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의 비무장지대. DMZ(DeMilitarized Zone)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km, 폭 4km, 길이 24km의 지역을 말한다. 민통선 내에 있기 때문에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며, 60여 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사람의 때를 타지 않은 자연환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분단 이후 최대의 염원인 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만들어낸 공간인 셈이다. 이런 성격 탓에 DMZ는 한반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인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남지 않은 온대 원시림으로 알려져 자연환경뿐 아니라 존재 자체의 의미에도 세계가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DMZ를 희망과 화합, 평화와 소통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작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제8회 DMZ 국제다큐영화제의 공식 포스터. 프랑스의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 최초로 촬영한 DMZ 항공사진을 기부 받아 제작했다. ⓒ DMZ 국제다큐영화제
DMZ와 영화의 8번째 만남, 제8회 DMZ 국제다큐영화제
그 작은 움직임 중 하나가 바로 ‘DMZ 국제다큐영화제’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위치한 DMZ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만남’으로 지난 2009년 처음 열린 DMZ 국제다큐영화제는 지난 시간동안 전 세계의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소개함으로써 관객들과 소통해왔다. 또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축제의 장이 되어왔다.
올해 8번째 만남을 준비하고 있는 DMZ 국제다큐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행사인 기자회견이 지난 17일 오전 11시 KEB하나은행 을지로 본점에서 진행됐다. 이번 기자회견에는 조직위원장인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대신해 이재율 경기도 행정1부지사와 조재현 집행위원장, 박혜미 프로그래머 등이 참석했다.
이재율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기자회견에서 DMZ 국제다큐영화제를 향한 경기도의 지원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 조성윤 기자
이재율 부지사는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대신해 “다큐영화제를 통해 DMZ가 대립과 적대의 공간이 아닌 평화와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이어 “전 세계 유일무이한 국제다큐영화제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영화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경기도에서도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개막작인 정수은 감독의 <그날> 스틸컷. ⓒ DMZ 국제다큐영화제
36개국 116편의 다큐멘터리, 개막작은 정수은 감독의 ‘그날’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작은 영화제의 핵심이라고 불릴 만큼 그 영화제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DMZ 국제다큐영화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에는 정수은 감독의 <그날>이 선정돼 눈길을 끈다. <그날>은 정수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지난해 신진다큐멘터리작가 제작지원 부문의 선정작이기도 해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이 작품은 정 감독의 외할아버지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인민군이었던 감독의 외할아버지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어떻게 전쟁 포로가 되었는지, 북에 가족을 두고도 왜 남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어떤 날을 살아왔는지 외할아버지의 자취를 따라간다. 영화제 측은 분단 비극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감독의 외할아버지의 삶이자 우리의 역사를 마주하는 이 영화가 휴전선 인근 캠프그리브스에서 펼쳐지는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더 없이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제의 특징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박혜미 프로그래머. ⓒ 조성윤 기자
이번 영화제에서는 개막작 외에도 36개국 116편의 다큐멘터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박혜미 프로그래머는 “역대 최대 규모인 105개국, 1290편의 영화가 출품된 가운데 선정된 영화들인 만큼 그 퀄리티와 내용 면에서도 수준급의 영화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한국경쟁부문에서 다큐멘터리 신작이 대거 소개될 것”이라며 이유 있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위안부를 주제로 다룬 다큐멘터리 작품 중 대만의 <50년간의 비밀: 대만 위안부이야기> 스틸컷. ⓒ DMZ 국제다큐영화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정체성 강화에서 조금 특별한 ‘일본군 위안부’까지
지난해 영화제는 분단 70주년을 맞아 다양한 특별기획전을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박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이번 영화제는 분단과 통일을 주제로 한 ‘DMZ 비전’ 부문을 신설하며 음악, 미술 등 예술분야와 다큐영화 사이의 협업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대만,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제작지원작 확대 등이 특징이다.
눈에 띄는 점은 그간 국내에 소개할 기회가 없었던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를 영화제를 통해 최초로 상영한다는 소식이다. 아시아 각국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한 이 다큐멘터리는 전쟁과 폭력이라는 여성들의 경험이 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가로지르며 연결됨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배우 강하늘과 공승연이 이번 영화제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 조성윤 기자
다큐영화를 사랑하는 젊은 배우, 공식 홍보대사로 강하늘과 공승연 선정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제8회 DMZ 국제다큐영화제 홍보대사로 배우 강하늘과 공승연을 위촉했다. 배우 강하늘은 “지난 2013년 영화제 당시 어머니와 함께 관람하며 영화제를 통해 좋은 인연을 맺었던 기억이 있다”며 “평소 다큐멘터리를 좋아해 홍보대사 제의가 왔을 때, 고민 없이 선뜻 나설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배우 공승연 역시 집행위원장인 배우 조재현을 언급하며 “다큐멘터리 영화를 널리 알리고 DMZ가 평화와 생명, 소통을 이야기하는 장소로 기억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폭력과 비극으로 반 세기동안 분단이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우리에게 남겨준 DMZ. 그런 DMZ가 이제는 평화와 소통, 그리고 생명의 메시지를 담아 세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꿈꾸고 있다. DMZ만이 가질 수 있는 메시지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선을 보여주는 DMZ 국제다큐영화제는 고양시와 파주시를 비롯해 연천군과 김포시에서 9월 22일부터 29일까지 8일간의 여정을 펼친다. 다큐멘터리 영화에 관심이 있거나 분단에 대한 우리의 과거를 다시 인식하고 싶다면 DMZ 국제다큐영화제라는 이름의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DMZ를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제8회 DMZ 국제다큐영화제 관람 포인트 |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조재현 집행위원장. ⓒ 조성윤 기자
Q. 올해 영화제만의 차별성이 있다면?
조재현 집행위원장 파주, 고양시에서만 상영했던 것을 올해는 DMZ 접경지역인 연천과 김포지역으로까지 확대했다. 주말을 위주로 김포와 연천지역에서도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또, 올해는 북한지역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위안부에 관련된 이야기 등 기존보다 더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일 것이다.
Q. 일반인들에게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아직까지 낯선 것이 사실이다. 다큐멘터리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면?
조재현 집행위원장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생각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영화를 비롯한 영상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펼치기 위해 주장을 내세우고 근거로 뒷받침하는 것과 같이 그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다. 거기에 드러난 제작자의 울림이 관객들에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Q. 올해 프로그램 중 문화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다큐 패밀리 등의 다양한 섹션이 눈에 띈다. 프로그래머로서의 추천작이 있다면?
박혜미 프로그래머 모든 작품들이 실제로 작품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당연히 모두 추천하고 싶다. 그 중 다큐 패밀리 섹션을 가장 추천하고 싶은데, 온가족이 부담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큐 초보 관객들이 쉽고 편하게 다큐멘터리를 접할 수 있도록 단편 다큐멘터리 부분을 강화했다. 가족, 전쟁, 난민, 평화 등 여러 주제를 진지하게 담은 이야기들이 많으니 원하는 작품을 골라볼 수 있을 것이다. 화면해설 서비스까지 동시에 진행할 예정이라 다큐멘터리가 무겁게 느껴졌던 사람들도 다큐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Q. 위안부 특별전을 통해 특별한 다큐멘터리를 최초로 공개한다고 들었다.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최초로 공개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박혜미 프로그래머 다큐멘터리 자체가 70년대에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영상 수급이 가장 어려웠다. 현재 번역 작업을 진행 중인데 일본 제작 다큐멘터리다보니 일본어 방언이 영상에 담겨 있어 번역의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위안부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담겨 있는 작품인 만큼 많은 의미를 부여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