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희 국악관에는 지영희 선생이 개조해 만든 국악기와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511/20151119134653047452610.jpg)
지영희 국악관에는 지영희 선생이 개조해 만든 국악기와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 이서연/꿈나무기자단
꿈기자는 지난 15일 평택호에 위치한 지영희국악관에 다녀왔다. 평택은 예부터 한국 소리의 본고장으로 국악의 전통이 매우 깊은 고장이다. 이 고장 출신인 지영희 선생의 업적을 알리고자 지난 8월 26일 지영희국악관이 문을 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예능보유자인 지영희 선생은 1909년 9월 경기 평택군 포승면 내기리 무속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여러 종류의 국악기들을 접했고, 그 덕분에 한국악기에 능통했다.
지영희 선생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업적은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우리 민요를 7년간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돌며 흩어진 우리 음악을 찾아 모아 오선지에 담아낸 것이다. <강강술래>, <매화타령>, <정선노래>, <5광대 춤노리> 등 수백여 곡에 달하며, 그 덕분에 우리 민요가 오늘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구전민요를 모으기 위해 지영희 선생이 전국을 타고 다니던 자전거](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511/20151119134653045470245.jpg)
구전민요를 모으기 위해 지영희 선생이 전국을 타고 다니던 자전거 ⓒ 이서연/꿈나무기자단
두 번째 업적은 1965년,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한 것이다. 국악기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음악은 한계가 있어, 그는 악기를 개조하여 서로 다른 소리를 내어 화성을 낼 수 있게 했다. 또한 서공후과 대공후, 해금과 대해금이 탄생했고, 모듬 북의 향연인 <고전별곡>이 그의 손에서 탄생하였다. 세 번째 업적은 국내에서 홀대받는 국악을 1972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공연하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1972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연주하는 모습.](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511/20151119134653049027128.jpg)
1972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연주하는 모습. ⓒ 이서연/꿈나무기자단
이곳에는 지영희 선생의 유품악기와 녹음기 그리고 모든 국악기에 능통한 지영희 선생이 만들어 국악교육의 교본이 되고 있는 해금교본, 피리교본, 아쟁교본, 대금교본 등이 있다. 또한 지영희 선생의 대표곡인 <만춘곡>과 <휘모리> 등의 악보, 카네기홀 공연 영상과 기념음반, 신문기사가 전시돼 있고, 선생이 타고 다니던 자전거도 전시돼 있다.
이번 취재는 우리 민속 음악의 아버지, 지영희 선생과 우리나라 국악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지영희 선생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알 수 있도록 여라 프로그램이 운영되기를 기대한다.
![꿈기자가 해설사와 인터뷰하고 있다.](https://gnews.gg.go.kr/OP_UPDATA/UP_DATA/_FILEZ/201511/20151119134653067917330.jpg)
꿈기자가 해설사와 인터뷰하고 있다. ⓒ 이서연/꿈나무기자단
< 해설사 인터뷰 >
Q : 지영희 선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A : 우리 민속 음악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Q : 지영희 국악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 방문객에게 해설을 해 준다고 할 때 거절하면 서운하기도 했다.
Q :지영희국악관 방문객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입니까?
A : 모든 방문객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