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하면 산천어축제, ‘보령’ 하면 머드축제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두 지역의 축제는 어느덧 자국민들만 즐기는 축제에서 외국인들까지 찾아오는 축제로 성장했다.
올해 1월 화천산천어축제에는 5만3천여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총 15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으며 880억 원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군사도시, 강원도에 위치한 작은 군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화천을 겨울축제의 도시, 지역축제 모범의 도시 이미지로 전환해 도시브랜드 상승효과도 거두는 성과까지 보였다.
이처럼 지역의 특산물, 문화 등을 알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국의 많은 지자체들이 나서서 지역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덕분에 우리는 일 년 내내 전국 어디서나 다양한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역의 특색과 개성 없이 획일화된 축제와 그저 축제를 개최하면 많은 사람들이 몰리겠거니 하는 식의 본질을 잊은 축제들이 여기저기 난립하면서 지자체의 예산낭비, 지역축제 품질의 하향평준화는 물론 도리어 지역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작용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저 품질의 축제는 축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실망감과 불편만 주고 결국 축제의 지속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단발적인 행사로 끝나 지역민에게조차 외면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이런 저 품질 축제의 홍수 속에서도 꿋꿋이 지역 그리고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커가는 축제들이 있다.
최형근 경기농림진흥재단 대표이사가 축사를 전하고 있다. ⓒ 배준호 기자
지난 21일 오전 10시, 기자가 찾아간 고양시 화정역 광장에서는 ‘경기도 도시농업 한마당’ 이라는 지역축제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경기도와 경기농림진흥재단이 공동주최하고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가 주관하며 고양시가 후원한 ‘2015 경기도 도시농업 한마당’은 지난 14일 안산 문화광장에서, 21일은 고양 화정역 광장에서 시민들을 맞았다.
축제장을 처음 마주했을 땐 작은 규모에 실망감이 들었다. 심지어 개막식이 열리는 장소도 무대나 단상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저 광장 한 쪽에 현수막과 의자 몇 줄이 놓인 게 전부였다.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저 그런 지역축제가 아닐지에 대한 우려가 들기 시작했다.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김치를 담그고 있다. ⓒ 배준호 기자
하지만 그 우려는 행사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먼저 기자에게 연락을 해서 축제 취재를 돕겠다는 담당 공무원, 개막식을 지켜보는 시민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팸플릿을 나눠주던 스태프, 축하 공연을 위해 밤낮없이 연습한 사물가락을 신명나게 풀어내던 지역주민들, 소박한 행사장이지만 진심으로 축제를 사랑하고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를 나누던 축제 참가자들의 모습에서 진심을 담은 지역축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아보이던 축제장도 속은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여느 축제장에서 으레 찾아볼 수 있던 축제와 관련 없는 콘텐츠 또는 과도한 외부업체의 참여는 축제의 본질을 흐리던 기억뿐이었지만 이곳은 달랐다. 주관인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가 중심이 되어 ‘토종씨앗’, ‘지렁이’, ‘흙’ 등 농업 관련 콘텐츠로 구성한 행사장은 축제 본연의 테마를 찾기에 충분했다.
식생활교육고양네트워크가 마련한 부스에서 할아버지와 어린아이가 평소 즐겨먹는 채소를 고르고 있다. ⓒ 배준호 기자
더불어 경기도 도시텃밭 공동체 프론티어, 식생활교육고양네트워크 등 지역단체 및 공동체와 지역 기업들로 꾸려진 전시, 체험, 판매장은 지역 공동체가 하나 되어 만든 축제라는 인상을 주어 일방적인 관 주도하에 이뤄지던 일부 타 지역의 축제와는 사뭇 달랐다.
이런 축제 구성원들의 진심이 통했는지 축제를 찾은 관람객들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화정역 거리를 지나다 아이와 함께 찾은 한 시민은 “행사장에 가보면 도우미까지도 이미 다 지쳐있어 서로 기분 상하는 일들이 어느 정도 있는데 여긴 그런 모습 없이 다들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시니 훨씬 알찬 느낌이 든다”고 만족감을 전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일부러 찾아온 관람객들은 물론 지나가던 시민들도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배준호 기자
이렇듯 축제는 축제 자체의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물론 구성원 모두가 먼저 즐거운 마음으로 진심을 다할 때 찾는 관광객들 역시 기분 좋게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단순히 복제식의 축제, 일방적인 주도하 이뤄지는 축제들은 그 규모가 크더라도 축제가 아닌 그저 행사로 불리며 끝날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도 최근 이런 지역축제의 한계를 인지하고 극복하기 위해 축제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지역이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여기저기서 전해져온다. 경제적 효과 강조와 같은 사업적 목적이 아닌 콘텐츠 중심, 지역주민의 참여 등 축제의 본말에 대해 고민하고 권위적인 내빈용 행사 등을 폐지, 관광객 참여형 개막 행사 등으로 재편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화천산천어축제와 보령머드축제의 성공비결은 콘텐츠와 지역 참여라는 축제의 본질을 가장 잘 실천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경기도 도시농업 한마당’과 같이 지역축제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현장이 늘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