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중점치료센터 수원병원 류향희 간호과장 ⓒ 류향희 제공
메르스와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6월 17일,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3층에 마련된 경기도 감염병관리본부 상황실이 술렁였다. 병원 바깥에 지역사회에서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류향희(52) 간호과장은 순간 메르스 중점치료센터 지정 반대 시위라도 열린 건가 싶었지만 미소 띤 간호사들의 표정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의료진 여러분 힘내세요. 우리가 함께 당신을 응원합니다.”, “진정 당신이 애국자입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메르스로 고생하시는 당신 곁에 우리가 늘 함께합니다.”
병원 밖으로 나와 현수막을 본 류 간호과장은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공공의료기관의 의료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이렇게 위로를 받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메르스가 치사율이 높은 감염병이다 보니 환자들이 모이는 중점치료병원을 안 좋게 볼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주민들은 그러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응원까지 해주셨어요.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같은 공동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랬다. 현수막이 내걸리기 전까지 수원병원 의료진들은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우선 메르스와의 싸움이다. 수원병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게 5월 28일 목요일. 공공병원인 수원병원은 자신들이 최전방으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도에서도 요청이 왔다. 토요일에 긴급회의를 열기 시작해 일요일 아침부터 기존 환자 1백30여 명을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6월 1일 월요일에는 경기도 감염병관리본부에서 수원병원을 메르스 중점치료병원으로 한다고 공식 발표했고, 수원병원은 감염병동을 비운 것을 시작으로 3층에 경기도 감염병관리본부상황실을 차리고 12개이던 음압병상을 41개로 늘리는 공사도 진행했다. 평소 46명 안팎이던 간호사 인력을 86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원한 후 의사와 함께 조를 짜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해나갔다.
병원 담벼락에 걸린 응원 현수막. ⓒ 강현욱 기자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풍경. ⓒ 경기도 아카이브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치료 경험 큰 도움
의료진을 특히 힘들게 하는 것은 전신 방호복이다. 메르스는 환자를 옮기거나 진찰하고 간호하는 과정에서 쉽게 감염될 수 있다 보니 확진 환자를 진찰할 때는 반드시 고글과 마스크, 장화 등 전신 방호복을 입어야 한다. “바람이 통하지 않고 호흡도 어려워 체력이 금방 소진돼요. 30분 이상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죠. 게다가 일반지원인력이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청소, 배식, 세탁물 처리 등 허드렛일까지 모든 일을 간호사들이 다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두려움이다. 환자 치료는 물론 일반 관찰자의 병원 내 교차감염을 막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의료진 자신의 감염도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젊은 간호사와 어린 자녀를 둔 엄마 간호사들의 불안이 컸다. 감염병동에 들어갔다 온 날은 아예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병원 인근에 얻은 유스호스텔에서 먹고 잤다. 게다가 메르스 님비니, 메르스 낙인이니 하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까지 느껴야 했다.
“다행히 저희 병원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2003년 사스 그리고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도 병동을 비우고 환자를 받은 경험이 있어요. 원장님도 당시에 서울의료원 부원장, 원장으로 계시면서 이러한 일을 지휘한 경험이 있으시고요. 물론 불안해하는 간호사도 없지 않았지만 경험 있는 의사와 간호사가 많다 보니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지역사회의 지지와 성원이 보태지자 의료진들이 더욱 힘을 낼 수 있었고요.”
실제로 그랬다.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은 땀 흘리는 의료진들의 얼굴을 닦아주는 손수건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수원병원엔 다른 지역주민들의 지지와 격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불안을 느끼고 있을 초등학교 학부모회 등에서 떡과 과일을 싸 오며 고마움을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료진들은 이렇게 받은 음식과 격려를 입원한 환자들과 나누며 잃어버린 미소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한 달 가까이 메르스와의 싸움에서 간호사들을 이끈 류 간호과장에게 이번 사태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개인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위기를 겪기 마련이잖아요. 결국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고요. 저희도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지역사회의 지지와 성원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입이 통제된 응급실 ⓒ 경기G뉴스 허선량 기자
도민 응원 메시지
장소희(21, 경기도 부천시) ⓒ 장소희 제공
“완치자들이 많아져 희망이 보이네요”
장소희(21, 경기도 부천시)
메르스가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게 5월인 걸로 기억해요. 제가 살고 있는 부천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일이라 당시만 해도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메르스 확진환자, 의심환자들이 속출하자 점점 불안해졌고 심각하다고 느꼈어요. 요즘 인터넷 뉴스를 보면 전부 메르스에 대한 얘기뿐이에요. 저는 그중에서도 음압병실에서 힘겹게 사투 중인 의료인들에 대한 기사를 많이 보고 있는데요. 마스크는 물론이고 고글에 두꺼운 방역복, 몇 겹이나 되는 장갑까지 낀 채로 밖에 나와 손등으로 땀을 닦는 의료인의 사진을 봤어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고 정말 고맙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어요. 그 결과 완치자들이 많아졌고 이제는 희망이 보여요.
메르스 집중치료시설인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주변에는 현수막, 포스트잇, 메모 등 의료인과 메르스 피해자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메시지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해요. 저도 개인위생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의료인 여러분과 메르스 피해자들을 응원할 거예요. 메르스 극복을 위해 모두 파이팅!
배정윤(21, 경기도 의정부시) ⓒ 배정윤 제공
“최전선 메르스와 사투하는 의료진 있어 안심돼요”
배정윤(21, 경기도 의정부시)
처음에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는 피부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에서 확진자가 증가하는 것을 보며 사태가 심각함을 느꼈습니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더운 날씨 속에서도 무거운 방호복을 입고 치료에 힘써주시는 덕분에 완치자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전선에서 열심히 메르스와 사투하는 의료진이 있기에 메르스 감염의 걱정 속에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었습니다. 의료진 여러분! 모든 국민들이 당신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장기간 떨어져 생활하며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드시겠지만, 항상 국민들이 응원하고 뒤에서 지지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주세요. 한 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밤낮으로 고군분투하시는 만큼 메르스 종식이 앞당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의료진 여러분 힘내세요! 그리고 늘 감사합니다. 의료진 여러분들은 우리의 희망이자 자랑스러운 영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