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는 연극, 음악, 무용, 공예기술 등 형체를 헤아릴 수 없는 문화적 소산으로, 그 기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지정 대상입니다. 무형문화재에는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와 시·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있습니다. 경기도는 최근 경기고깔소고춤·불화장·잿머리성황제·시흥군자봉성황제 등 4건을 도 무형문화재 제56호~59호로 지정·고시했습니다. 이번 고시로 경기도 무형문화재는 모두 51개 종목 49명 보유자가 등재됐습니다. 이번에 새로 지정된 경기도 무형문화재의 면면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경기G뉴스>는 기획기사(4회)를 연재합니다. 첫 번째는 제56호 경기고깔소고춤 보유자 정인삼(73) 옹입니다.[편집자 주]
지난 11월 20일 경기도 무형문화제 제56호로 고시된 경기고깔소고춤 보유자인 정인삼 선생이 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경기G뉴스 유제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한국 전통춤을 이야기할 때 쉽게 떠오르는 조지훈 시인의 ‘승무(僧舞)’다. 섬세한 언어의 연결이 승무로 그려지는 아름다운 선을 상상하게 만든다.
진지하고 무게감을 가진 승무뿐만 아니라 화려한 궁중무용과 민간으로부터 내려온 민속무용도 우리가 자랑할 만한 전통춤이다. 농악에서 추는 민속무용의 하나인 고깔소고춤 역시 흥과 멋을 뽐내며 21세기에도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11월 20일 경기고깔소고춤을 도 무형문화재 제56호로 고시했다. 이 춤의 보유자로 인정된 정인삼(73) 선생은 조선 후기의 예능인 기구인 화성재인청 출신 이동안 선생과 정경파 선생에게 춤을 전수받은 정통 예인이다.
경기고깔소고춤은 우리 민족의 가장 기본적인 악기인 소고(小鼓, 작은북)가 사용되며, 남성 춤으로써 원시적인 축원의식의 가무 형태에서 점차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악에서 고깔을 쓰고 놀이하는 전통이 경기북부와 동부 지역에서 일부 확인된다. 특히 경기고깔소고춤은 화려한 예술로 승화된 다른 고깔소고춤과는 차별을 둔 소박함이 특징이다.
용인 한국민속촌 근처에는 정인삼 선생과 제자들의 숙소가 마련돼 있다. 정인삼 선생은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며 연습실로 안내하고, 경기고깔소고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
“농악놀이에서 제일 인기 있는 게 소고춤이에요. 꽹과리, 장구를 몇 개 치는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소고는 8법구라고 8명이 서야 한다고 정해져 있어요. 소고가 없으면 잘 치는 농악이 아니라고 할 정도죠.”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무용 경기고깔소고춤을 추고 있는 정인삼 선생. ⓒ 정인삼 선생 제공
정인삼 선생은 이러한 경기고깔소고춤을 1970년대 이동안 선생을 만나면서 배우게 됐다. 화성재인청 이동안 선생은 경기도 춤을 모두 보유한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30가지 이상의 전통춤을 보유한 이동안 선생은 거슬러 올라가면 김인호 선생의 제자다. 용인에 살았던 김인호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춤추는 사람이라고 최초로 기록된 인물. 정인삼 선생은 춤을 전승하는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동안 선생에게 춤을 배웠다.
정인삼 선생이 계보를 이어나가는 화성재인청은 8도 재인청을 총괄하는 조직이었다. 임금이 계시는 곳에서 큰 행사가 있거나, 외국 사신이 올 때 놀이 주관을 화성재인청에서 했다. 정인삼 선생에 의하면 지금은 없는 이 화성재인청을 보통 경기재인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기재인청에서 보유한 음악이나 예술적 가치는 대단히 중요해요. 더 많이 지정을 해주셔야합니다. 특히 소고는 세종대왕 때 여진과 전쟁을 해서 노획한 노획물 중 ‘소고도 한 점 있다’고 보고하는 문서 속에 최초로 나와요. 소고는 여러 곳에 사용한 것 같습니다. 악기뿐 아니라 군물(풍물놀이)도 되고, 악기며, 춤추는 무구(舞具, 춤출 때 사용하는 도구)예요. 소고는 우리 민족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놀 수 있는 보편적인 악기죠. 이걸 문화재로 지정한 곳이 어디에도 없었어요. 이번에 경기도에서 최초로 소고춤을 지정해줘 역사적, 문화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번 경기고깔소고춤의 무형문화재 지정은 많은 재인(才人, 광대 일을 하는 사람)이 있던 화성재인청의 계보를 잇는 명인의 춤이라는 점이 큰 부분으로 작용했다. 또 이 춤이 경기도의 특색을 가진 점과 많은 제자를 키워내는 문화 계승의 측면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인삼 선생은 화성재인청 이동안 선생의 계보를 잇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경기고깔소고춤 보유자다. ⓒ 경기G뉴스 유제훈
이날 함께 동석한 정인삼 선생의 제자 양한(33) 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스승으로부터 춤을 배우고 현재는 대학교수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날도 그를 비롯한 몇몇 제자들이 악기 연습을 위해 연습실을 찾았다. 악기소리는 연습실 밖까지 울려퍼졌다.
“지금은 승무, 살풀이나 춤으로 알잖아요. 이것(경기고깔소고춤)은 남들이 보기에는 재미도 없으니 누가 잘 봐주지도 않죠. 하지만 우리 문화니까 잘 지켜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어요. 제가 우리나라에서 학교 선생이 아닌데 제자를 가장 많이 낸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여기 있는 제자 양한은 최연소로 무용 박사학위를 받았죠.(웃음)”
정인삼 선생도 언급한 승무는 사실 전문적 기예를 바탕으로 해 전수과정이 체계화되고 일반인이 접하기 어렵다. 하지만 소고춤은 민중에서 전승된 춤이라서 일반인이 쉽게 배우고 재밌게 같이 놀 수 있는 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경기도의 고깔소고춤은 다른 지역과 달리 재인들이 춰서 굉장히 체계화돼 있어요. 춤을 추는 절차가 있죠. 동작의 명칭을 말하는 술어가 경기고깔소고춤에만 붙어있습니다. 다른 데서는 그냥 춤을 추고 노는 것이죠. 경기고깔소고춤에만 있는 동작도 있어요. 거울을 보는 동작인 ‘색경북’, 다리 동작인 ‘제기북’, 실을 감는 것 같은 동작인 ‘꾸리북’ 등이죠.”
이 경기고깔소고춤을 출 때 쓰는 고깔은 전립(戰笠, 조선 시대 무관이 쓰던 모자의 하나) 위에 꽃을 얹어 췄다는 기록에도 나와 있다. 이러한 고깔은 종이로 직접 만들어 쓰기도 했다. 궁에서 춤을 추던 재인들은 정인삼 선생이 쓰는 것처럼 화려한 색으로 장식된 고깔을 썼다. 이런 화려함에 더한 흥겨움은 과거 기생들이 연회에서 여러 춤에 이어 소고춤을 마지막 ‘피날레’로 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기도만의 고유 특색을 가진 소고춤을 전승받아 제자들을 기르고 있는 정인삼 선생은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선정된 것에 대해 덤덤한 소감을 전했다.
“저는 그저 제자들이 잘되길 희망해요. 제자가 잘돼야 스승이 나중에 대우받죠. 지금 대우받기 싫습니다. 100년 후 평가받길 원할 뿐입니다.”
정인삼 선생은 용인 한국민속촌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전통춤을 가르치고 있다. ⓒ 정인삼 선생 제공
경기도 무형문화재는? |
경기도는 연극·음악·무용·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가치가 크고 향토문화보존에 필요한 것을 지정하기 위해 ‘경기도지방문화재보호조례’를 1971년 제정했다. 무형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면, 3인 이상의 전문가의 조사를 바탕으로 종목지정 가치에 대한 문화재위원회 심의 추진 → 가결 시 보유자 60일간 공모 → 종목 공모자에 대한 현지 기량 평가 심사 →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의결 및 의견조회 등을 통해 확정, 지정된다.
지정 방법은 해당 주소지 관할 시·군 문화재 부서에 신청하면 된다. 기간은 상반기는 1~2월, 하반기는 5~6월로, 각각 2개월간 접수 운영된다.
경기도의 무형문화재는 이번 고시로 모두 51개 종목, 49명의 보유자가 지정됐다. 도는 무형문화재 보존전승 활동을 위해 보유자에게 매월 120만 원(단체 80만 원)의 전승지원금을 지원한다. 또 전수교육 조교에 월 50만 원, 보유단체에 월 80만 원(도 30%, 시·군 70%)이 지급된다. 뿐만 아니라 공개행사 비용으로 개인 100~150만 원, 단체 200~500만 원도 지원된다.
도는 지난 11월 27일부터 내년 1월 26일까지 경기소리(제31호)(휘몰이잡가), 과천무동답교놀이(제44호), 김포통진두레놀이(제23호)와 야장(미지정 종목), 자리걷이(미지정 종목) 5개 무형문화재 종목 보유자를 모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