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네이도가 앗아간 삶의 터전,농작물 재해보험이 되찾아줘” ⓒ 김상근 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구산동에 위치한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닥쳤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다란 깔때기 모양의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강풍을 이기지 못한 경운기는 논바닥으로 굴러 떨어졌고 장미, 버섯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는 폭삭 주저앉았다. 기다란 쇠파이프가 엿가락처럼 휘어져 날아다니고 이에 맞아 부상자도 발생했다. 바람에 날린 각종 비닐과 쓰레기더미들이 전선을 덮치면서 전기까지 끊겼다.
“토네이도가 앗아간 삶의 터전,농작물 재해보험이 되찾아줘” ⓒ 김상근 기자
벌써 1년여가 지났지만 2014년 6월 10일, 그날을 생각하면 은마농원의 정은조(50) 씨는 여전히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등골이 서늘해진다.
“외국 영화에서나 구경했지 한국에 살면서 토네이도를 경험할 일이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죠. 이 지역에서 수십 년 넘게 사신 어르신들도 이런 적은 처음이래요. 게다가 제가 그 토네이도의 피해자가 될 줄이야.”
정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전 처음 겪는 자연재해의 가공할 만한 위력에 놀란 것도 있지만, 그날의 사고로 열심히 가꿔온 삶의 터전을 잃었던 기억 때문에 더욱 아찔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과거 인천에 거주하며 통신 분야에 종사하던 정 씨는 2009년 친형의 권유로 귀농을 결심하게 됐다. 고양시 구산동에 1천 평 규모의 장미농원을 꾸리고 동갑내기 아내 장말예 씨와 함께 알콩달콩 가꿔나갔다. 뒤늦게 시작한 화훼업이지만 수입도 좋은 편이었다. 연 1억5천만 원 상당의 매출을 올리며 제2의 삶을 성공적으로 개척해나갈 무렵 난데없이 등장한 토네이도는 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수억 원을 들여 세운 최첨단 재배시설의 비닐하우스도, 자식처럼 고이 가꾼 장미 넝쿨도 모두 맥없이 무너졌다. 토네이도가 불어닥치던 그 순간은 비닐하우스를 지키는 것보다 당장 사람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그야말로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의 눈앞에 들어온 것은 처참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주변 농가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내 살점 같은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려 한창 예쁠 때인 장미가 꺾이는데도 손 쓸 방도가 없더라고요. 자연의 위력 앞에서 한없이 작고 무기력한 인간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2014년 6월 10일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구산동 비닐하우스의 모습. ⓒ 경기도 아카이브
농작물 재해보험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은마농원. ⓒ 김상근 기자
쑥대밭 화훼농가 신속한 복구 비결은…
그렇게 한바탕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그곳을 1년 만에 다시 찾았다. 은마농원은 토네이도의 상처를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울 만큼 완벽하게 제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1천 평 규모의 5연동 비닐하우스를 복구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됐을 텐데 장미 농사를 망쳐 수입이 없던 농가가 그 부담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조심스러운 기자의 질문에 정 씨는 “농작물 재해보험 아니었으면 이렇게 다시 일어서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거나 빚더미에 앉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경기도는 최근 이상기후로 인한 농업재해 발생이 증가함에 따라 농작물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농작물 재해보험은 농업인들이 쉽게 가입할 수 있도록 보험료의 80%를 정부(50%)와 경기도 및 해당 시군(30%)이 분담해 지원하고, 농가는 20%만 부담하면 가입이 가능하다.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대상품목은 벼, 사과, 배, 포도, 복숭아, 농업용 시설물(시설하우스) 등 40개 품목이다. 특히 농업용시설물과 시설작물은 올해부터 연중 가입이 가능해졌다.
정 씨는 장미농장을 휩쓴 토네이도로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을 뻔했으나 미리 가입해둔 농작물 재해보험 덕분에 가뿐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재작년 같은 작목반원의 농가가 태풍 피해를 입었을 때 품앗이를 갔어요. 처참하더라고요. 복구하는 데 필요한 일손은 이웃들이 조금씩 도와준다지만 피해복구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돈이죠. 그런데 농가들이 현금을 쌓아놓고 살진 않잖아요. 대부분 빠듯한 형편이에요. 그때 함께 품앗이 온 다른 작목반원이 자신은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해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는 거예요. 자연재해로 터전을 잃은 농가의 모습과 미리 대비해놓고 든든해하는 농민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나도 얼른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작물 재해보험의 필요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농협에 보험가입을 신청했다. 가입 첫해, 시설물과 작물 모두 보장받을 수 있는 상품을 선택하고 그가 보험료로 납부한 돈은 약 2백여만원에 달한다.
보험료 카드 납부도 가능해 농가 부담 덜어
“솔직히 현금 일시불로 2백여만원을 척하니 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죠. 우리 식구 한 달 생활비가 될 수도 있는데…. 하지만 2백만~3백만원 아끼려다 나중에 2억~3억원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결심이 서더라고요.”
보험 가입 첫해에는 시설물과 작물에 대한 피해를 모두 보장하는 상품을 택해 보험료가 꽤나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무탈하게 한 해를 넘기고 이듬해에는 보장 범위를 시설물로만 제한했다. 그런데 ‘머피의 법칙’처럼 보장 범위를 축소한 그 해, 토네이도가 은마농원을 덮쳤다.
“어찌 보면 기구하죠? 시설물, 작물 모두 보험에 가입했을 땐 아무 피해 없더니 보장 범위를 줄이고 나니까 딱 사고가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그래도 농작물 재해보험이 고마울 뿐입니다. 약 1억4천만원의 보험금을 수령해 시설을 복구하는 데 드는 비용 부담을 덜었어요. 덕분에 재해보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기도 했고요.”
토네이도를 겪고 난 정 씨는 올해 농작물 재해보험을 갱신하며 시설물과 작물에 대한 보장 기능을 더욱 강화했다. 그에게 이웃 작목반원이 일러줬던 것처럼, 이제는 그가 농작물 재해보험의 홍보대사가 되어 여기저기 입소문 내고 다니는 것은 물론이다. 유독 이 지역의 재해보험 가입률이 높은 데에는 정 씨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을 터.
“지난해 함께 피해를 입은 농가 중 한 곳은 결국 재기하지 못하고 그만뒀어요. 나머지 농가들도 재기는 했지만 시설을 복구하느라 빚이 많이 늘었다고 해요.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깝죠. 많은 분들이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해 만약의 피해에 대비하셨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부터는 보험료의 카드 납부도 가능해졌다고 해요. 현금 일시불에 대한 부담이 줄었으니 보다 많은 분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토네이도가 앗아간 삶의 터전,농작물 재해보험이 되찾아줘” ⓒ 김상근 기자
아내 장말예 씨가 장미농원을 살펴보고 있다. ⓒ 김상근 기자
"많은 분들이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해 만약의 피해에 대비하셨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부터는 보험료의 카드 납부도 가능해졌다고 해요. 현금일시불에 대한 부담이 줄었으니 보다 많은 분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