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주변에서는 친환경 타이틀을 내건 건축자재나 세제, 식품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흔한 게 친환경 제품이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친환경’은 사치라고 여기던 게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주)다래월드 이정옥 대표 ⓒ 서범세 기자
뽀드득 뽀드득 잘 닦이는 세정력이 구매의 최우선 요소로 작용하던 시절, 건강과 환경까지 생각하는 친환경 세제를 대표 상품으로 내건 회사가 설립됐다.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주)다래월드(대표 이정옥)다. 2001년 설립된 다래월드는 각종 세제류와 세정제 등 친환경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있다.
이정옥 대표가 친환경 세제 제조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했다.
“미국에서 백색가루 형태의 탄저균이 담긴 우편물이 배달돼 균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 시기였어요. 지인 중 한 명이 구제역 등에 대비할 수 있는 살균소독 제품을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아이디어를 줬죠. 그런데 막상 사업 아이템을 구체화하려고 보니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구제역보다 대장균이나 포도상구균 등으로 인한 식중독이 더 위험한 거예요.”
지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사업 구상은 엄마 이자 주부의 경험에서 비롯된 이 대표의 아이디어가 보강돼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주부의 경험 바탕으로 친환경에 주목
“세제나 세정제는 주부는 물론이고 일반 가정에서 온 가족이 다 함께 쓰는 제품이니까 이왕이면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극이 없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각종 세균을 제거할 수 있는 기능까지 추가해보자. 점점 욕심이 생겼어요.”
하지만 이 대표를 바라보는 주위 시선은 불안한 눈길이 대부분이었다. 뒤늦게 출발한 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사실 저도 걱정은 됐어요. 그런데 행운이 따르더라고요. 국가기술표준원으로부터 전문가 기술 지도를 받게 된 거죠.”
아무리 전문가가 기술 지도를 해준다지만 해당 분야와 전혀 관련 없는 업종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친환경 세제 전문가가 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생소한 업종을 꾸려가기가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재치 있는 비유로 대답을 대신했다.
(주)다래월드 이정옥 대표가 제품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서범세 기자
“우리 엄마들이 조리과를 나오진 않았지만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잖아요. 경험을 무시할 수 없는 거죠. 전문 연구원들이 이론적으론 더 뛰어날지 몰라도 실전은 제가 더 강해요.”
그렇게 회사를 세우고 제품을 만들고 나니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 일반 시장에는 유명 대기업에서 나온 제품들이 진을 치고 있고 소비자도 잘 알려진 대기업 제품만을 선호하는 현실에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일반 시장 진입은 어려우니 기관 쪽을 겨냥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기관에 납품하려면 조달청에 등록이 돼 있어야 하고 국가유공자나 장애인이 아닌 저 같은 일반인의 조달청 등록은 그 과정이 쉽지 않더라고요.”
신종플루로 친환경 손세정제 불티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수제품으로 선정되면 조달청 등록이 가능했던 것. 이 대표는 제품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고 친환경 제품을 만들면서 결국 조달청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다래월드에 장밋빛 미래만 펼쳐졌던 것은 아니다. 소위 대기업의 ‘갑질’ 때문에 부도 위기를 겪기도 하고 고비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국가적 위기였던 신종플루의 대유행이 다래월드엔 도약의 계기로 다가왔다. 2009년 신종플루 바이러스 때문에 손세정제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주문이 쏟아졌고 공장을 밤낮없이 가동했지만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알코올이 들어간 손세정제는 성분이 강하다 보니 피부나 뇌 손상 등의 우려가 있어 학생들이 사용하기에는 안전성이 떨어졌죠. 그래서 알코올 대신 친환경 성분이 들어간 저희 제품을 찾는 사람이 많았어요. 신종플루를 겪으며 매출이 3배 이상 뛰었어요.”
이익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새 출발
이듬해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생활협동조합인‘아이쿱’과 거래가 성사됐다. ‘친환경제품 공동구매’라는 아이쿱의 콘셉트와 다래월드의 제품이 딱 맞아떨어진 것.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다래월드는 2011년 돌연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전환했다.
“인근 장애인사업장의 예비사회적기업 신청을 도와주려다 얼떨결에 저희도 신청하게 됐어요. 예비사회적기업 신청을 해보라는 담당자의 말에 저희가 자격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충분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미 기부와 장애인 직업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사회 공헌활동, 취약계층 일자리 제공 등을 진행하고 있던 다래월드는 어렵지 않게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을 수 있었다. 이때도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들려왔다.
(주)다래월드는 직원의 절반 이상이 경력단절여성 또는 고령자다. ⓒ 서범세 기자
“사회적기업을 해산하게 되면 투자한 돈 한 푼 못 건지고 모두 다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더라며 말리는 사람도 많았어요. 하지만 죽을 때 재산을 모두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전 회사에서 월급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런 걱정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죠.”
(주)다래월드 임직원이 제품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 서범세 기자
(주)다래월드에서 생산된 제품들. ⓒ 서범세 기자
다래월드는 2011년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에 이어 2014년 5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또 한 번 도약의 기회를 얻은 다래월드는 현재 주방세제, 세탁 세제, 손세정제, 샴푸, 보디워시, 베이비 제품 등 90여 가지 품목을 생산하며 연매출 20억원을 올리고 있다. 17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은 경력단절여성이나 고령자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브랜드 파워에 밀려 매출의 90% 이상이 OEM 또는 ODM 생산 방식인 탓에 다래월드라는 기업 자체는 소비자에게 다소 덜 알려져 있다는 것. 그래서 올해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래월드’라는 상호는 제 고향인 경기도 이천의 지명과 세계로 뻗어나가자는 의미를 더해 지은 이름이에요. 상호에 걸맞게 곧 제 고향으로 사업장을 옮길 예정이에요. 이천에 부지를 마련하고 사옥 착공을 앞두고 있답니다. 또 최근 무역에도 능통한 영업사원을 신규 채용했어요. 이미 중국으로는 수출이 이뤄지고 있고 방글라데시 진출도 준비 중이에요. 2018년까지 내수 50%, 수출 50%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럼 정말 다래월드라는 명칭에 맞는 회사가 되는 거겠죠?”
다래월드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벌말로 102번길 25
031-423-0757, www.darae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