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꿀을 가미한 달콤한 감자칩부터 케이크, 견과류까지…. 그야말로 벌꿀 전성시대다. 올 한 해 제과업계에는 때아닌 ‘허니’ 열풍이 시장을 강타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앞서 출시된 허니 제품이 있다. 바로 지난 2011년 경기도에서 벌꿀로 만든 ‘허니와인’이다.
올해 첫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던 지난 3일,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왕창리에 위치한 아이비영농조합법인에서 만난 양경열(62‧사진) 대표는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육각형의 벌집모양이 그려진 와인병을 꺼내들고 왔다. 2011년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양평 아이비영농조합법인에 제조기술을 이전해 2012년 출시한 ‘허니와인’이었다.
허니와인은 100% 국내산 벌꿀로 만든 8%의 스위트 와인을 인정받아 그동안 경기도지사상(2011)을 비롯해 우리술 품평회 수상(2012~2015), 몽드셀렉션 금상 수상(2015)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보통 술은 과실즙이라 목 넘김이 끈적끈적하거든요. 이 술은 목 넘김이 부드럽고 뒷맛이 깔끔해요.” 양 대표는 와인 한 잔을 따른 후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양경열 아이비영농조합법인 대표. ⓒ 경기G뉴스 유제훈
늦깎이 양봉남, 봉산물 매력에 빠지다
양 대표가 처음 양봉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인천에서 식품유통업을 하던 그는 ‘몸에 좋은 꿀을 따먹자’는 생각으로 벌통을 사서 벌을 쳤다. 3일에 한 번 꿀 1리터가 나왔다. 로또를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양봉사업을 할 곳을 찾아 나섰고, 물 맑고 공기 좋은 양평으로 귀농했다.
하지만 벌에 ‘벌’ 자도 몰랐던 그는 시작부터 난관에 빠졌다. 기술이 없다 보니 벌이 굶어 죽어갔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양봉농가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벌통을 옮기다 목 디스크가 생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위기가 기회를 낳았다.
“한의원에서 ‘봉독(봉침액)’으로 치료효과를 봤어요. 뭐가 있겠다 싶었어요. 경기도농업기술원에 찾아가서 항생제 대체물질로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죠.”
결국 양 대표는 농촌진흥청과 경기도농업기술원의 기술지원으로 ‘디지털 봉침액 채집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양봉산물 가공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2007년 양봉연구회원들과 아이비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게 됐다.
양경열 대표가 발효실에서 와인이 제대로 숙성돼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 경기G뉴스 유제훈
100% 국산 벌꿀로 만든 허니와인의 탄생
봉침액 개발에 성공한 양 대표는 다시 한 번 경기도농업기술원에 찾아갔다. 2009년 벌꿀 풍년이 들어 쌓인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재고가 넘치니 고민이 쌓여갔어요. 그러던 차 ‘꿀로 술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죠. 벌꿀에 2~4배 정도가 되는 물을 넣어 살균한 다음, 포도주 효모를 섞어 몇 개월 놓아두면 발효가 된다는 점을 어필했더니 설득할 수 있었어요.“
양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인 농기원은 양 대표와 공동으로 연구에 들어갔다.
그러나 개발 과정은 평탄하지 않았다. 첨가물 없이 벌꿀과 물만 넣고 술을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제조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기 때문에 통일된 맛을 찾기가 만만찮았다.
양 대표는 “당시 버린 꿀만 해도 엄청나다. 아마 몇천 리터는 족히 넘을 것”이라며 “농기원 연구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갖은 노력 끝에 허니와인은 제조방법을 변형해 밑술에 국산 벌꿀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탄생했다. 허니와인은 8%의 높지 않은 도수로 달콤함과 깔끔함을 모두 추구, 식감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 대표는 이 시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이해해주고 지켜봐준 가족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수간호사로 일하던 집사람이 양평으로 오기 전 즈음 공무원시험을 봤어요. 나이 마흔이 넘어서 산속에서 살고 하니까 안정적인 걸 해야겠다 싶었던 거죠. 지금 양평군청 보건소에 있어요. 묵묵하게 말없이 제가 하는 일에 반대하지 않고 지켜봐줘서 참 감사해요.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도 저 때문에 이 술을 참 많이 마셨어요. 시음을 해야 하니까요.(웃음)“
양경열 아이비영농조합법인 대표가 허니와인 완제품을 들고 있다. ⓒ 경기G뉴스 유제훈
제2의 도약을 꿈꾸는 허니와인
올해 양 대표는 ‘2015 G-Fair Korea’를 비롯해 아시아 최대의 식품 박람회인 ‘2015 푸덱스 재팬(Foodex Japan)’, ‘2015 상하이국제식품박람회(SIAL CHINA 2015)’ 등에 참가했다. 이는 허니와인의 우수성을 소비자와 국내·외 바이어들에게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됐다.
“행사장에서 시음회를 했는데, 불쑥 어르신 한 분이 제게 ‘고맙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술을 만들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봉산물을 만들고 나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어요.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어려움은 없을까. 양 대표는 애로사항인 ‘손톱 밑 가시’로 설비시설공간과 판로를 꼽았다. 허니와인에 대한 입소문이 나고 있지만, 대량 생산설비시설이 없어 놓친 고객이 적잖다.
“해외수출 관련 상담은 메일로 주고받는데, 도농기원에서 어학을 할 수 있는 분들이 조금씩 도와주고 계세요. 무엇보다도 숙성할 수 있는 보관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힘이 듭니다. 보관시설을 확충하면 월 4~5천병은 쉽게 생산할 수 있는데 현재로선 어렵습니다.”
양 대표는 다가오는 2016년을 도약의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현재 아이비영농조합은 허니와인에 이어 도수가 높은 허니 증류주 개발을 끝내고 출시를 앞두고 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정직하게 나아갈 겁니다. 양봉을 통해 얻은 봉산물은 하늘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입니다. 정말 제대로 된 한국의 명품 명주(名酒)로 기억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