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미술관, 너 거기 있었니?
‘미술은 어렵다. 작품 앞에 서서 아무리 쳐다봐도 잘 모르겠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미술은 책이나 음악, 영화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예술임이 분명하다. 미술관은 멀리 찾아가야 하는 곳에 있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 마음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우리 사는 곳 가까이 숨은 미술관이 있을 수도 있다. 그 곳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우리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렵고 지루하다고만 느꼈던 ‘엄숙한’ 미술관을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친근한 문화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꿈기자는 그런 바람을 담아 미술관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꿈기자가 사는 고장에서 가까운 미술관 세 곳을 차례로 소개하고, 현재 각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도 함께 소개한다.
<기획 1>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지난 10월 8일 수원 최초의 시립 미술관인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3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문을 열었다. 화성행궁 옆에 자리한 미술관은 현대산업개발이 3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짓고, 수원시에 기부한 것이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전경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지상 2층, 지하 1층에 5개 전시실과 2개 전시홀을 갖추고 있으며 규모 면에서는 우리나라 도립, 시립 미술관 중 다섯 번째로 크다. 회색 콘크리트와 유리로 지어진 시립미술관의 현대적인 외관은 200여 년 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화성행궁과 대비되어 전통과 현대의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1층 포니정 홀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이 ’포니정 홀’이다.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수원화성을 지은 정조대왕과 현대 포니자동차를 개발한 정세영 사장의 조형물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이 공간 역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미술관 로비를 활용한 세계 각국 의상 전시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개관전에는 유명한 작품도, 유명한 작가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수원 지금 우리들’ 이란 주제로, 수원 지역 작가 114명의 작품 347점이 전시장 1, 2층에 빼곡히 걸려 있다. 제1전시실은 수원지역미술의 뿌리가 되는 원로작가들의 작품들로, 제2전시실은 중견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명사를 초대하는 거창한 개관전보다는 일상의 소소함을 나누기 위한 미술관의 기획의도가 엿보인다.
수원시민의 애장품들이 전시된 제3전시실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제3전시실에는 지난 8월 한 달간 공모한 수원시민의 애장품이 전시됐다. 시민들은 오랫동안 간직해 온 각자의 추억 한 귀퉁이를 보내주었고, 그 추억은 미술관에서 하나의 역사로 되살아 났다. 피난길에도 꿋꿋이 이고 온 나무 다듬이, 누렇게 변한 엄마의 사진,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물건 등 70여 점의 애장품들이 관람객들을 추억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신풍초등학교의 빛바랜 졸업앨범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화성행궁 옆에 자리한 신풍초등학교 분교의 120년 역사를 보여주는 애장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광교로 이전한 신풍초 본교에 다니는 꿈기자는 더욱 눈 여겨 보았는데, 빛이 바랜 전교 학생회장 임명장과 상장, 졸업앨범 등 정겨운 기록들이 가득했다.
수원 미술사 아카이브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2층으로 올라가면 수원미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수원미술사는 1896년 나혜석의 출생에서부터 2013년 수원 세계 생태교통축제에 이르기까지 벽면을 따라 붙여져 있는 낡은 행사 포스터가 이채롭다.
1982년에 열린 전시전 포스터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제4전시실에는 전통적 장르와 형식을 벗어난 새롭고도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평소 떠올리는 미술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이용한 작품들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제5전시실에서는 수원 미술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하게 얼굴의 명암을 표현한 황종명의 Media-Lique. ‘그림 속의 사람은 작가 자신일까?’ ‘작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걸까?’ 어쩌면 그렇게 천천히 작가의 말을 곱씹어 보며 그림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 미술관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전시실뿐만 아니라 카페, 도서관, 옥외 전망대 등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다양한 공간이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관람객들을 위한 이야기 공간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미술관 관람 후기를 남길 수 있는 공간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앞으로 연간 30억의 예산을 들여 전시만 하는 미술관이 아닌 ‘열린’ 미술관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미술관 앞 스트리트아트’, ’전시감독과 함께하는 <알기 쉬운 현대미술여행>’, ‘어르신 그림 놀이합시다’ 등 현재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만 봐도 ‘시민들과 함께 하는 미술관’임을 알 수 있다.
옥외정원에서 내려다보이는 화성 행궁의 야경 ⓒ 김도현/꿈나무기자단
미술관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마지막으로 올라간 옥외정원에서 뜻밖의 아름다운 야경이 또 하나의 작품처럼 꿈기자를 맞아주었다. 화성행궁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미술관이, 또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에게는 화성행궁이 서로 다른 분위기로 다른 볼거리를 선물해 줄 것이다.
굳게 마음먹지 않더라도 그냥 심심할 때, ‘오늘은 미술관이나 가볼까’ 하고 가볍게 나설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이곳에 자주 들르면서 수원 지역 미술인의 이름도 한 명쯤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점점 미술과 친해지고, 미술 작품을 볼 줄 아는 안목도 생기는 것 아닐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수원 최초의 시립 미술관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수원시민들의 삶 가까이 다가가길 기대해 본다.
*관람 시간 : 10:00 ~ 18:00 (매주 월요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