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경기도농업기술원의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했다. 농촌 일손 돕기를 위해 아침 9시에 출발할 계획인 농업기술원 자원봉사자들은 오전 8시부터 모여 현장으로 가져갈 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전날 미리 준비해 놓은 얼음물과 작업에 필요한 앞치마, 장갑까지 빠짐없이 짐을 챙기고 난 후 봉사자들은 경기도 평택으로 출발했다. 이른 아침부터 나와서 그런지 아직 얼굴에 붓기가 가시지 않은 봉사자들도 있었지만, 모두 다 표정만은 밝아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입으며 배 포장봉투 씌우기 작업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이지원 기자
이날 경기도농업기술원 공무원들은 메르스의 여파로 일손 부족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평택시 현덕면의 배 농가로 일손을 도우러 갔다. 3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 도착하자 농장주는 반갑게 이들을 맞이했다. 잠깐의 인사를 나눈 뒤 서둘러 작업 준비를 시작했다.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입고, 배를 포장할 봉투까지 나눠받은 봉사자들은 조금은 들뜬 표정으로 배나무 밭으로 들어갔다.
한 자원봉사자가 앞치마에서 배 포장봉투를 꺼내고 있다. ⓒ 이지원 기자
농장주는 배가 크는 동안 벌레와 병균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배에 포장봉투를 씌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농장주가 포장봉투 씌우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주고 난 후 자원봉사들은 모두 흩어져 작업을 시작했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 한 나무를 공략하는 봉사자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키에 맞춰 특정 위치에 있는 배만 공략하는 봉사자들도 있었다. 봉사자들이 위치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전략을 짠 것 마냥 효율적으로 흩어져 배 포장봉투 씌우기 작업을 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봉사자들에게는 모두 장갑이 주어졌지만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하다가 배가 떨어지거나 가지가 부러질 위험이 있어서 많은 봉사자들이 장갑을 벗고 작업에 임했다.
배 위에 잘 씌워진 포장봉투 때문에 배에 접근하지 못한 파리 한 마리. ⓒ 이지원 기자
이날 봉사에 참여한 이들이 경기도농업기술원의 공무원인 만큼, 모두 농작물에 큰 관심이 있었다. 봉사자들은 포장봉투 씌우기 작업을 하면서 배와 나무들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또, 누구보다 농민의 마음을 잘 아는 농업기술원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농장주와 요즘 평택 농가들의 상황을 심각하게 얘기하기도 했으며,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농장주의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이렇게 가볍지 않은 얘기를 하며 배에 포장봉투를 씌우는 봉사자들이 있는 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아주 밝은 분위기로 작업을 하는 봉사자들이 있었다. 농업기술원 농촌자원과 임영춘 과장은 “과일도 좋은 음악을 들어야 잘 자랄 수 있다”며 핸드폰으로 색소폰 연주를 켜놓고 작업을 했다. “식물들도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서 이런 밝은 음악을 들려주어야 한다”며 임 과장은 색소폰 연주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이 연주가 과일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봉사자들을 위한 노동가로 바뀌어 작업장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배에 포장봉투를 씌우고 있는 봉사자들. ⓒ 이지원 기자
아침부터 봉사자들의 얼굴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오후가 되어서는 비가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햇빛이 더 강해지고 힘도 많이 빠지기는 했지만, 봉사자들의 기분은 좋아보였다. 처음에 받은 포장봉투를 다 써서 여기저기서 포장봉투를 찾기도 했다. 나무 아래쪽에 달린 배들은 오전에 일찌감치 작업을 끝내고 오후에는 높은 위치에 있는 배들과 가지 사이사이에 숨겨져 있는 배들에 포장을 씌웠다. 봉사자들은 이 밭에 있는 배를 모두 포장하겠다는 마음으로 가지 사이사이를 헤치고 다녔다. 날씨는 덥고 벌레도 많았지만 모두가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작업을 끝낸 경기도농업기술원 봉사자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다 녹아버린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 ⓒ 이지원 기자
배 포장봉투 씌우기 작업은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원래 작업은 3시에 철수예정이었지만, 모두 배부 받은 포장지는 다 쓰고 가겠다고 우겨(?) 예정된 시간보다 작업이 늦게 끝났다. 농장주 기찬서 씨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농민들의 어려움을 경기도 공무원들이 알아주고 나서서 도와주니 힘이 난다”며 “지금 상황에 농민들뿐만 아니라 상인들도 많이 힘들 텐데 모두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공무원은 메르스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평택 농민들을 위해 다양한 일손 돕기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평택 일부 농가의 부담을 덜어주기는 했으나, 아직도 농민들이 가지는 부담은 적지 않다. 경기도 공무원들 뿐 아니라 도민들도 함께 이 부담을 나누면 농민들의 부담은 더 적어질 것이다. 메르스와 가뭄으로 더욱 힘들어진 농민들의 상황에 지역민들도 함께 관심을 가진다면 더 나은 경기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