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의(이태한 기증) ⓒ 경기도박물관
오석다듬이돌(최상덕 기증) ⓒ 경기도박물관
오래된 그림 한 장, 자기 한 점에는 유물의 나이만큼이나 많은 사람의 온기와 사연이 스며있다. 오로지 생김만으로 더 이상의 부연을 거부하는 박물관 속 유물의 고향은 어디일까. 이제 막 새 단장을 끝낸 경기도박물관 기증유물실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경기도박물관은 개관 이후 지금까지 경기도 전역의 여러 문중에서 귀중한 유물을 기증받아 왔다. 그것들은 선사시대에서부터 근현대까지의 회화·도자·조각·가구·공예품 등으로 폭넓은 시공간적 범위와 다양한 종류를 자랑한다. 역사적·예술적·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기증유물’은 경기도박물관의 컬렉션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했다.
기증유물, 반짝이는 시공간의 스펙트럼
“선조 대부터 소중히 보관해온 유물이 점점 훼손되자 부디 유물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또 여러 사람들이 같이 즐겨 보고 선조의 뜻을 되새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 조선 후기 명문가로 손꼽히는 가문의 후손이 큰 결심을 내렸다. 그동안 고이 모셔온 조상의 초상화와 고문서, 민속품 등 귀중한 유물 4백33건, 5백29점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보통 사람의 용기로서는 힘든 결단이었다. 종중의 반대도 거세었을 터이다. 그러나 그는 감행했고, 그 용기가 변변한 기부문화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리네 현실에서 뭇 사람들을 감동시켰음은 물론이다.
경기도박물관은 6월 기증유물실 재개관 기념 전시를 개막했다.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박물관에 기증된 자료에 <기증유물, 그 새로운 이야기:2010-2014>란 제목을 붙여 상설전으로 재탄생시켰다. 조선시대 왕실 종친 및 사대부 묘역 출토 자료와 기증유물, 경기 명가(名家)에서 기증받은 유물과 일제강점기의 생활상, 당시 지식인의 학문세계를 보여주는 기증유물, 그리고 2014년 기증받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김희진의 작품과 함께 독립운동가 박찬익의 손녀 박천민 씨가 기증한 근현대 생활사 관련 물품 전시 등 모두 4부로 구성된 전시는 조선시대 경기 명가(名家)의 삶과 고유한 전통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이후 근현대의 경기인(京畿人)의 모습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소개한다. 이를 통해 현재를 보존해 후세에 전하는 박물관 기증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선조의 향기, 세월의 품격
실제로 박물관은 개관 준비 기간이었던 1986년부터 지금까지 초상화·고문서·전적·민속자료 등 약 3천여 점의 유물을 기증받았다. 전주이씨 백헌공파 종중에서 보물 제930호인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첩을 비롯한 1백99점, 함안조씨 참판공파에서 보물 제1298호 조영복 영정 등 3백27점, 경주이씨 국당공파 정익공 종중에서 이완장군 투구 등 3백49점, 남양홍씨 예사공파 종중에서 승자총동 등 1백92점, 청송심씨 종중에서 보물 제1480호 심환지 초상 등3백86점, 안동김씨 별제공파 종중에서 1백71점 등 개인 소장품이나 조상대대로 전승되어온 가문의 유품을 박물관에 선뜻 내준 기증자들 덕분에 전시, 학술연구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책 속에서 본 유물을 통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따른다. 박물관 속 유물이 건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나누어 함께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하는 기증자의 마음이 읽힌다. 그들 덕에 박물관은 살아 있다.
선우침 곽산훈도 교첩(선우국진 기증) ⓒ 경기도박물관
숙선옹주 흉배(홍은경 기증) ⓒ 경기도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