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는 이맘때엔 어머니들의 손길은 가장 분주해진다. 바로 김장 준비 때문이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가을이 깊어지고 겨울이 다가오면 추위를 나기 위해 김치를 담그곤 했는데 그 풍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김장을 직접 하지 않고 사서 먹기도 하지만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하는 모습은 이맘때에 빼놓을 수 없는 광경이기도 하다.
김치는 예전부터 우리 고유의 음식이었지만 현재의 빨간 김치는 고추가 수입되기 시작한 17세기 이후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또 김치가 한국 고유의 식품인 만큼, 김치라는 말도 우리 고유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잠긴 푸성귀’라는 뜻의 침채(沈菜)라는 한자가 변한 것으로 배추 역시 백채(白寀)라는 중국어가 입을 통해 직접 귀화했다고 한다.
김장 자체는 단순히 김치를 담그는 일로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안에는 조상들의 지혜는 물론 저마다의 김장 방법과 효능 등이 담겨져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김장의 세계, 지금 소개해본다.
■ 김치에 담겨져 있는 조상들의 지혜
조선시대에는 김장을 할 때 현대에 쓰이는 김치냉장고나 각종 도구 대신 흙으로 빚은 양념보관함과 백자로 만든 강판 등을 사용했다. 자료사진. ⓒ 경기뉴스광장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있어 김치를 보관하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또 강판이나 절구, 바가지 등이 없었던 그 시대에는 어떻게 김장을 했을까?
조선시대의 농촌 일상을 기록한 ‘산림경제’에 따르면 조선시대 양반집에서 사용했던 부엌살림은 무려 ‘65종류’에 달했다고 한다.
그중 김장에 사용됐던 대표적인 살림기구는 5가지 정도가 있다. 먼저 즙을 내기 위해 채소 등을 갈아냈던 ‘백자강판’은 주로 마늘, 생강 등을 갈 때 사용됐는데 위아래로 갈 수 있게끔 자잘한 톱니들이 상하로 향하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백자로 만들어 내구도도 단단하다.
‘마자’는 강판과 마찬가지로 양념을 갈 때 쓰던 기구로 손가락을 끼울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으며 이 속에 손가락을 넣어 거친 표면으로 마늘과 같은 김장 양념을 갈아냈다.
‘돌절구’는 고추, 마늘, 소금, 깨, 생강 등의 양념을 빻을 때 썼던 작은 절구로 어른 주먹만한 크기며 흙으로 구어낸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진흙으로 빚어 흡습성이 좋고 양념을 보관할 때 사용한 ‘양념단지’와 되의 일종으로 바가지 용도로 사용한 ‘됫박’ 등이 있다. 됫박은 무려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어왔다고 알려져 있다.
애써 김장을 했어도 무더운 여름철 그 김치들은 어떻게 보관됐을까? 조선시대에는 여름철 김치를 오랫동안 그리고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는 특별한 독을 사용했었는데 바로 ‘이중독’ 덕분이다.
‘이중독’은 산과 계곡이 많은 산악지방에서 더운 여름철 상하지 않고 오래도록 시원한 김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해 낸 김칫독으로 ‘삼단단지’라고도 한다.
주로 조선시대 후기 경남 합천지방서 사용됐는데, ‘이중독’에 김치를 넣어 계곡의 물이 떨어지는 곳이나 흘러내리는 냇물 속에 뚜껑을 덮어두면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냉각시킬 수 있으므로 더운 여름철에도 김치가 상하지 않고 오래도록 시원한 맛을 낼 수 있었다.
‘이중독’의 형태는 항아리 어깨부분에 물이 흐를 수 있는 턱을 만들어 계곡에서 떨어지는 물이 턱의 주위를 돌아 흘러내릴 수 있도록 턱의 안쪽에 한두 군데 작은 구멍을 뚫었다. 항아리의 주둥이는 밑바닥보다 좁거나 같고, 옆구리 양쪽엔 손잡이가 있으며 뚜껑에는 꼭지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 ‘00김치’ 들어보셨나요? 다양한 김치의 세계
최근 우리가 먹는 김치는 기본적인 배추김치, 총각김치 외에도 각종 채소들과 과일들로 만든 김치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 경기뉴스광장
김치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오죽하면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술게임 중 하나로 인터넷에 자신이 생각한 재료가 들어간 김치를 검색했을 때 존재한다고 나오면 벌주를 마셔야하는 게임도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다양한 재료로 김치를 담가 먹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다양한 재료로 김치를 담그는 만큼 그 효능도 저마다 다르다. 먼저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가지김치’를 먹으면 좋다. 가지김치는 장 기능을 강화해주고 항암효과, 염증치료, 피로회복 효과가 있다. 또 가지에는 비타민C와 E가 함유돼 있어 혈관을 강화해주고 뇌출혈을 예방해준다.
임산부, 어린이, 청소년에겐 ‘갓김치’를 추천한다. 성장발육과 식욕향상, 노화방지, 빈혈, 뇌졸중, 유방암 등 성인병 예방에도 탁월하며 비타민C도 다량 함유돼있어 면역력 증강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굴과 함께 먹으면 굴의 철분을 흡수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자주 먹는 ‘총각김치’는 소화기능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총각김치는 해독작용과 지방질 배출, 위장활동을 개선하는데 좋으며, 무즙에 들어있는 아밀라아제 소화를 돕는다.
지금 같은 환절기에 감기 걸린 사람들이라면 ‘파김치’를 먹으면 좋다. 파김치는 소화기능을 향상시키고 이뇨작용을 도우며 파에 풍부한 알리신이 피로회복에 효과적인 비타민B1의 흡수를 높여줘 감기로 허약해진 몸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몸이 찬 사람들에게는 ‘부추김치’가 제격이다. 부추김치는 원기회복,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해주며 생리통 완화에도 좋다. 또한 냉한 체질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산모나 수험생이라면 ‘고들빼기김치’를 추천한다. 고들빼기김치는 모유촉진과 남성기능 강화, 피부미용, 위장기능 강화, 식욕향상에 도움이 된다. 또 고들빼기에는 비타민이 많고 쓴맛을 내는 사포닌 성분은 위장 강화와 잠을 몰아내는 효과도 있다.
■ 김장할 때 꿀팁, 이것만 알아두세요 !
김장용 배추를 살 땐 당도가 높고 고소하며 약간 아린 맛이 나는 배추가 좋다. 또한 속이 너무 꽉차지 않고 무게가 3~5㎏정도 나가는 배추가 좋다. 자료사진. ⓒ 경기도청
김장을 할 때 지역 또는 집안마다 고유의 특성과 노하우가 있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이나 김장 초보들에게는 김장은 부담되고 맛도 보장하기 어려운 음식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김장 꿀팁이 있다.
먼저 김장에 쓸 배추를 고를 땐 당도가 높고 고소하며 약간 아린 맛이 있는 배추가 좋은 배추다. 그리고 배춧잎과 줄기가 덜 무른 것이 좋다. 월동배추의 경우 무게는 3~5㎏정도가 가장 적합하며 속이 둥글고 꽉 찬 것보단 좀 덜한 모양새의 배추가 좋다.
또한, 최근 배추는 단맛과 고소한 맛이 강하게 나오는 만큼 설탕이나 배를 추가적으로 넣지 않아도 괜찮다.
김치가 빨갛고 맛나 보이게 하려면 김치 담그기 하루 전 고춧가루를 따뜻한 물에 개어 불려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사용하면 빛깔도 훨씬 빨개지며 고춧가루도 4분의 1 정도로 절약할 수 있다.
또 김치를 담글 때 고춧가루 외에도 홍고추를 갈아 함께 넣으면 빛깔도 고와지고 맛도 훨씬 칼칼해지고 시원해진다. 이때 매운맛을 줄이되 색을 살리고 싶다면 홍고추 대신 빨간 파프리카를 사용하면 된다.
김장을 할 때 간이 너무 세면 무를 넣어 섞박지 형태로 만들거나 김치를 담근 후 하루가 지난 뒤 표고버섯을 우린 물에 무를 넣고 끓인 뒤 식힌 다음 그 물을 한 컵 부어주면 된다. 자료사진. ⓒ 경기뉴스광장 허선량
김장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바로 ‘간 맞추기’일 것이다. 이때 간을 맞추기 위해 자주 시식을 하다보면 미각이 둔화돼 자칫 간이 세질 수도 있다.
만약 간이 너무 센 김치가 됐다면 무를 썰어 섞박지처럼 중간중간에 넣으면 된다. 이렇게 하면 짠맛도 잡을 수 있을뿐더러 넣은 무도 섞박지처럼 먹을 수 있게 된다. 또 하나 방법은 김치를 담근 후 하루가 지난 뒤 표고버섯을 우린 물에 무를 넣고 끓인 뒤 식힌 물을 한 컵 부어주면 된다.
반대로 간이 너무 싱겁다면 김칫국물을 덜어낸 뒤 소금이나 액젓을 넣어 부어주면 된다. 직접적으로 소금이나 액젓을 넣을 경우 자칫 간이 세지거나 소금에 의해 쓴맛이 강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젓갈 맛이 너무 강한 경우엔 찹쌀풀에 고춧가루와 국간장을 약간 넣어 버무려주면 도움이 된다.
김치가 금방 시어지지 않고 본래의 맛을 오랫동안 유지시키려면 김장 시 김치의 감칠맛을 올려주는 젓갈, 찹쌀풀, 양파, 생굴, 과일 등을 적당히 넣어야 한다. 이는 김치의 숙성을 촉진시키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더덕이나 인삼 등 뿌리채소는 숙성을 늦추는 효과가 있어 김장시 적당량을 넣으면 도움이 된다.
익은 김치의 신맛이 날 경우 달걀이나 조개, 게 껍데기를 깨끗이 씻어 잘게 부순 뒤 흰 천이나 다시백에 싸서 김치 사이사이에 넣어주면 탄산칼슘 성분이 젖산을 중화시켜 신맛을 중화시키고 김치가 시는 속도를 늦춰준다.
김치를 보관할 때 맛있게 익히려면 먼저 저온에서 천천히 공기와의 접촉이 적게 보관하는 것이 좋다. 김치는 보통 0~5도에서 보관할 때 가장 맛있으므로 밀폐력이 좋은 용기에 담아 실온에 하루(여름은 한나절) 정도 보관 후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때 김치를 담을 땐 용기의 70%만 넣고 김치 위의 우거지나 비닐을 덮어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 좋다. 이후 김치를 꺼낼 때는 공기와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빨리 꺼내되 남은 김치는 잘 눌러 국물 안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