓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독일 통일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국가 경쟁력을 되살리고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추진했던 ‘아젠다 2010’을 소개하면서, 연정을 통한 정치적 안정이 선행됐기에 엄청난 고통과 구조조정이 수반됐던 대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당 간 이념 달라도 국민과 국가가 우위라는 것 잊어선 안 돼”
연정과 관련해 그는 “독일이 정당을 초월해 협력한 경험에 대해 듣고 싶다는 의견을 주셨지만 제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경기도에서 이미 한국 역사 최초로 정당을 초월한 연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경기연정을 높이 평가하면서 “연정은 두 개의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서로 자라서 하나의 성공으로 나가야 한다. 제가 조언을 드리지 않고 다만 저희가 경험한 것을 여러분께 나눠드릴 뿐”이라며 독일의 사례를 들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의 경우 제1민주주의가 1933년까지 있었다. 나치 때문에 제1민주주의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 경험을 통해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는 이념이 다르더라도 정당 간 신뢰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학습의 과정이었다”고 진단하며 “정당 간에는 경쟁할 수밖에 없지만 중요한 것은 정당들이 국민의 신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며 국가의 이해관계, 국가의 중요한 일에 있어 정당보다 국가가, 그리고 국민들이 더 위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는 리더작센 연방 주총리 시절이나 총리로 재직할 때 녹색당과 협력해 일했고 전체적으로 성공적으로 협력해 일했다”고 자평하면서 “어떤 타협은 고통스러운 결과를 수반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평화적인 국정 운영에 연정이 도움을 줬으며 함께 합의점을 찾아가는 정치문화를 뿌리 내리게 했다”고 밝혔다.
또한 “경기도는 한국에서 정당의 경계를 넘어서는 협력의 경험을 이미 시도했다. 정치인으로서 서로 이와 관련해서 나눌 수 있는 경험이 많을 것이다. 협력이란 항상 상호존중과 신뢰가 바탕이 됐을 때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끝으로 “독일과 한국은 공동의 경험과 공동의 운명을 가진, 우정을 나눈 친구의 나라다. 독일 국민들은 한국이 머지않아 평화롭고 자유로운 통일을 이루길 진심으로 희망하고 있다”며 “남경필 도지사가 베를린에서 개최된 ‘한독평화통일포럼’에서 경기도에 대한 투자는 통일된 한국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저는 대한민국과 경기도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며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한다”면서 연설을 마무리했다.
5월 22일 오후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슈뢰더 前 독일 총리가 수원에 위치한 봉녕사를 방문해 사찰을 둘러보고 있다. ⓒ 경기도 아카이브·경기G뉴스 허선량 기자
경기도의회 1층 로비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강득구 경기도의회 의장,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 이승철 도의회 새누리당 대표, 김현삼 도의회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천동현 도의회 부의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경기도 아카이브·경기G뉴스 허선량 기자
“남 지사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개혁정책 잘 이해, 열린 사고방식”
연설이 끝난 후 경기도의회 이재준(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이승철(새누리당) 의원이 법적 규정이 아닌 정치적 합의에 따른 연정의 불안정성과 일본의 역사청산,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서의 연립정부 기능에 대한 견해를 묻기도 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과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경기도의회에서 연정을 원한다면 서로 다른 의견을 없앨 것이 아니라, 합의할 수 있는 점을 찾고 법안을 마련하면서 연정의 근간을 탄탄하게 다져야 할 것”이라고 견해를 전했다.
역사청산에 대해서는 “독일의 경우 나치의 경험을 뼈아프게 갖고 있고 동독시절 공산체제 역시 청산의 대상이었다. 독일은 전쟁 후 홀로코스트에 대해 과거청산을 하고자 노력했으며, 한 번도 전쟁범죄에 대해서 인정하기를 꺼린 적이 없다. 그것은 국제적으로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며 “일본의 경우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역사청산은 너무나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자기 역사와 직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별연설이 끝난 후 경기도의회 1층 로비에서 진행된 언론과의 스탠딩 인터뷰에서도 슈뢰더 전 총리는 경기연정 확산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대통령제라도) 의회가 의사결정 형성과정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프로세스, 정당 간 의견 차이를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특징을 인지하고 효과적으로 협력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남 지사와 경기도에 대한 평가 요청에는 “남 지사는 경기도뿐만 아니라 한국에 필요한 개혁정책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고, 열린 사고를 가진 분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도 역시 개혁에 관심이 높은 지역이라는 것을 느꼈다”며 “준비하고 있는 개혁정책이 성공할 것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슈뢰더 전 총리와 남 지사는 연설 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소재 봉녕사로 이동해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는 남 지사와 강득구 도의회 의장, 이기우 부지사를 비롯해 새정치민주연합 이찬열 경기도당 위원장·송호창 전 도당위원장, 황성태 도 기획조정실장, 봉녕사 자연스님 등이 참석했다.
남 지사는 봉녕사에 도착해 슈뢰더 전 총리에게 이찬열 도당위원장 등을 소개하고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당에서 (경기도) 연정을 위해 협력해주셨다”고 밝혔다. 슈뢰더 전 총리는 “(봉녕사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상냥하신 분들이 안내를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남 지사를 비롯한 내빈들은 자연스님의 안내로 대적광전, 우화궁(승가대학) 등을 관람하고, 육화당에서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오찬 후 남 지사는 광주 도원요 박부원 선생이 제작한 백자 ‘달항아리’를 슈뢰더 전 총리에게 선물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선물을 받으며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도자기 공장 근로자였다. 뜻깊은 선물에 감사하다”고 기쁨을 표시했다.
“남 지사는 경기도뿐만 아니라 한국에 필요한 개혁정책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고, 열린 사고를 가진 분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도 역시 개혁에 관심이 높은 지역이라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