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일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와 그 앞쪽에 자리 잡은 심사위원들,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던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해피래빗쇼(HAPPY RABBIT SHOW) 박병선 대표 ⓒ 김기남 기자
이날 현장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온라인 게임 콘텐츠를 가리는 ‘경기도 아이디어 부문 게임창조오디션’이 개최됐다. 총 10개 팀이 본선 무대에 올라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게임 아이디어를 발표했고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각 팀의 발표가 끝날 때마다 청중 평가단이 채점한 점수도 현장에서 바로 공개됐다. <슈퍼스타K> 못지않은 열기와 긴장감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달포가 흐른 지난 1월 19일, 오디션의 주인공 중 한 명을 다시 만났다.
공개 오디션으로 현장 반응 실시간 확인
‘Happy&Smile : City of fighting’으로 게임창조오디션에서 1등을 거머쥔 ‘해피래빗쇼(HAPPY RABBIT SHOW)’의 박병선(38) 대표였다. 그는 여전히 오디션 현장에서의 떨림과 긴장감이 생생하다고 했다.
“게임을 심사해 지원해주는 제도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녜요. 그런데 이렇게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진행하는 곳은 경기도가 처음이에요. 사실 개발자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얼마나 긴장되던지 그날 청심환까지 먹었어요.”
해피래빗쇼는 1인 기업이다. 캐릭터와 게임 개발업계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은 그는 2011년 해피래빗쇼를 설립했다.
“창업 전에는 캐릭터나 게임 관련 외주 업무를 주로 했는데 외주는 한계가 분명해요. 나만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그걸 브랜드화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더 늦으면 못할 것 같아 창업을 결심하게 됐죠.”
그동안 저축해둔 돈을 종잣돈 삼아 회사를 차렸지만 하루아침에 콘텐츠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라 창업 후에도 외주 업무를 이어갔고, 그렇게 하다 보니 콘텐츠 개발은 점차 뒤처졌다. 외주와 독자적인 콘텐츠 개발을 병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박 대표는 결국 외주를 끊고 콘텐츠 개발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피래빗쇼의 첫 작품, ‘Happy&Smile: City of fighting’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창업 4년째에 접어드니 모아둔 돈이 바닥을보이기 시작했어요. 경제적 위기가 현실로 느껴지다 보니 마음이 조급했죠. 그래서 게임을 빨리 출시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Happy&Smile : City of fighting’은 ‘더블 드래곤’이나 ‘파이널 파이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오락실 게임을 모바일에서 즐길 수 있으면서 플레이의 느낌과 재미를 보강한 게임이다. ⓒ 김기남 기자
그러던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경기도의 아이디어 부문 게임창조오디션 개최 소식을 접하게됐다. 이미 앞서 개최된 상용화 부문 게임창조오디션에 대해 알고 있던 박 대표는 ‘이거다’ 싶었다. 게임 출시를 미루고 아이디어 부문 게임창조오디션에 참가신청서를 접수했다. 서류심사를 가뿐히 통과하고 1차 비공개 오디션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20개 팀 안에 들었다. 이후 5주간의 전문가 멘토링이 이뤄졌다. 멘토링이 이뤄지는 동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20개 팀 중 최종 10개 팀만이 본선 무대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긴 과정을 거친 끝에 박대표는 최종 10개 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동안의 경력이 있으니 상위권에는 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서류심사는 그렇다 쳐도 1차 비공개 오디션, 멘토 평가까지 몇 단계를 거치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죠. 게다가 막상 본선에 진출하고 보니 게임 분야에서 쟁쟁한 분이 많이 오셨더라고요.”
북미 스타일 캐릭터와 자유도 호응
‘Happy&Smile : City of fighting’은 ‘더블 드래곤’이나 ‘파이널 파이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오락실 게임을 모바일에서 즐길 수 있으면서 플레이의 느낌과 재미를 보강한 게임이다. 조작법이 모바일에 최적화돼 있어 가벼운 터치나 제스처로 플레이가 가능하다. 여기에 자유도를 추가해 기존 게임과 차별화를 꾀했다. 쉽게 주인공인 ‘해피’가 자유롭게 도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악당을 물리쳐 영웅이 될 수 도 있지만 반대로 해피도 악당처럼 행인을 때리거나 돈을 빼앗을 수 있는 것. 북미 시장을 겨냥한 카툰 스타일의 캐릭터도 ‘Happy&Smile :City of fighting’의 특징이다.
“게임의 주인공은 해피라는 토끼예요. 토끼는 초식동물이면서 약한 이미지로 대변되죠. 이 약한 동물이 레벨업을 통해 성장하고 강해지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박 대표의 아이디어와 세계 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게임창조오디션은 찰떡궁합이나 다름없었다. 당당하게 1위 수상과 함께 5000만원의 상금을 손에 쥐었다. 상금이 주는 경제적인 여유는 덤이고 전문가 멘토링을 통해 개발자 시각에서 비즈니스적인 시각도 갖추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현업에 계신 분들로부터 게임을 출시한 이후 서비스에 대한 부분이나 시장의 흐름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중국 멘토는 중국시장에서 선호하는 캐릭터나 콘텐츠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요.”
다음 오디션 기다리는 지인 많아
그의 수상 소식을 접한 동종업계의 지인들은 다음 오디션엔 본인도 출전해보겠다며 벌써부터 준비 중이라고 한다. 문득 그가 게임창조오디션에 출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게임을 출시했을 거예요. 다만 완성도가 떨어졌겠죠. 게임창조오디션 덕분에 상금도 타고 숨통이 좀 트였어요. 급하게 출시하려던 계획을 바꿔 좀 더 디테일한 부분에도 신경을 쓰고 모바일뿐만 아니라 PC버전 출시도 계획하는 등 폭넓게 바라보게 됐어요. 빠르면 올 중반이나 연말쯤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 대표는 앞으로 ‘해피’라는 캐릭터를 활용한 시리즈 게임 출시를 구상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박 대표는 앞으로 ‘해피’라는 캐릭터를 활용한 시리즈 게임 출시를 구상하고 있다. ‘베트맨’같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를 위한 기반을 촘촘하게 다지기 위해 타이베이·미국·도쿄·독일 등 게임쇼 진출 계획을 세운 동시에 글로벌 탑 라운드에서 운영하는 프리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많은 사람이 대박을 노리지만 게임도 농사를 짓듯이 꾸준히 물을 주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해요. 정기적으로 전시회에 참가해 유저들 눈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죠. 한번에 대박이 나는 경우는 아주 드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