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도 장내 미생물의 역할에 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 경기도청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한다(All diseasesin the gut)”
이는 히포크라테스(BC 460-370 · 그리스의 의학자)가 남긴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장내 미생물 연구를 통해 사실로 증명되고 있기에, 히포크라테스가 생각했던 기전(記傳)과 관계없이 이 주장 자체가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장내 미생물의 역할에 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 장내 미생물, 현대인 건강에 직결…‘장은 제2의 뇌’
미국 컬럼비아대학 신경생리학자인 마이클 거숀(Michael Gershon)이 ‘장은 제2의 뇌’라고 했다.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 장애로 이어져 머리가 아픈 때도 있다. 이는 ‘장-뇌 연결축 이론’으로 설명된다고 한다.
이는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신경전달 물질 세로토닌의 95%가 장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뒷받침한다는 것. 특히 뇌를 제외하고 세로토닌이 발견된 것은 장이 유일한데, 세로토닌이 장과 뇌가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매개 물질로 지목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에 장내 미생물이 소화기질환, 비만, 암, 치매, 우울증, 자폐증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장뇌축(brain-intestine axis)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장의 움직임과 활동은 식도부터 직장까지 5천만 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된 신경망인 장신경계(enteric nervous tem, ENS)가 담당한다. 이를 일러 마이클 거숀은 제2의 뇌라고 칭했고, ‘작은 뇌’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현대인에게 장내 미생물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 장과 뇌의 연결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우리의 면역계
장-뇌의 연결점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유전자 해독 기술에서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유전자 해독기술이 도입된 지난 10여 년간 집중적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
장내 미생물과 뇌 질환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의 전체가 완전하게 연구로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이 가운데서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바로 우리 면역계이다. 이는 미생물이 장에 있는 면역세포를 조절하고 그 결과로 뇌에 이상이 생긴다는 가설이다
최근, 많은 관련 연구자들 가운데서 이 가설을 증명할 결정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한 연구자는 한국인 면역학자 허준렬 하버드대 교수다. ‘임신한 생쥐가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식에게 자폐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허 교수는 이용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어미 생쥐에게는 염증을 일으키는 ‘티에이치17’(Th17)이라는 면역세포가 만들어지는데, 이로 인해 새끼의 뇌에 자폐증상이 나타나는 변화가 생긴다.
이같은 실험 모델을 이용하여 허 교수 팀은 질병을 일으키는 또 다른 중요한 방아쇠를 발견했다. 바로 장내 세균이 그것이다. 연구팀이 찾은 용의자는 절편섬유상세균(SFB)으로 불리는 종인데, 이전까지 거의 알려진 적이 없어 학명조차 없는 미지의 미생물이다.
여기서 한 가지 점검해보자. 이 세균이 장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티에이치17 면역세포의 수를 늘리는 역할을 한다면? 이와 반대로 이 세균을 없애면 새끼에게 자폐 발생이 줄어들까, 하는 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연구팀이 ‘반코마이신’ 항생제를 어미 쥐에게 먹여 ‘절편섬유상세균’을 장에서 제거했을 때, 실제로 새끼에게서 자폐증상이 사라지는 것이 확인됐다고 한다.
이렇듯, 장내 미생물이 최근에는 뇌 질환에 대한 영향으로 주목받고 있다.
‘뇌-장 커넥션’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에머런 메이어(Emeran Mayer) 교수는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는 장-뇌 상호 작용을 35년 이상 연구해왔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분야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왔다. 그런데 미생물학적 발견이 이 분야를 몸과 관련해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이 주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면서 “뇌-장 커넥션에 있어 미생물 간의 전체적인 상호 작용은 우리의 웰빙과 건강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미생물 간의 전체적인 상호작용은 항상 중요하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