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사람들
메르스의 최전선에서 종식을 외치다 ⓒ 김상근 기자
“엄마, 오늘은 되게 일찍 왔네?”
6월의 어느 주말 아침, 일주일 만에 모자(母子)가 맑은 정신으로 상봉을 했다. 엄마는 여섯 살배기 아들이 이미 잠들고 난 후에야 퇴근을 하고, 또 잠에서 깨기 전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한 지 일주일째에야 드디어 두 눈을 반짝이는 아들의 모습을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바이러스팀 남수정(37) 연구사의 이야기다. 남 연구사의 아들은 오랜만에 마주한 엄마를 보며 엄마가 일찍 왔다고 한껏 좋아했지만, 사실 주말 오후 출근을 앞두고 잠깐의 달콤한 휴식일 뿐이었다. 모처럼 만난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들내미를 간신히 떼어놓고 다시 출근해야 하는 남 연구사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연구사이기 이전에 엄마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이하 메르스)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로 메르스 의심자나 격리자의 검체 샘플 검사를 맡고 있는 남 연구사는 칼퇴근을 해본 기억이 없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내미를 마음 편히 안아본 기억도 가물거린다. 어쩌다 운 좋게 아들이 잠들기 전 퇴근하는 날이면 엄마를 반기며 저 멀리서 아들이 달려오지만 남 연구사는 그런 아들을 안아줄 수 없다. 애써 못 본 척 외면하며 욕실로 먼저 향하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안아주고 싶고 뽀뽀도 해주고 싶죠. 그런데 혹시라도 실험실에서 묻어온 바이러스를 아이에게 옮길까봐 조심스러워요. 마음껏 애정표현을 해줄 수 없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죠.”
남수정 연구사가 메르스 확진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있다. ⓒ 김상근 기자
메르스 확진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있다. ⓒ 김상근 기자
주말, 야간 할 것 없이 비상근무 태세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는 매일 경기도 전역의 보건소에서 보내오는 메르스 의심자나 격리자의 검체 샘플이 접수된다.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바이러스팀의 기존 인력 6명으로는 밀려드는 검체를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 타 부서의 지원을 받았다. 지금은 총 11명의 연구사가 오전 10시, 오후 1~3시, 저녁 8~10시 등 하루 세 차례 접수된 샘플들을 모아 메르스 검사와 분석을 하고 있다. 야간에도 쉬지 않고 직원들이 교대로 근무하며 메르스 검사에 임하지만 여전히 업무에는 과부하가 걸려 있다.
남 연구사는 “저는 에이즈 관련 검사가 주 업무인데 메르스 때문에 주 업무는 짬짬이 시간 내서 해야 할 정도”라며 “2009년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 발령을 받자마자 신종플루가 대유행해 몇 달을 정신없이 보냈는데 그때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현 상황을 요약했다.
메르스 관련 검사는 ‘생물안전3등급실험실(BL-3)’에서 방역복을 입고 이뤄진다. BL-3 실험실은 탄저균, 사스(SARS), 조류인플루엔자(AI), 에이즈부터 메르스에 이르기까지 각종 바이러스를 검사할 수 있는 생물안전밀폐실험실로 지난 2002년 처음 설치돼 월드컵 때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대부분 접촉을 통해 감염이 이뤄지는 만큼, 검체를 검사하는 실험실은 철저하게 통제된다. BL-3 실험실로 향하는 길은 미로처럼 길고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안전을 위해서다. 여러 개의 출입문을 지나야만 실험실에 도달한다. 실험실 내부는 단계별 음압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혹시나 병원체가 누출되더라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연구사들은 검체 수송용기를 소독한 뒤 밀폐된 유리문을 통한 별도의 통로로 검체를 들여보냈다. 이어 2명의 연구사가 실험실로 들어가 방역복을 입고 고글, 마스크, 수술용 장갑 등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무장한 채 겹겹의 문을 지나 밀폐 실험실로 들어섰다. 이제부터 두 연구사는 검사와 분석이 끝날 때까지 5~6시간을 이 밀폐 실험실 안에서 보내야 한다. 이 같은 과정은 의정부시에 위치한 북부지원에서도 4명의 연구사가 동일하게 진행 중이다.
메르스 관련 검사는 ‘생물안전3등급실험실(BL-3)’에서 방역복을 입고 이뤄진다. ⓒ 김상근 기자
음압시설 오래 머물러 신체에 무리 가기도
박포현(54) 바이러스팀장은 “하루 세 번 검체를 연구사 2명이 실험실로 갖고 들어가 객담(가래)에서 유전자를 분리하는 검사를 2시간여 진행하고, 실시간유전자분석기(RT-PCR) 장비로 3시간가량 반응 조사를 해 양성, 음성 여부를 판정 한다. 통상 6시간 정도 걸린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또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중요한 검사를 맡고 있기 때문에 연구사들은 언제나 극도의 긴장상태”라며 “게다가 외부보다 기압이 낮은 음압상태의 밀폐공간에서 검사와 분석을 하느라 신체에도 무리가 가해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가뜩이나 무더운 날씨에 방역복으로 꽁꽁 싸매고 밀폐된 실험실로 향해야 하는 연구사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실제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메르스 검사를 실시해 확진자 판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대폭 줄었으나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연구사들은 급격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연구사들의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질세라 노심초사하던 박 팀장은 최근 한 시름 덜었다. 민간검사소에서도 메르스 검사를 시작하면서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으로 도착하는 검체 수가 줄어든 것. 그러나 야간비상근무가 언제쯤 끝날 것 같느냐는 물음에는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한다.
“글쎄요. 현장에서 수많은 연구사들이 고생하고 있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메르스가 종식되길 바랄 뿐입니다. 경기도에서 메르스가 뿌리 뽑히는 그날까지 저희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메르스 최전선에서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메르스와 싸우는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본다.
박포현 바이러스팀장이 메르스 검사과정을 설명하고있다. ⓒ 김상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