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경기人]은 기억에 남을 사연의 주인공이거나 이색적인 경력을 가진 경기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기획시리즈입니다. 열 한번째로 국내 최초 한국형 와인을 개발해 ‘제22회 경기도 농어민대상’ 농업 6차산업화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그린영농조합법인 김지원 대표이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김지원 그린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가 3일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그린영농조합 그랑꼬또 와인 전시실에서 국내 최초로 개발, 출시한 그랑꼬또 와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511/20151103162628176404554.jpg)
김지원 그린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가 3일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그린영농조합 그랑꼬또 와인 전시실에서 국내 최초로 개발, 출시한 그랑꼬또 와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경기G뉴스 허선량
“보쌈, 김치전, 아구찜, 칼국수…. 꼭 막걸리, 소주랑 어울린다는 법 있나요?”
우리나라 애주가들이라면 술 한잔 떠올리며 입맛을 다실 법한 한국요리들을 열거하던 그린영농조합법인 김지원(50) 대표이사는 자신있게 레드와인 한 잔을 내 왔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달착지근한 맛에 고급스러운 디자인 라벨까지 갖춘 ‘그랑꼬또 M56’을 김지원 대표이사는 ‘내 자식 같다’고 표현했다. 2000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15년여간 한국형 와인을 연구·개발해 온 그의 비유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대부도가 고향이고, 아버지 때부터 포도농사를 지었어요. 잘 돼가다가 90년대 말부터 가격이 떨어져 고민이 많았죠.”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농협에 다니던 그는 대대로 해오던 포도농사가 어려워지자 포도 가공사업을 구상했다. 포도나 포도즙 등 일부 가공품만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던 상황에서 김 대표가 고안한 아이템은 ‘와인’.
“워낙 술을 좋아해요, 술은 가리지 않아서 와인도 즐겼는데, 당도 높기로 유명한 대부도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죠.”
“다들 ‘신토불이 한국’에서 무슨 와인이냐며 말렸다”며 웃는 그 역시 처음엔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특히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가공사업이라고는 포도즙 정도였던 대부도 포도 농가에 ‘와인’이라는 생소한 아이템으로 협조를 구하는 일도 어려웠다.
하지만 김 대표는 개의치 않았다. 사업계획서를 들고 경기도청과 농촌진흥청에 찾아가 거절당하기를 몇 차례, 노력 끝에 시·도비를 투자받아 2000년 이태리에서 포도 가공시설물을 들였다. 2001년과 2003년에는 주류면허, 와인 제조면허를 취득해 본격적인 ‘대부도포도산 한국형 와인’ 연구에 돌입했다.
8년 넘는 맛 연구와 시장조사 결과,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향과 대부분의 한국 음식들과 어울리는 맛을 알아냈다. 대부도 포도의 최대 장점인 높은 산도를 이용한 달콤한 맛과 산뜻한 향이 제격이었다. 육류 메뉴에 어울리는 떫은 맛의 수입산 와인에 비해 담백한 한식 메뉴에 어울리는 향기로운 단맛은 많은 와인 애호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32개 농가를 조합원으로 한 대부도 그린영농조합은 2001년 첫 시범 와인 생산을 시작으로, 2003년 마침내 ‘그랑꼬또’라는 이름의 ‘국내 최초 한국형 와인’을 탄생시켰다.
지난 2009년에는 와이너리(와인 양조 공장)를 확장, 이전했다. 현재는 10톤 발효, 저장탱크 12조, 5톤 2조 등과 주입기, 압착기, 여과기, 예열기 등을 갖췄다.
![대부도 포도를 원료로 만든 그린영농조합 그랑꼬또 와인들.](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511/20151103163223126239170.jpg)
대부도 포도를 원료로 만든 그린영농조합 그랑꼬또 와인들. ⓒ 경기G뉴스 허선량
김 대표는 특히 이 와이너리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한 와인 양조장이 아닌, 대한민국 와인 역사를 만드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언젠가는 세계 어느 와이너리와 비교해도 당당히 겨룰 수 있도록 성장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그린영농조합원들이 경작하는 포도밭은 600㏊, 대부도 전체 면적의 30%에 해당한다. 특히 청정한 자연 속 포도농장에서 먼지와 벌레가 끼이지 않도록 일일이 종이봉투에 씌워 키우는 포도 한송이 한송이는 외국인 소믈리에나 관광객들에게 큰 볼거리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와인은 연간 10만 병 정도다. 국내 각지에서 몰린 예비 소믈리에, 와인 애호가, 관련 학과 학생, 외국인 관광객까지 매년 1만여 명이 다녀간다.
현재 출시된 와인은 그랑꼬또 레드와인·화이트와인·로제와인·M56·M5610·아이스와인 등 5종. 출시와 더불어 2007년 제1회 한국 전통주 품평회 동상 수상에 이어 지난해에는 그랑꼬또 M5610과 아이스와인이 ‘아시아 와인 트로피’ 은상을 차지하는 등 세계 와인 애호가들에게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형 와인’의 승승장구로 기쁘기만 할 것 같은 김 대표에게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그는 “우리 와인 이름인 그랑꼬또(Grand Coteau)는 큰 언덕이라는 뜻이다. 서해안에서 제일 큰 섬인 대부도가 큰 언덕처럼 보인다는 전해오는 이야기에서 착안했다”고 설명하며 “우리나라 여러 군데에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반응이 정말 좋은데, ‘대부도 와인’이라는걸 밝히면 다들 꺼려했다”며 “외국 와인만 좋다는 편견을 처음부터 이기기 어렵더라. 할 수 없이 대부도를 뜻하는 프랑스어 이름을 붙였다”고 털어놨다.
이어 “15년 가까이 안산시, 농촌진흥청, 경기도, 도 농업기술원, 한국 국제 소믈리에 협회 등 모든 기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이제는 자신감이 붙었다”며 “한국형 대부도 와인에 걸맞은 예쁜 우리나라 이름을 지어 디자인 중이다. 곧 라벨로 만들어 출시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지원 대표이사는 인터뷰 내내 와인병을 어루만지며 ‘내 자식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자식들을 잘 돌봐주는 부모가 필요하다”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딛고 제품을 만들었지만, 판로 개척이나 수익으로 이어지는 길은 여전히 좁다. 경기도를 비롯해 많은 행정기관의 전폭적인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현재 그랑꼬또 와인을 사려면 그린영농조합법인에 직접 방문하거나 인터넷 홈페이지, 우체국 홈쇼핑 등 한두 군데에서 온라인 구매를 해야만 하는 형편이다.
매일 몇 번이고 와이너리에 들러 발효, 숙성, 저장과정을 둘러보는 김지원 그린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의 포부는 단 한 가지다.
“수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외국산 와인 시장을 단번에 이긴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에 못지않은 우리만의 전통과 장인정신으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맛과 향을 지닌 와인을 만드는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지원 대표이사가 와이너리에서 제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511/20151103163223106424054.jpg)
김지원 대표이사가 와이너리에서 제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경기G뉴스 허선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