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일부터 31일까지 수원박물관에서는 광복 70주년 기념 일본군 위안부 관련 특별순회전시 ‘마르지 않는 소녀의 눈물’이 개최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로 심각한 역사왜곡이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는 요즘 ‘위안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마련된 특별전시이다. 이 전시는 3~4월에는 수원광교박물관 야외에서, 5~6월은 수원평화기념비 설치 1주년을 기념하여 올림픽공원에서,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7월은 수원화성박물관, 이번 8월은 수원박물관 야외로 찾아온 것이다.
야외 특별전시 ‘마르지 않는 소녀의 눈물’ 전경 ⓒ 최지원 기자
야외전시는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위안부에 대해 문제제기는 하지만 그 자세한 내막은 정확히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무관심과 책임감 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삶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며 그 안타까운 역사를 알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위안소에 강제 동원되어 병사들을 상대로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라 부르고 있다. 일본군 위안소는 1932년 중국 본토에 처음 설치되었고 1945년 우리의 광복과 함께 일본이 패망의 지경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점령지였던 아시아와 태평양 각지에 설치되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군대성노예’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당시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역사적 용어로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군에 의한 강간사건을 막기 위해, 일본군 병사가 성병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군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군의 기밀누설을 방지하기 위해 등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한 이유에 대해선 밝혀져 있으나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였고 일본의 군과 관헌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에서 위안소 제도는 명백한 ‘국가 범죄행위’라 볼 수 있다.
위안부 피해여성들은 일본이 패전하자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여성들에게 패전을 알리지 않고 떠났으며 퇴각하는 중에 피해여성들을 한 곳에 모아 죽이기도 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잠시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나와 떠돌며 홀로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윤정옥 교수의 피해여성 방문과 위안부의 행적을 따라 간 일본 횡단 등의 노력을 통해 1990년 1월, 한겨레신문에 기사로 게재되며 위안부 사건은 점차 실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으로 시작된 피해자들의 숱한 증언들로 위안부 문제는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었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 ⓒ 김순덕의 ‘끌려감’(1995)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할머니들을 위하여 ‘나눔의 집’에서는 한글 교실과 함께 그림 교실을 시작하여 할머니들의 그림과 손글씨 등을 기록물로 남겼다. ‘끌려가는 조선처녀(이용녀)’, ‘고향생각(배춘희)’, ‘태워지는 처녀들(강일출)’, ‘책임자를 처벌하라 평화를 위하여(강덕경)’ 등의 그림들은 다른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과 함께 2013년 12월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되었다. 이 외에도 위안부에 관한 시와 만화들은 그 당시의 상황을 더욱 뼈아프게 전달해 준다.
우리 정부에서는 1993년 6월 11일 ‘일제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했고, 2002년 12월 11일 ‘일제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로 그 명칭을 변경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사람은 238명이며, 이 중 47명만이 생존해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 박재현 씨는 “힘도 없는 약자인 나라를 탄압하는 일본인들에게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일본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과하기를 바란다”며 분노를 표했다. 정부와 여성가족부가 이러한 문제를 담당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조금씩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작은 관심들이 모여 할머니들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