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원 템플스테이 공식포스터. ⓒ 경기도 제공
매일 아침 만원(滿員) 지하철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면 복잡한 도시가 펼쳐진다.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와 다양한 소음을 듣다 보면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의 삶이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에서일까?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Templestay)’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 같은 트렌드에 발맞춰 경기도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불교문화사업단, 경상북도관광공사와 함께 가을 관광주간을 맞아 내·외국인들에게 1만원에 1박 2일 템플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는 ‘행복만원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다. 10월 19일부터 11월 1일까지 14일 간 내·외국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남양주시 수진사, 고양시 흥국사, 용인시 법륜사, 양평군 용문사, 가평군 백련사 등 경기도 내 13군데 사찰을 비롯해 전국 75곳의 사찰이 참여했다.
알찬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이번 템플스테이는 1박 2일 코스 1인 1만원, 당일 템플스테이는 1인 5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이 시작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호응에 힘입어 10월 5일 오전 11시부터 템플스테이 공식 홈페이지(fall.templestay.com)를 통해 시작된 예약은 조기 마감되면서 뜨거운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실제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단풍이 곱게 물든 10월의 마지막 날,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수진사를 찾아가, 1박 2일 동안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보았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 한다.
행복만원 템플스테이, 남양주시 수진사에 가다
수진사에는 화강암으로 된 길이 11m의 와불상이 모셔져 있다. ⓒ 한아린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천마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수진사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대중교통으로도 방문이 가능하다. 도심에서 멀진 않지만 수진사로 오르는 길 너머로 펼쳐지는 천마산의 붉은 단풍을 보는 순간 답답한 도시로부터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템플스테이를 신청하면서 가장 걱정한 것은 숙소와 화장실이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불편하지는 않을까 걱정한 것이 우스울 만큼 깨끗한 숙소는 ‘절에 온 것이 맞나’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절에서 제공하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드디어 템플스테이를 하러 온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반갑습니다
연화세계로 이어지는 108계단. ⓒ 수진사 제공
수진사 템플스테이는 자기소개로 시작됐다. 8살 난 아이부터 일흔이 넘은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1박 2일의 짧은 인연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을 통해 ‘옷깃 한 번 스치는 것도 전생에서 500겁의 소중한 인연이 있어야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불교 사상을 떠올리게 했다. 모두의 소개가 끝나자 스님은 참가자들에게 염주를 하나씩 나눠주며 반갑게 맞이했다.
자기소개를 마친 뒤 1박 2일 동안 생활하게 될 수진사의 곳곳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진사에는 국내 최대의 열반상인 와불상이 자리 잡고 있는 ‘연화세계’가 조성돼 있다. 이 연화세계에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원통문(해탈문)’이다.
사찰의 첫 문을 일주문이라 하고 그 문을 지나면 천왕문, 해탈을 구하고자 하는 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불이의 경지인 원통문이 나오게 된다. 원통문을 지나고 나면 완전한 불법(佛法)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원통문을 지나 번뇌의 숫자 108개로 이뤄진 계단을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디뎌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연화세계에 다다르게 된다. 연화세계에 도달해 고개를 들면, 11m에 달하는 와불상을 만날 수 있다. 부처의 얼굴에 띤 미소를 보고 있자니 고달픈 사바세계를 벗어나 연화세계에 닿아있음을 실감했다.
불교의 미덕을 배우다, 발우공양
발우공양을 하는 모습. ⓒ 수진사 제공
템플스테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발우공양’이다. 낯선 발우를 앞에 두고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발우공양은 그저 식사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소리를 내지 않고 그릇을 풀고, 식사를 마친 뒤 스스로 그릇을 닦아 정리하는 과정 모두가 수행의 일부이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때론 옆 사람이 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살펴가며 발우를 펼쳤다. 이어 물, 밥, 반찬 순으로 자신이 먹을 양만큼을 발우에 덜었다. 도시에서는 음식물을 버리는 것에 크게 의식하지 않던 사람들도 ‘혹여 남기지는 않을까’, ‘내가 너무 많이 가져가면 다른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음식을 덜어가는 손길 하나하나가 신중해진다.
빠르게 먹고 치우는 인스턴트 음식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는 발우공양은 많은 교훈은 준다. 음식을 나누는 행동에서 공동체적 삶의 의미를 배우고, 욕심내지 않고 먹을 양만큼 덜어 먹는 행동에서 청빈한 삶을 경험하게 하며, 고춧가루 한 톨 남기지 않는 점에서 음식에 대한 감사함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운다.
무소유의 미학, 만다라 명상
여섯 가지 색으로 물들인 소금으로 만다라 도안을 채우고 있는 참가자. ⓒ 한아린 기자
‘명상’하면 왠지 고요한 분위기에 정좌를 한 모습이 떠오르지만, 수진사에서 만난 만다라 명상은 이러한 편견을 깨뜨린다. 만다라 명상은 신성한 단에 부처와 보살을 배치해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불화(佛畵)에 여섯 가지의 색으로 물들인 소금으로 채색해 그림을 완성하는 명상방법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잡생각이 들새도 없이 그림에 빠져들게 됐다. 손톱보다 작은 도형 안에 소금을 채우다 보니 그 어떠한 명상보다 더 큰 집중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똑같은 도안을 가지고 만다라 명상을 시작했지만 완성된 작품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서로의 작품을 구경하느라 정신없을 무렵, 만다라 명상의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뜻밖에도 만다라 명상의 끝은 집중해서 열심히 채색한 소금을 없애는 것이었다. 다들 소금을 한 곳으로 모으라는 스님의 지시에 참가자들은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었지만 무소유에 관한 스님의 말씀을 듣고는 이내 만다라 명상의 참 교훈을 이해했다.
새벽을 깨우는 108배
참가자들과 함께 새벽 예불을 드리는 스님. ⓒ 수진사 제공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지 이틀째, 도시에서는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졸린 눈을 비비며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이 계신 대광명전으로 향했다. 처음 예불에 참여한 사람도, 절에 오래 다닌 사람도 경건한 마음을 다하여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절을 시작했다. 50회쯤 지났을 무렵,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도 더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도, 포기하는 사람도 없이 묵묵이 절을 이어갔다. 혼자서는 어려웠을 108배이지만 스님의 목탁소리와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이기에 처음 도전한 108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수진사 행복만원 템플스테이 참가자와 지도스님. ⓒ 수진사 제공
1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도심 속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푸른 가을날을 즐길 수 있는 휴식을 제공함과 동시에 불교의 다양한 체험을 통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행복만원 템플스테이 이벤트는 종료됐지만 5~7만원을 지불하면 수진사에서는 앞서 소개한 체험 외에도 유서쓰기, 새벽 천마산 산행, 스님과의 다과시간, 간식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수진사뿐만 아니라 경기도 내 13군데 사찰에서 템플스테이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낭만이 있는 가을의 끝, 도시를 벗어나 템플스테이에 도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